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원구방規圓矩方하고 용행사장用行舍藏이로다.
둔치서로지조鈍置捿蘆之鳥요 진퇴촉번지양進退觸蕃之羊이로다.
끽인가반喫人家飯하고 와자가상臥自家牀이로다.
운등치우雲騰致雨하고 노결위상露結爲霜이로다.
옥선상투투침비玉線相投透針鼻하고 금사부단토사장錦絲不斷吐梭腸이라.
석녀기정혜石女機停兮여! 야색향오夜色向午하고,
목인로전혜木人路轉兮! 월영이앙月影移央이로다.
규規는 둥글고 구矩는 모나며, 활용하면 움직이고 버리면 감추어진다.
둔하기로는 갈대밭에 앉은 새요, 망설이기는 울타리를 들이받은 염소로다.
남의 집에서 밥을 먹고 자기의 잠자리에서 자는구나.
구름이 날아올라 비를 이루고, 이슬이 맺혀 서리가 된다.
옥 같은 실이 때를 만나 바늘 귀를 통과했고, 비단실 끊임없이 북(梭) 속에서 나온다.
석녀가 베틀을 멈추니 밤빛이 한나절에 다다랐고,
목인이 길을 바꾸니 달 그림자가 중천으로 옮기도다.
어떤 승이 구봉선사에게 묻되 “어떤 것이 머리입니까?” 하니 구봉이 이르되 “눈을 떴으되 새벽을 느끼지 못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승이 다시 묻되, “어떤 것이 꼬리입니까?” 하니 구봉이 이르되, “만년의 평상(萬年牀)에 앉지 앉느니라” 하였습니다.
승이 다시 묻되, “머리만 있고 꼬리가 없을 때엔 어떠합니까?” 하니 구봉이 대답하되 “배는 부르나 힘이 없나니라” 하였습니다.
승이 다시 묻되, “바로 머리와 꼬리가 합할 때엔 어떠합니까?” 하니, 구봉이 이르되 “어린애들의 힘이 느는 것을 집안 식구들은 모르느니라” 대답하였습니다.
균주筠州 땅의 구봉도건九峰道虔 선사는 복주福州 땅 관회官懷 사람으로 속성은 유劉씨였습니다.
여러 법석을 두루 참방했으나 마침내 석상石霜선사에게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가 석상선사의 문하에서 시자의 소임을 보는데 화상께서 입적해 버렸습니다. 대중은 당중堂中의 제일좌 수좌를 천거하여 당연히 주지로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구봉선사는 이를 인정치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도리어 그 수좌에게 “내가 물어보아서 스승의 뜻을 분명히 알았으면 스승에게 하던대로 수좌의 시봉을 하겠습니다” 하면서 물었습니다. “스승께서는 ‘쉬어라. 쉬어라’ 하셨고, ‘한 가닥의 흰 천같이 하라’ 하셨는데, 일러 보십시오. 어떤 쪽의 일을 밝히신 것입니까?”
이에 그 수좌는 “일색변사一色邊事 곧 청정일변의 경계를 밝히신 것이오”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구봉은 ‘스승의 뜻을 알지 못한 것’ 이라고 하여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 수좌는 “그대가 나를 긍정치 않는다지만 향을 싸가지고 와서 제자의 예를 드리려 한 것은 어찌 하겠는가?” 하고는 이어 향을 사르고는 “내가 만일 스승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가 솟을 때 앉은 채로 열반에 들지 못할 것이다” 하고는 말을 마치자마자 좌탈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봉선사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앉아서 죽고 서서 죽는 길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 역시 스승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한 것이다” 해버린 안목과 기개를 지닌 납자였습니다
이런 구봉선사에게 어느 날 어떤 승이 “어떤 것이 머리냐?” 물어 왔던 것입니다.
만일 안목이 제대로 열리지 못했거나 차별지差別智가 올바로 갖추어지지 못했다면 ‘머리니 꼬리니 먼저니 나중이니’ 를 따진다면 마음이 어리둥절하여 대답할 길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봉선사는 도안道眼이 열렸기에 ”눈은 떴지만 새벽을 느끼지 못한다“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승이 또 “사람마다 모두가 말하기를 ‘법을 청한다’고 하는데 스님께서는 무슨 법을 가지고 제도하십니까?” 물었습니다. 이에 구봉선사는 “그대는 산봉우리에 한 줌의 흙이 부족했던 적이 있다고 여기느냐?” 대답하였습니다.
