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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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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희균 1998년 09월 199호
김희균/아봐타 마스터

돌아보면 볼수록 내 삶은 환희롭다. 너무나도 아득하게만 여겨지는 그 가슴 벅찼던 옛 길… 지금의 내가 평온과 행복 속에서 오로지 “감사합니다!”를 할 수 있도록 짜 놓았던 그 빈틈 없는 각본. 그저 “감사합니다” 뿐이다.
1974년 1월. 내 의지로 절에 찾아가 불교와 대면한 뒤 이십오 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몇 개의 굵은 선이 잡힌다. 거기엔 내가 참 복이 많다는 기본 전제를 설정하게 되는 일이 많다. 어떤 괴로움이나 고통도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 주어진다는 것이었고, 그 끝에는 반드시 내가 배우고 깨우쳐야 할 무엇을 동반하고 있었으며, 그 길을 내가 잘도 선택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먼저 감사한다. 그리고 스승 아닌 적이 없었던 모든 존재와 인연들, 불보살님들께 감사드린다.
부룍를 만나자마자 교리 공부를 겸한 수행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 내게는 크나 큰 복이었다. 불교가 얼마나 좋았던지, 불교 공부와 절에 가는 일로 남는 시간을 채웠다. 처음에는 또 어찌 그리 신통한 생각을 냈던지, 그 때는 큰스님들 법문 듣기를 삶의 원칙처럼 여겼다. 일요일이면 삼보법회의 탄허 큰스님 원각경 강의에서 화엄경 강의까지, 대원정사의 운허 큰스님 능엄경 강의,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큰스님 법문, 부정기적으로는 어느 큰스님께서 언제 법문을 하신다 하면 찾아뵙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있었을까.
마음 속에 ‘수행’ 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각인되고, 스스로 화두를 챙겨든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수행’ 의 의미에, ‘수행’ 의 실천력을 습득하기 위해 얼마나 매달려 왔던가. 세상 어떤 것도, 개인의 ‘수행’ 이 없고서는 발전, 변화해 나갈 수 없다는 확신이 깊어지면서 삶은 더욱 심원해졌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출가의 뜻을 품었고, 내 앞에 많은 고통이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도 나의 그 이십대 때였다.
그 무렵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또는 절망스럽게 했던 문제는 화두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뭣고’ 또는 ‘무無’ 가 그대로 이해되고 수긍되어 버린 채 절실한 궁금증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의 표현 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화두에 꼭 따라붙어야 할 간절한 의심이 없다니 그건 정말 절망이었다.
“역시 나는 근기가 약하다” 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두터운 업장 탓으로 돌리고 나니 해야 할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기도에는 또 왜 그렇게 마장이 많던지, 경전을 독송하든지 절을 하든지 옳게 회향된 적이 없었다. 반드시 깨져 버리곤 했다. 아, 그 때의 절망감이란… 내 그릇을 측정하기 위해 큰스님을 찾아뵈러 다닌 일은 또 얼마였던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헤매면서도 화두를 놓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끝내 승부를 보아야 할 지점은 화두라는 신념이 있었다. 출가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보낸 세월이 전반부 십 년 가까이를 차지했다.
나는 정말 얼마나 강인한가. 아니다. 내가 지닌 불성이 그렇게 강인했다고 여겨진다. 어느 날 문득 전율을 느꼈다. 내면에서 튀어나오고 싶어 몸부림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느꼈다. 나는 들리지 않는 화두를 들고 더 강도 높게 씨름하기 시작했다. 다시 그렇게 허망한 몇 년.
1986년 12월. 나는 또 다른 일로 깊은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 동안 계획했던 일에 실패하고 이제 어찌해야 하나…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확인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절해고도에 던져진 나를 느꼈다.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절해고도. 순간 번개처럼 스쳐가는 한 생각, 백척간두 진일보! 뒤에서는 호랑이가 쫓아오고 앞에는 백 척 꼭대기의 절벽. 여기서 한 발 내딛으란다. 떨어져 죽어 버리란다. 내가 지금 한 발 내 딛는다는 건 뭐지? !! 그래! 이 순간 놔버리는 거 아니겠어?! 그래! 놔!
