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것이었다. 거기가 시작이었다. 마음, 마음하기에 다른 무엇이 있는가 했더니, 싫어하는 그 마음도 좋아하는 그 마음도 다 지나가는 것이었다. 숨이 들어왔다 나가듯이, 배가 일어났다 꺼지듯이 그렇게 불 만난 물처럼 불쑥 일어나서 들끓다가는 올 때처럼 그렇게 가는 것이었다. 거기가 이 길의 시작이었다.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싫고,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나고, 그 사람 때문에 잠을 설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또한 지나가는 것이었다. 보고 듣는 것을 따라 일어나고, 생각 따라 일어나고, 시시때때로 일어나서 한바탕 마음을 씨름판으로 휘젓다가는 친구 잃은 볏단처럼 스러졌다.
그 미움의 처음과 끝을 본 것이 이 길의 시작이었다. 맨 아래 것 하나를 쑥 잡아 빼기 무섭게 우르르 무너져내리는 장작더미처럼 그렇게 마음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평온했다.
그 미움을 들여다보는 동안 내 꼬라지도 참 실컷 보였다. 여럿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면 한두 점 남겨 놓는 것이 얼마 전까지의 우리네 인심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남부럽잖게 월급 받아 챙겨서 배곯고 사는 처지도 아닌데, 두세 점 남으면 남이 집어갈세라 번들대는 눈을 희번득이며 제 앞으로 몽땅 가져다 놓고는 일삼아 한 점씩 욱여 넣곤 했다. 그것이 미웠다. 그런데 그 꼴을 볼 때마다 미움을 일으키는 내 속의 그 놈을 보았을 때, 거기 내 꼬라지가 있었다. 그 한순간에 일어나는 미움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나의 거울인 줄은 알았지만, 한순간에 그렇게 무너져내릴 줄은 몰랐다.
나서지 않을 자리에 나서서 남보다 눈꼽만큼 더 아는 것을 아는 체하는 그이를 볼 때,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조금 더 알거나 넓게 보는 것은 손톱만치도 인정하기 싫어서 그 당장에 가소롭다는 듯 깔깔거리는 그이를 볼 때, 순간순간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 들을 들여다보면서 내 살림살이의 오래 묵어 썩은내 나는 꼬락서니를 보는 것이 얼마나 큰 배움이었는지. 에누리 없이,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대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얼마나 많은 미움과 증오가 제 이익을 구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나 상대에게나 하나도 이익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동안의 설움과 가슴의 피가 다 내 탓이었다. 순간순간 내 할 탓이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로부터 내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꼭 그만큼 그들 또한 손해보고 상처받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사물물事事物物을 대할 때 내가 어떻게 하는지, 그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지 낱낱이 드러났다. 이른바 습관, 그것이 보였다.
미워하는 그 마음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곧 배움의 길이었다. 그러면서 미워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 둘 그 자리를 바꾸었다. 그 동안 싫어했던 사람들은 백일하에 나란 놈의 정체를 드러내 주는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발목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았다. 그들 속에 안주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저 들여다보고 있으면, 거기 켜켜이 쌓여 있던 것들도 가뭇없이 스러지거나, 뒤미처 일어난 생각 아래로 숨어 들었다. 아니, 그렇게 빛을 피하여 그늘 속으로 서둘러 몸을 감추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혼란스러웠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라’ 는 그 말씀은 갈수록 오리무중에 있었다. 그 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 이 문화를 숨쉬고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으레 그렇거니 여기는 것들이 하나같이 고정관념으로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마지못한 술자리에서도, 혼자 있을 때도 언제나 고통스럽기만 했다. 가족도 짐이었고, 친구도 부담스러웠고, 내가 해오던 모든 일이 온통 관성에 따라 그렇게 해온 헛짓이었다. 매 순간 스스로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시시時時로 들고나며 변해 가는 이 몸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의 파고波高와 해일 들, 거기도 내 것이라고는 없었다. 모두 다 바람 만난 파도처럼 일어났다가 자는 것이었다. 고통이었다.
숟가락을 드는 것도, 잠자는 것도, 꿈속에서도 고통스러웠다. 고통뿐!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붙잡을 만한 것이라고는 없었다. 이 몸에도, 이 몸 밖에도, 마음에도 오래 두고 사귈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붙들고 싶었다. 뭔가 좋고 또 좋은 것. 영원히 안고 뒹굴어도 후회없을 뭔가를. 내가 보는 마음 말고, 또 다른 마음이 있을 거라고. 저 고승대덕들이 혀가 닳도록 하는 그 소리, 본래 마음자리.
그런데 하나 있었다. 좋은 것이 있었다. 일어난 한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서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평온. 그 오롯함 속의 평안. 그것 하나 좋은 것이었다. 허구한 날 눈만 감고 싶었다. 거기 머물고 싶었다. 이 탐진貪瞋을 따라 끝없이 신기루를 따라가는 고통스런 세상살이를 등지고 싶었다.
고요한 숲 속으로 들어가 닦고 또 닦으면 이 망상을 쉬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에 늘 평상심을 간직할 수 있다지 않던가. 이 귀찮은 세상 잡사를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지 않던가. 양친도 싫고, 옆사람도 싫고, 형제도 싫고, 직장도 싫고, 지기들도 싫었다. 그저 앉고만 싶고, 조용한 것이 그리웠다. 책을 폈는데, 첫줄이 이랬다. “찌는 듯 더운 어느 여름날의 해질 무렵, 한 스님이 나무 그늘 아래서 고요히 선정에 들어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눈물 끝에 눈물 마를 날 없는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드는 불안. 그래서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도 아니었다. 내 속에 우줄우줄 춤추는 머리 셋 달린 이무기.
틈만 나면 떠돌았다. 산으로, 강으로, 거리로.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 또한 한 생각인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밝히고 다닐 때는. 그런데, 어느 술자리에서 보았다고 해두자. 거리에서 보았다고 해두자. 그 또한 뿌리 없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어느날 엎드려 책을 읽다가 보았다. 고요도 평안도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쫓아왔던 무지개가 모습을 감추는 것을 보았다. 그걸 쫓던 그 ‘나’ 라고 믿었던 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간 무지개와 함께 스러지는 것이. 그래서 말했나보다. 마지막까지 보라고. 그래서 그랬나 보다. 머물지 말라고.
아직도 출가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저런 세상일이 번거롭다. 그러면서 또 끌어안고 싶다. 유발有髮이라고 길이 아예 없겠는가. 어머니를 놓고 싶고, 또 어머니 때문에 눈물 난다. 이제 곧 나의 아내가 될 옆사람을 보듬고 싶고, 또 그 마음이 번거롭다. 그걸 인정한다.
그리고 본다. 마음은 하루에도 팔만사천 번 콩밭으로 간다. 그걸 본다. 그것밖에 안 되는 이 깜냥이 한심하다. 그걸 본다.
입만 열면, 봤냐? 봤어? 하시던 벽창호 한 분 계셨다. 말끝마다 뭘 좀 물어도 그저 보기만 해, 그저 보기만 해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분이셨다. 앵무새도 그런 앵무새가 없었다. 그래도 과문한 탓으로 붙들고 늘어질 것이 그 말씀 밖에 없어 들었다 놨다, 놨다 들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그렇다. 그저 보는 것 말고 다른 도리가 없다. 한 생각 일으키면 거기가 곧 콩밭이다.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