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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내 말년의 문학의 불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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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과 사람들 - 이윤수 1998년 09월 199호
이윤수

「태백산맥」과「아리랑」에 이어 대하 장편소설「한강」을 집필하는 조정래 씨를 두고 사람들은 ‘장기수’ 라고 부른다. 투옥 문인이 제로인 시대, 그의 옥살이는 과천도, 청송도 아닌 분당의 ‘서재’ 에서 이루어지는 ‘독방’ 생활이다. 이걸 쓰다가 언제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일 아침에 난 눈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퇴전의 각오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하루 너더댓시간의 잠자리를 제한 나머지를 온통 원고지에 쏟아붓는 그 작업을 두고 스스로는 ‘용맹정진’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왜 쓰는가. 그것도 대하 장편소설로 십오 년 세월을 저당잡혀가면서 과연 왜 쓰는가. 하얗게 비어 있는 원고지가 줄창 가슴 설레이게 만들기 때문인가. 모순과 갈등의 역사 속을 살아온 작가로서 짊어져야 할 의무이며 필생의 업이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역사는 과거만의 대화만이 아니라 미래의 설계라고 믿는 그이기에 마치 유폐된 채 풀무질이 멎지 않는 서재에서 올올이 심어내는 소설로써 그는 입심 좋은 이야기꾼이 아니라 신념 투철한 투사로서 잃어버린 역사, 상처입은 역사를 바르게 알리는 의무를 다하고 있다.
어쩌면 장편소설「대장경」의 완성, 그 힘이 역사 속에 길이남을 대하 장편소설「태백산맥」에서「아리랑」으로 그리고 다시금 가열차게「한강」으로 물흐르듯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조정래 씨에게 소설 대장경 이야길 꺼내자 그는 만면에 환희심 가득한 미소를 띠우고 이렇게 첫 말문을 뗐다.
“소설 대장경은, 내 최초의 장편소설이지요.”
그건 넘쳐나는 자부심, 소중함에 대한 표현처럼 보였다.
1976년 문예진흥원에서 우리의 역사의 큰 줄기를 주제로 역사소설을 완성해보자는 취지로 민족 문학대계 시리즈를 기획했다. 삼국통일에서 임진왜란에 이르는 도도한 역사의 강줄기 속에서 그는 대번에 ‘고려대장경은 내가 쓰겠다’ 고 밝혔다.
“나 아니면 안 되는 일, 무조건 내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 때문에 달려들었습니다. 그건 생태적인 사명감이었지요.”
목탁소리와 풍경소리를 태교삼아 들으며 시조시인으로 잘 알려진 조종현(鐵雲) 스님의 아들로 선암사에서 태어난 지중한 인연이 있음을 한순간도 잊은 일이 없는 그다. 고교 졸업 때 선친은 그에게 인천隣天-모든 걸 하늘과 벗해 초연히 산다는 중국 선시에서 딴 이름-이란 법명을 지어 조계사에 승적을 올렸다. 조계종 승려 168번. 문학을 하겠다는 아들 조정래와 만해스님 같은 분도 있잖느냐는 아버지와의 실갱이는 마침내 종립학교 동국대 국문학과에 진학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고려대장경을 주제로 소설을 쓰겠다고 맘먹은 뒤부터 그는 늘 물음표를 화두처럼 안고 다녔다. 세계의 불가사의에 들어감직한 이 엄청난 세계문화 유산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왕도 버리고 강화로 떠나버린 땅에서 백성들이 불력에 의지해 경판을 조성했던 믿음은 무엇일까. 수기스님은 어떤 정신으로 고려대장경 불사를 진두지휘했던 것일까. 고난과 고초 속에서 살인과 약탈의 몽고란 속에서 그들이 이룬 일은 결코 전설이 아니잖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현실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들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궁금증을 시원스레 풀 방편이 전혀 없었다. 소설가 조정래만큼 고민해 온 학자가 없었고 백방으로 다녔지만 귀를 뚫어주고 눈을 맑혀줄 이야기라곤 들을 길이 없었다. 자료라곤 오직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한 안내장 하나. 한국불교가 이럴 수 있는가 싶어 불 같은 화가 치밀어오르던 시절의 이야기다.
홀로 역추적을 하기 시작했다. 해인사에 이틀을 머물면서 장경각 창살 앞에서 팔만여 장 경판의 숨결을 느끼는 일부터 했다. 햇살이 머무는 경판의 글자 한획한획을 틈새로 바라보며 각수들은 어떻게 판각에 임했을까 구상했고, 강화도를 한바퀴 돌면서 군신기고문을 읽으며 조성의 원을 세우던 고려인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리곤 책상머리에 앉아 꼬박 스무이레 사이에 원고를 완성했다.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인물 성격이 각인되면서부터 날줄과 씨줄 엮이듯 가속도가 붙어 하루 육칠십 매씩 쓸 수 있었다. 보름쯤 지나 코피를 주루룩 쏟아야 했고 천 매의 원고를 안고 당시 갈현동 집에서 문예진흥원까지 버스타고 가는 사이 현기증 때문에 몇 차례 주저앉았던 기억이 그에겐 새롭다.
소설「대장경」은 아버지가 간절히 원하신 출가의 길을 가지 못한 미안함이 절반, 부처님을 삶의 스승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의지가 절반쯤 합쳐져 탄생한 작품이었다.
조정래 씨는 말한다. 한달음에 완성될 수 있던 근본에는 바로 고려의 백성들이 있었다고. 그들의 혼이 살아 일렁이며 그들의 혼담긴 목소리를 들으면서 쓴 글이라고. 그래서 작가들을 ‘예언자’ 라 하는 것일까.

