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환지본처還地本處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길상 1998년 10월 200호
자리를 털고 일어나 큰법당에 올라 그윽한 향연을 맡으며 자리에 앉는다. 어제와 오늘이 특별히 다른 것이 없건만 지금의 사물소리는 사뭇 다르게 들림은 내게 조금의 여유가 생긴 탓이리라.
이십육 년 전 서울에서 해인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털털거리는 비포장길을 달리며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열여섯살 소년이 해인사 일주문에 들어섰을 때는 신세계에 대한 새로운 눈뜸의 시작이었다. 스님이 된 뒤 강원을 졸업하고 서둘러 산문 밖을 나가 부운浮雲처럼 이곳저곳을 떠돌다 이제 다시 해인사에 돌아오니 불은에 감사한다.
많은 것이 변했다. 지나간 세월만큼 모든 것이 변해 옛 잣대를 들이밀기에는 틈이 없어 보인다. 현대문명의 발달, 그리고 생활의 편리함이 가져다 주는 안락함이 어쩌면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몽땅 뒤엎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없는 당혹감과 수많은 물음, 그리고 끈끈하게 붙어 있는 속진의 티끌들이 좀처럼 털어낼 수 없는 아픔과 함께 있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는?…
새벽 예불을 올리고 법당을 나서면 여명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능선들의 꿈들거림을 볼 수가 있다. 산사의 아침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취와 소중함이 있다. 맑은 대기와 투명한 적요. 가을 들꽃이 흔들리는 도량을 거닐며 나는 묻는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어딜까?
수없이 경문을 외우고 진리를 다 아는 것처럼 설한다 해도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정말 돌아갈 곳이 없다. 그래도 늦지 않게 돌아갈 부처님 품안에 있는 사람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그나마 부끄러움을 느끼고 조금은 참회의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에 정말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없다면 불행한 일이다.

언뜻 스쳐가는 말로 일미一味 노장님의 말씀이 머리를 친다.
“사람은 하나의 허물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상대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 는 것이다.
허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지나간 허물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초발심의 마음만이 필요한 것이다. 처음 출가하여 행자 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순수하였던가? 그래서 처음 마음을 발한 그 때가 바로 정각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직 순수 그 자체였을 뿐이다.
본디의 자리로 돌아가자. 그래서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가 되자. 본디의 자리 그것을 찾아 들뜬 세월을 깊이 묻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남아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단지 조급한 마음이 문제가 될 뿐이다. 본디의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