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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물음으로 걸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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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노해 1998년 10월 200호
박노해/시인

1
엄니 나는 어느 별에서 보내왔어?
성아 배꽃이 왜 하얗게 울어?
뻐꾸기는 왜 소리만 보인당가?
잠든 아부지를 왜 땅에다 심어?

세상의 모든 것은 나에게 물음이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건 물음이 있다는 거였다
물음이 멈춘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내가 맞닥뜨린 세상은
묻는 것이 금지되고
묻는 내가 불온해지고
물음 자체가 죄가 되는 시대였다
멈추지 못한 물음으로 나는 고독해지고
가난한 내 사랑은 핏빛 사랑이었다

2
나는 물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래야 멈출 수가 없었다
괴로운 노동이 내 몸을 짓누를수록
물음은 내 안에서 더 크게 종울려왔다
해고와 천대와 군화발에 피흘리면서
나는 세상을 향해 묻고 또 물었다
금지된 물음 앞에 목숨으로 부르짖었다

멀리서 가슴 떨리는 메아리가 있었다
그 답이 눈부시게 왔다고 생각한 순간
세상에, 물음으로 살아온 내가
물음을 물리치는 답안이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 나는 새싹처럼 머릴 처드는
무수한 ?에 거대한 !로 답했다

밖에서 금지된 물음에 맞서
더 많은 물음이 내 안에서 금지되었다
기껏 나의 ?은 ! 안의 물음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시작부터 지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3
푸른 물음이 끊기자 내 안이 무섭게 메말라 갔고
무너져야 할 세상보다 내가 먼저 금이 가고 있었다
나는 하루아침에 빛나는 길을 잃고
캄캄 벼랑끝에 홀로 세워져 있었다
눈보라는 차갑고 아무 것도 의지할 데 하나 없고
돌아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시대의 끝간 곳에서
나는 차라리 온 몸을 물음표로
시퍼런 벼랑 아래로 내던졌다
“한 말씀만 하소서!”

얼음장 밑으로 시간은 차게 흐르고
나는 침묵의 불덩어리를 품고 참혹했다
나는 세상에서 잊히며 죽어 있었지만
온 몸으로 뚫어가는 물음이 있었기에 살아있었다
나는 바탕 뿌리부터 하나하나 다시 물었다
저들을 향해, 세상을 향해, 다시 던지는 물음을
묻는 나 자신에게도 정직하게 돌이켜 물었다
처절한 물음은 나의 투쟁이고 나의 참회고
나의 사랑이고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다

4
물어야 길이 나온다
물음이 길을 가르쳐 준다
아니 물음이 바로 길이다
사무치는 물음이 곧 사는 길이다
물음이 끊긴 길은 곧게 빛나도 죽어가는 길

나에게 죽음은 길이 없는게 아니고
물음이 그치고 물음이 멈춘 것이다
나에게 두려운 건 답이 틀리는 게 아니고
내 안의 물음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물음이 없는 삶은 살아도 죽은 것

5
그러나 지금, 나의 물음은 처음처럼 고독하다
돌아선 자들은 냉소하고 여전한 자들은 돌아선다
나에게 견딜 수 없이 슬픈 일은 이젠
아무도 더는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음이 없는 생활에 화사한 꽃이 핀다
때론 눈부시고 때론 행복하지만 그건
닝닝닝 어지러운 꽃무덤, 꽃무덤이다
물음이 없고 물을 의지도 능력도 잃어가는
그것이 나는 슬프다 그것이 나는 고독하다
물음이 사라진 시대는 브레이크도 방향도 없이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성능 좋은 자동차이다

6
그러나 먼저 쓰러진 나는 안다
뭔가 머지 않았다!
언살 터진 내 몸 구석구석에서
연둣빛 새싹들이 머리를 내민다
침묵의 불덩어리가 푸르게 터져오르는 듯
온 목숨으로 참구해온 물음들이 한참이다
그러나 나는 사무치게 안다
나는 답이 아니고 새싹 같은 ???일 뿐
이제 더는 아무도 묻지 않는 세상 속으로
오늘 나는, 물음으로 걸어가는 길이다
살아있는 물음으로 걸어가는 새벽 길
참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