소설 대장경에는 대장경 조성에 전력을 기울이는 민중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한명 한명의 묘사를 통해 고려인의 한과 원력, 그 진지한 불심이자 나라사랑의 정신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가득 넘쳐나게 만든다. 특히 총책임자 수기스님과 대목수 근필을 필두로 보여지는 인물상은 조정래 문학의 민중사관이 여지없이 엿보인다.
소설 대장경의 수기 큰스님은 희생을 감내하며 크나큰 원력으로 조성에 임하는 수백 명의 필생과 각수, 목수들을 독려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전란의 와중에서 나라 위한 일에 만사를 젖혀 놓고 이름 없이 보상 없이 묵묵히 주어진 일을 다해내는 그들을 통해 수기스님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서 민중의 실체를 확신하기도 한다.
소설 속 근필은 장경각 불사를 완성하는 대목수다. 목수로서의 자질을 완성하는 것을 삶의 최고 가치로 삼아 탁월한 안목으로 신기에 가까운 집념과 능력을 펼치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은 내내 손에서 책을 떨칠 수 없는 힘이 바로 이 같은 생동하는 백성들의 기운 때문인 것 같다.

“수기 대사가 살아계시다면 반야심경, 천수경, 예불문의 한글화 작업부터 하지 않았겠어요? 불교의 정신을 나누기 위해 그 진리의 뜻을 소통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문장으로 경전의 한글화에 기여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조정래 씨는 묻는다.
왜 불교계에선 문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불자 문인들을 모아 최고의 문장으로 경전 번역에 힘쓰지 않는가. 법정스님을 비롯한 명문장가들과 고은 선생, 자신을 비롯한 문인들이 하나 된다면 제대로 된 한글 경전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는가. 불교가 강성해지는 건 그런 힘을 원동력 삼아야 하는 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서가의 한켠에 불교 관련 책과 자료를 모으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평생의 창작 일정표를 갖고 쉼없이 작업하는 그에게 대하 소설 한강이 마무리되는 2002년 이후는 엄청난 계획이 이미 준비돼 있다. 조정래 말년의 문학, 그것은 불교다. 앞으로 그는 인간의 고뇌, 삶의 각박함, 영혼의 문제 등을 불교 진리로 풀어내는 작업에 몰두할 예정이다.

출판계에서 조정래 씨의 원고지는 정갈하기로 유명하다. 한 문장은 세 번 이상 곱씹어서 쓰고 한 획 틀려도 원고지를 뜯어내 다시 정서하는 까닭은 ‘원고지가 곧 내 정신’ 이라는 엄숙성에 기인한다.
이젠 오른쪽 어깨 마비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한자한자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그의 자세는 마치 한글자 한글자에 정성을 다해 사경하고 판각하며 대장경을 조성했던 고려인 모습과 다름없어 보인다.
“제 소설 대장경은 고도로 승화된 진리의 바다 속에 녹아든 민중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문학으로 혹은 종교로 읽기 이전에 삶으로 읽어주십시오.”
전쟁의 비극, 분단의 한을 집요하고 치열하게 천착해 온 작가, 치욕적인 식민지 세월을 민족의 자존으로 다시 복구시켜 놓은 작가 조정래. 그 때문에 한때 이적성 수사까지 받았던 인물. 그리고 재야인사와 법조 정치인들이 중심이 돼 그의 ‘노벨 문학상 추천 추진 위원회’ 가 결성될 만큼 문학적 자부심을 심어준 작가,「태백산맥」으로 일백쇄 돌파라는 위업을 이뤘으며「아리랑」을 통해 갠지스 강가의 무수한 모래알 같은 수많은 백성들을 무심한 역사 속에서 극진한 사랑으로 건져올린 이가 바로 조정래다. 박제화된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지칠 줄 모르는 마라토너처럼 이십 년 세월을 원고지에 파묻혀 살아왔다.
그러나 이처럼 왜곡된 역사를 문학을 통해 ‘수정’ 하고 다잡으며 단단하게 살아가는 작가 조정래 씨를 ‘조정래’ 답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불교’ 요, ‘석가모니 부처님’ 이다.
불상 가득한 방안, “대장경에 새생명을 캠페인” 에 온가족이 동참해 ‘조정래, 김초혜, 조도현’ 삼인의 이름 빛나는 고려대장경 경판을 놓아둔 책상 앞에서 아들이 선사한 호안석 염주를 매만지며 매일 저녁 그는 기도를 올린다.
‘거룩하신 부처님 저도 부처님 고행하듯 치열하게 살겠습니다. 그 고통의 가시밭길, 기꺼이 따라 걷겠습니다.’
수기스님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같은 기도로 자고 깼을 것이다. 소설이 그만큼 어려운줄 모르고 수행의 길이 참으로 어려울 것만 같아 이생에서 망설였다는 그는 내세엔 꼭 출가의 인연을 맺어 큰복 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의 수기스님 닮은 수행자를 꿈꾸는 것일까.
“수기스님이요? 현대 과학에 있어서 재론의 여지가 없는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스님상입니다. 소설 아리랑에선 공허스님이 또한 그런 인물이엇죠. 시대에 있어 최고의 지성이자 올바르게 깨달은자의 도량을 함축적으로 담았습니다. 적어도 큰스님이란 ‘하나의 정부’ 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엔 어떤 분이 그 역할을 하고 계실까요?”
오늘 수기스님은 어디 계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