나는 뒤에 처음으로 ‘찰라’ 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 순간, ‘찰라’ 와 ‘놔!’ 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만 일 년 동안의 체험. 스승도 없이 혼자 “불보살님! 저를 정법으로 인도하소서” 를 절규하듯 외며, 문밖 출입을 잊은 채 기도와 참선, 충만감으로 흠뻑 젖어 보냈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1988년 1월. 아침 저녁으로 한 두 시간씩 거뜬하게 앉아 지내던 참선 시간이 2, 3년이 지나면서부터 2, 30분으로 줄었다. 어느새 고통이 슬슬 섞여 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기쁨보다 고통의 비중이 커져 갔다. 판단 분별이 끼어들고, 다시 혼돈을 겪으면서 그 환희의 기억들을 되살리려 애썼으나 그것은 단지 기억일 뿐, 지금 여기엔 존재하지 않았다. 의식은 두 번 다시 그 곳으로 데려다 주지 않았다.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또다시 몇 년 동안의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그 끝 무렵에서 만난 것이 지금 내가 안내하고 있는 아봐타였다. 하지만 그 때에는 아봐타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는 이미 화두에 익숙해져 있었고, 불교에 얼마든지 훌륭한 수행법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해쯤 지난 어느 날, 화두로 어느 정도 평온을 유지하고 있던 내게 아봐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때 나는 조계종 종회 포교분과위에서 추구하는 ‘재가불자를 위한 신행체계’ 프로젝트의 구성원으로서 아봐타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이 또한 절묘한 행운이 아닌가.
아봐타는 곧 불교였고, 불교의 궁극 그대로였다. 다만 현대인들에게 맞는 이론 체계와 함께 경험을 안겨 준다는 점이 획기적이었다. 아봐타는 그 동안 긴가민가, 또는 애매하게 여겨졌던 문제들을 한 줄에 꿰어 정리해 준 느낌이랄까. 그렇게 명쾌했다. 불교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신뢰하게 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오늘의 평온을 되찾은 건 불과 삼 년쯤 된다. 요즘 나의 수행법은 이렇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한 시간쯤 참선을 한다. 그리고 문 밖을 나가 집 주변을 산책하면서 한 시간쯤 느끼기를 한다. 참선은 불교의 전통수행법이고, 느끼기는 아봐타의 방법이다. 참선은 불자라면 다 아실테고, 아봐타에서 제시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느끼기’ 가 여간 매력적이지 않다. 나와 바깥의 어떤 대상과 하나되기이다. 판단 분별을 떠난 자리에서 순수하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사물이 되는 것이다.
느끼기를 하는 순간 많은 분들이 “생각이 줄어든다” “생각이 끊어진다” 는 표현을 한다. 또한 그 순간 ‘나’ 라고 내세웠던 존재가 없어져 버림을 경험하게 된다. 느끼기는 무아無我가 되는 일이고, 내가 무엇으로든 몸을 나투는 일이다. 여기서 보통 사람 누구라도 아주 쉽게 세상 어떤 존재도 나 아닌 것이 없고, 신성하고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존재에 대한 찬탄, 감사가 일지 않을 수 없다. 몸이 가볍고, 마음은 한없이 평온해진다. 어떤 스님께선 이 느끼기를 경험하고 나서 무릎을 쳤다. “겨자씨가 수미산을 품는다는 말을 알게 됐어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이치를 알았어요!”
느끼기의 연결은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음미하고 감상하기이다. 내가 아직 부처되기가 멀었기에 판단 분별이 일어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분별심이 일어나는 순간 “분별심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 순간 그것을 소멸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느끼기는 그렇게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섬세하게 깨어나게 한다. 마음 속에 일어나는 미세한 흐름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알아차릴 수 있음만으로도 나는 스스로 든든하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확신한다. 내가 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해졌다. 그런 만큼 세상 누구도 주인 아닌 사람이 없으니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든다. 남는 것은 그저 감사뿐이다. 내 존재에 대한 감사,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불보살님, 주변의 모든 인연에 감사를 보내게 된다.
그랬다. 돌아보면 지나간 모든 삶은 진화의 과정이었다. 참으로 얼마나 많은 의식의 변화를 거쳐, 고통과 좌절, 허무를 거쳐 지금 이 곳까지 왔는가. 의식은 늘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고 맞이하게 해 주었다. 준비가 없는 사람에겐 적절한 기회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길을 걸어오면서 얻은 또 하나의 교훈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무척 평온하고 행복하다. 모든 존재가 스스로의 청온과 기쁨에 감사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