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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文化는 공성空性에 대한 반역인가?-문화철학으로서의 공철학의 의미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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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강 - 박병기 1998년 09월 199호
박병기/전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넘어서 ‘문화의 시대’ 가 다가왔다는 평가가 우리 학계의 주된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문화文化(culture, Kultur)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지만, 대체로 인간의 고유한 본성에 기초한 지향성의 산물로 이해된다. 그 산물에 대한 최근의 이해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모두를 포괄하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는 광의의 정의定義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 영역은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을 둘만 꼽으라면 문화철학과 문화인류학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최근까지 문화 연구를 주도해 온 것은 후자이다. 문화철학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역사철학의 한 영역에서 분화되어 철학의 새로운 분야로 자리잡은 이래로 그다지 활발한 업적을 축적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서양 문화철학의 현실은 우리 철학계에도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 한계 내에서도 논의가 지속되어온 데는 철학적 인간학자들을 비롯한 몇몇 철학자들의 공헌이 크다. 최근에야 우리 철학계가 다양한 까닭에 문화철학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형편이다.
공철학은 공空(sunya)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철학적 논의를 전개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 때의 공은 용수로 대표되는 중관철학적 배경뿐만 아니라, 유식학의 공 개념 등 불교철학 전반에서 이해되는 개념을 의미한다. 이 공철학은 공을 중심으로 하여 불교의 모든 철학적 진리를 포괄하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고, 또 이어져야 한다.
공철학의 문화철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 바로 인간의 공성空性(sunyata)이라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공성에 대한 자각에 기초해서 비로소 문화 창조가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인간은 이 공성을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러한 자각은 창조적이면서도 초월적인 문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된다.
두번째 의미는 문명 비판의 준거로서의 공성에서 찾을 수 있다. 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문화 개념에 견주어, 문명은 특정 이데올로기가 전제된 제한된 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도구화된 이성과 기독교적 전파력을 앞세우며 우리에게 보편적 문화의 모습으로 다가온 근대 서구 문명이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문명은 그 본질상 우리를 제한적인 편리성과 함께 많은 위험 요소에 노출시킨다. 환경 파괴와 인간 공동체의 해체같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 공성은 바로 이러한 문명에 대한 비판의 기준이 된다.
다만 공철학이 문화철학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우선 교조주의적 논의의 한계를 벗어나야 하며, 불교철학계의 제한된 논의의 폭도 극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불교철학 내에서 문화철학적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추출하여 재구성하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