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를 쫒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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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 안도현
1998년 09월 199호
그 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들녘에는 고개 숙인 벼들이 누런 물결을 이루며 넘실거렸다.
추수를 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 해 가을은 참새떼가 유난히 극성을 부리는 것이었다.
여느 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참새들이 떼지어 다니면서 한 해 농사를 망치고 있었다.
허수아비를 세우고, 촘촘하게 새 그물을 치고, 하루 종일 새 쫓는 총을 뻥뻥 쏘아대 보았지만 귓속만 얼얼할 뿐 모두 헛일이었다.
참새떼는 하루가 다르게 그 수가 불어나는 것 같았다.
참새들이 멍석 만하게 떼를 지어 앉았다가 날아간 자리는 전쟁 중에 포격을 맞은 자리처럼 휑하니 허연 쭉정이만 남은 벼들이 늘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좀처럼 어떻게 손을 써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새 쫓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런 저런 궁리를 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먼 도시에 사는데 이 마을에 잠시 놀러 온 사람이었다.
“저놈의 참새들을 쫓는 길이 없는 건 아니죠.”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빙긋이 웃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 들녘에 서 있는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전혀 상상도 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여러분은 겨울밤에 처마 밑에서 잠든 참새를 잡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참새들은 말하자면 어른이 다 된 참새들이죠. 어른 참새들은 가을에도 그런 데서 잠을 잡니다. 하지만 새로 태어난 새끼들은 대체로 큰 미루나무나 대숲 같은 데서 수백, 수천 마리씩 떼지어 잠을 자지요. 일 년 농사를 주로 망치는 게 그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들로부터 잠자리를 빼앗아 버리면 모든 게 해결이 됩니다. 아무렴요, 틀림없습니다.”
도시에서 달동네 철거반으로 돈을 꽤 모았다는 그의 이력이 잠시 번뜩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랴. 마을 사람들에게 더 시급한 일은 참새를 쫓고 알곡을 지키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이 꽤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 이튿날부터 대대적인 벌목 작업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신작로에서 들판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한 군데 밖에 없었고 그 들길에는 오래 전부터 미루나무가 열병식을 하는 것처럼 늘어 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전기톱을 빌려 와 순식간에 미루나무 수십 그루를 베어 냈다.
들판 가에서 봄날이면 화사한 꽃을 피우던 살구나무 두 그루도 베어 냈다.
좀 아깝긴 하였지만, 돌담 옆에 서 있던 감나무며 밤나무 대추나무도 집집마다 베어 냈다.
연세 많은 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지켜 준다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결국은 베어 냈다.
참새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일 말고 더 중요한 일은 없었으므로 마을의 나무란 나무는 한 그루도 남기지 않고 베어 냈다. 이렇게 나무들을 모두 베어 버리자, 때때로 몰려가 앉을 자리를 잃어버린 참새들이 정말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참 잘 되었어. 잘한 일이고 말고.”
나무를 자르자고 제안한 사람은 마을을 떠난 뒤였지만, 그는 이미 마을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추수를 할 때도, 따뜻한 쌀밥을 먹을 때도 겨울날 한가하게 윷을 놀 때도 곧잘 그를 칭송하는 말들이 자자하게 퍼지곤 하였다.
다시 봄이 왔다.
못자리를 만들고 볍씨를 뿌릴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마운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모내기철이 지나고, 논에 나가 김을 매다가 등짝에 닿는 따가운 햇빛의 바늘을 느끼면서 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후회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무를 단 한 그루도 남기지 않고 베어 낸 일을, 나무와 함께 사람들은 여럿이 둘러앉아 들밥을 나눠 먹을 그늘을 잃어버린 것이다.
밥을 먹고 난 뒤에 쉴 자리도, 누울 자리도 사라져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뒤늦게 가슴을 쳤다.
나무를 베어 내자고 부추긴 도시 사람을 원망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그들이 나무에서 쏟아져내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낮잠을 한숨이라도 자기 위해서는 적어도 내년 봄에는 다시 나무를 심어야 하고, 십수 년을 기다려야 하며, 그 동안 들녘에 나올 때마다 햇빛의 뾰족한 바늘에 수없이 살갗을 찔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불행한 일은, 밤이면 돌아가 깃들일 잠자리를 빼앗긴 참새떼들이 벼 포기를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주야장천 거기에 머무는 일이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