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불교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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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8년 09월 199호
훼불이라는 말은 지난 김영삼 정권 아래에서 인구人口에 많이 회자됐다. 개신교의 장로신분인 대통령이 집권한 것을 기회로 더욱 적극적으로 교세를 늘리고 상대 종교를 약화시키려는 경향이 일부 교인들 사이에 생겨나면서 문민정부 5년 내내 훼불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공격적인 선교를 하는 개신교의 행태를 미루어볼 때 김영삼 정권 아래서의 훼불사건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가 장로라는 점을 그들이 흘려넘길리는 만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 아래서 발생한 훼불사건은 주로 군이나 정부 부처 등 공기관에서 특히 많이 발생했다. 그 때마다 교계의 언론들이 이러한 훼불 불교언론이 사상 최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 십여 년 동안 미약하나마 발전을 거듭하였던 불교언론은 자칫 궤멸될 위기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영세한 자본과 투자, 열악한 근무환경 등으로 인해 불교언론은 그 동안에도 침체를 벗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닥친 불교언론의 위기는 그 원인이 자본이나 투자환경 등 재정적 부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다시 말해 재정부분은 물론이요, 언론을 경영하거나, 언론사 운영에 실질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의 언론에 대한 몰이해가 불교언론의 앞날을 암담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밀어닥친 불교언론 위기의 시작은 지난해 터진 불교방송의 공금횡령 사건이라는 게 교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정재가 유용 또는 횡령되는 사건이 발생, 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까지 충격을 던져 주었던 불교방송 공금횡령 사건은 사건발생 일 년이 넘도록 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이 여전히 불교방송 경영의 주요한 자리에 남아있고, 어느덧 사건은 지난날의 일로 잊혀져 가고 있다.
불교언론의 위기는 우리 나라의 경제가 IMF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하면서 닥쳐온 경제 위기와 함께 더욱 심각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불교방송은 물론 불교텔레비전(btn)도 경제불황에 따른 경제난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영책임자를 교체하고, 이사를 늘리는 조치를 취하고, 금융기관의 부채상환 시기를 늦추는 등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경영난을 벗어나기에는 힘에 부쳐 보인다. 불교방송이나 불교텔레비전이 모두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 많은 직원을 감원하고 있지만 경영사정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방송사의 경우는 그래도 범불교적 염원을 안고 출범한 탓에 아예 문을 닫거나 폐사의 위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교계의 시각이다.
실제 방송사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현실적으로 교계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주간신문사들의 형편이다. 요즘 교계 주간신문들의 사정을 살펴보면 ‘과연 불교언론의 미래가 있는가’ 라는 회의가 들 정도다. 재정난이야 오랜 고질병 같은 것이어서 차치해 둔다 하더라도, 문제는 신문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언론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나 언론의 역할이나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인식의 결여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지역 불교계를 모태로 해서 창간된 대한불교신문은 현재 석달 가까이 신문발행이 중단된 상태이다. 신문발행이 중단된 까닭에는 물론 재정문제가 포함돼 있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문을 발행하는 책임있는 사람들의 반언론적인 사고에서 위기가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지역 교구본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두 중진 승려의 신문사를 둘러싼 헤게모니 경쟁이 대한불교신문을 사실상 휴간으로 몰아갔다는 것이 신문사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언론의 기능이 어떤 것이고, 언론이 갖는 공공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언론의 진정한 주인은 독자라는 기본적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영층의 무지가 빚어낸 비극이 바로 오늘의 대한불교신문 휴간사태라는 불행을 낳은 가장 큰 까닭이라는 점은 신문사 종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얼마전에는 불교계의 유일한 운동지 성격의 월간지 대중불교가 운영난을 이유로 휴간에 들어갔다. 마땅한 후임 운영자를 구하지 못해 사실상 폐간에 가까운 휴간을 하게 됨으로써 불교계는 이렇다할 잡지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집단으로 전락하게 됐다. 잡지를 발행해온 대원정사가 동국제강그룹에서 경영난을 이유로 월 오백만 원 가량의 고정광고를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자 이를 견디지 못한 채 문을 닫는 비극을 감수한 것이다. 물론 여러 종류의 잡지가 아직도 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개가 발행처인 종단이나 사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교양지 성격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신앙 운동지 성격의 불교잡지 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으로 교계는 보고 있다.
8월에 들어서는 법보신문 내홍사태가 불교계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법보신문은 교계언론을 대표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매체였다는 점에서 교계는 사태의 추이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동안 이렇다 할 비판 기능이 없었던 교계언론에서 법보신문은 나름대로 신문의 역할에 충실해 왔다고 생각한다.
신문이 가지는 고유의 사명을 정직하게 실천하는 것이 승가라는 특수한 조직 속에서 불교의 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승단이 혼돈과 침체의 수렁에 있을 수록 신문이 가지는 비판의 기능은 밧줄이 되어 우리를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 밖의 불교언론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경영에 압박을 받아 언제까지 버틸지 모른다는 언론사가 있는가 하면, 경영에는 문제가 없지만 반대로 언론사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곳도 있다.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불교언론이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언론이 기능을 상실하면 그 사회나 나라는 부패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사람의 정신세계를 담당하는 종교집단이랴. 최근 한국불교기자협회가 기관지 불기협회보를 통해 도박승과 비리승의 고발을 접수하겠다고 나서기는 했지만 이런 일들을 교계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하지 못하고 기자협회 회보에서 하겠다고 나선 자체가 역설적으로 불교언론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불교언론 위기를 바라보며 불교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불자는 불교계에도 한겨레신문과 같은 다수 대중이 주인이 되는 정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종도들로부터 신뢰와 애정을 받으며 탄생한 독립된 언론이 대표언론으로 우뚝 설 때 불교집안 내에서 만연되어 있는, 그리고 그것이 관례처럼 묵인되는 비불교적 행태는 사라질 것이다.
신문과 방송은 공기이다. 공기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역할의 수행은 그 사회나 집단의 건강성을 반영한다. 신문이나 방송의 역할이 위축되고 공정하지 못할 때 그 사회나 집단은 병든 것이다. 지금 우리 승단의 건강성 여부는 방송이나 신문이 공기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장애없이 실천하고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우리 승단은 얼마나 건강한가. 부끄럽지만 우리 종도 모두는 이 질문 앞에서 거짓 없이 진실을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