이 글을 쓰면서 이 글이 천주교회의 입장을 공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님을 처음부터 밝히고 싶다. 다만 수도의 길을 택한 한 사람으로서 평소에 타종교간의 화합에 관하여 생각하는 바를 적었을 뿐이다.
젊었을 때 동 아프리카로 파견될 것을 각오하여 회교(이슬람)를 얼마간 연구했었다. 그 뒤 한국으로 파견되었을 때 힌두교와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종교들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얻지는 못했다. 오직 한국에 와서 사찰과 그 사찰들 안에 사는 스님들에게 매력을 느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들을 방문하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조금씩 배우고 있다.
특히 불교의 삼보三寶 가운데 법보종찰인 해인사에서 오십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사실을 하느님의 은혜로 생각한다. 가까운 곳에서 성철스님의 원대한 종교관과 해인총림 여러 스님의 환대로 종교간의 화합이 어떤 것인지 잘 느낄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어떤 이론보다도 불교 본연의 관대함을 배웠다.
종교간에 서로 미워하고 서로 박해하는 것보다 더 큰 모순이 없다. 종교들은 모두 인간의 행복과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기 위하여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보면 진리의 이름으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불행하게 지금까지도 그렇게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인이 없지 않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 가운데 타종교의 행위를 일체 금지하고 처벌하는 나라, 그리스도 교인들을 박해하고 강제로 개종시키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그리스도교를 믿는다는 일부의 사람들이 불교의 성소聖所들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소수의 광신자들이 그런 야만적인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고 하지만 종교계와 정부에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폭력을 가하거나 남의 신념을 무시하는 것은 저 광신자들이 믿는다고 하는 예수의 정신과 정반대됨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만행을 제쳐놓고도 종교간의 화합을 방해하는 더 미묘한 문제들이 있다. 아무리 관대하고 교양 있는 선의의 사람들도 흔히 타종교에 대한 약간의 선입견을 버리지 못한다. 종교간의 화합을 추진하고 타종교 지도자들과 어울려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불교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 때문에 몇 년 전에 어떤 책에서 기록된 말씀으로 인하여 불교계의 비판을 들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하여 말하는 스님들의 말이 그리스도 신자들의 귀에 어색하게 들릴 때가 없지 않다. 이런 것을 보면 존경하는 마음만으로 부족하고 서로 만나 상대방이 실제 믿는 것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우리 시대에 종교간의 화합을 추진하는 위대한 선구자들이 있다. 지금 가장 이름난 불교의 지도자는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일 것이다. 불교만이 아니라 세계의 종교인들 가운데 달라이 라마보다 보편적으로 존경을 받는 분이 없는 것 같다. 그분은 훌륭한 면이 많지만 그 가운데 타종교에 관한 놀라운 이해력을 언급하고 싶다. 1994년 가을 달라이 라마는 영국의 베네딕도회 신부가 주도한 세미나에서 나흘 동안 그리스도교의 복음구절들을 해설하면서 종교간에 이루어져야 할 대화에 관해 당신의 입장을 설명하였는데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 네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첫째 지도자들간의 만남, 둘째 전문가들간의 대화, 셋째 수행자들간의 만남, 넷째 타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런 일들을 그분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가운데 카톨릭 순례지인 예루살렘과 루르드Lourdes(프랑스)에 가서 기도하였다. 그는 수행자간의 만남을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본다고 했다. 타종교의 훌륭한 수행자(일반 신도, 수도자, 성직자 포함)를 만나면 상대방이 믿는 신앙의 가치를 저절로 알게 된다. 같은 수도자의 입장에서 달라이 라마 같은 분을 보면 과연 그런 열매를 맺은 티베트 불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간의 화합 없이는 세계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종교인들이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더라도 인류의 평화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의 가치를 아예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불교신자들만이라도 모두 그 창시자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일제의 폭력을 거부한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도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원수까지 사랑하고 모든 중생에게 차별없이 자비를 베푼다면 전쟁이란 없어지고 남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행위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그와 달리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경우에는 인류의 미래는 혼돈 그 자체일 것이다. 사실 핵무기들이 많아지는 지구에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인류의 존폐가 문제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청빈을 공통된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지나친 소비로 환경을 계속 파괴하고 스스로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21세기에는 종교들 특히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서로 손을 잡고 인류의 그런 과제들을 다루어야 한다. 수도하는 사람과 일반신도가 저마다의 할 일이 있다고 해도 종교가 현세의 문제를 무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종교의 가치는 오직 현실의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21세기를 사상적으로 그리스도교와 불교간의 대결 시대로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와 달리 두 종교간의 이해와 친교의 시대를 기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양쪽의 많은 노력이 보여지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낙관적으로 본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종합 종교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서로의 특성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 남의 종교를 존중하더라도 내가 믿는 종교가 더 좋다고 생각해도 된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자기 종교가 진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고, 불교신자는 자기의 길이 가장 위대한 길이라고 믿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타종교를 믿는 사람의 인격을 존경하고 그 신념을 인정하며 그의 자유를 존중하는 일이다. 그리고 서로 만날 때 설득시키겠다는 의도를 버리고 오히려 배워야 되겠다는 마음을 지녀야 하겠다. 종교간에 선의의 경쟁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타종교를 비난하거나 타종교의 발전을 시기하는 일은 금물이다. 타종교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 발전을 기뻐하는 것이 바로 종교인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200호를 맞이한「해인」지의 앞날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