승이 그래도 미심쩍은 마음에 다시 “그렇다면 사해四海에 참문하러 다니는 이들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되물었습니다. 이에 구봉선사는 “연야달다演若達多가 머리를 잃어버렸다고 한 것은 마음이 스스로 미쳤기 때문인 것과 같느니라” 대답하였습니다.
연야달다 이야기는 능엄경에 나옵니다. 실라벌성室羅伐城에 연야달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보다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머리에 붙어 있는 미목眉目을 보고는 기뻐하였습니다. 그러고는 도리어 자기를 자기가 보려고 하니 자기의 머리 속의 미목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머리가 없어졌다고 크게 성을 내면서 이것은 도깨비가 만든 것이라고 하여 미쳐서 달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본디 머리를 진성眞性에 비유하고 거울 속의 머리는 망상에 비유할 때 흔히 인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승이 다시 묻되 “미치치 않는 이도 있습니까?” 하니 구봉선사는 “있느니라” 대답하였습니다.
승이 다시 묻되 “누가 미치지 않는 자입니까?” 하니 구봉이 이르되 “첫새벽에 나선 이는 눈이 잘 뜨이지 않느니라”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눈을 뜨고도 새벽을 느끼지 못하는 좋은 본보기라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승이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연등불 이전의 일입니까?” 하니 구봉선사가 이르되 “애를 쓰고도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이에 승이 다시 묻되 “어떤 것이 현재의 등불입니까?” 하니 구봉선사는 “머리는 크고 꼬리는 작은 것이니라” 대답하였습니다. 승이 다시 묻되 “어떤 것이 연등불의 뒤입니까?” 하니 “지위에서 물러나서도 한가할 줄 모르는 자이니라” 대답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만년의 평상에 앉지 않는 좋은 본본기인 것입니다.
승이 다시 묻되 “머리는 있고 꼬리가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니 구봉선사는 “끝내 귀하게 되지는 못하느니라” 하였으니 이는 눈을 뜨면 새벽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승이 또다시 물었습니다. “꼬리는 있고 머리는 없을 때가 어떠합니까?” 하자 구봉이 이르되 “배는 부르나 힘이 없느니라” 했으니 이는 직위에서 물러나서야 한가한 줄을 안다는 말입니다.
승이 계속 물었습니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맞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하니 구봉선사는 “어린애들의 힘이 느는 것은 집안 식구들은 끝내 알지 못하느니라”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석상石霜스님과 소산疎山스님의 머리와 꼬리 문답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처음 근기가 아직 큰일을 잡아들이지 못했거든 먼저 머리를 알아내면 꼬리는 스스로 오느니라.”
“어떤 것이 머리입니까?”
“모름지기 있는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꼬리입니까?”
“금시今時가 다한 것이니라.”
“머리는 있고 꼬리는 없을 때가 어떠합니까?”
“황금을 토해낸들 무엇에 쓰겠는가?”
“꼬리는 있고 머리는 없을 때가 어떠합니까?”
“아직도 의지한 티가 있나니라.”
“머리와 꼬리가 서로 곧장 맞을 때가 어떠합니까?”
“그가 어떠한 계교를 짓지 않더라도 역시 그를 허락하지 않느니라.”
우리 종문에 들어와 공부하는 납자들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이치와 행둘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거나, 마음과 입이 서로 어긋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머리를 이야기했더라도 오직 우리로 하여금 있는 줄을 알게 하려는 것이요, 꼬리를 말하더라도 금시를 다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이 서로 상응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길래 납자들로 하여금 그 속에서 녹여 물리치게 하고 녹여 없애게 하여 마침내는 그대들로 하여금 금일의 공부와 상응케 하여 끝마치도록한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상응하는 사람이라면 진실이 언제나 여여함을 체득하여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별을 따르며, 나그네는 집에 이르렀고 물은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머리와 꼬리가 반듯하고 안팎이 똑같이 통했습니다. 사방팔방에서 적을 맞이하니 무쇠 소의 기개요, 한밤에 전진戰陳이 원만하니 검은 표범의 태도입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겨우 어린 자손이 힘을 얻은 곳일 뿐입니다. 집안 식구들이 알지 못한다고 한 뜻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옥외유운종단경屋外有雲從斷徑이요
좌중무조승연등座中無照勝然燈이로다
문 밖에는 구름이 끊어진 지름길에서 솟아나고
자리 안엔 비치는 것이 없어 등잔을 켠 것보다 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