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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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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숲 - 효명 1998년 09월 199호
처서가 지난 탓일까요. 아침 저녁으로 와 닿는 바람에게서 가을의 낌새를 알아차립니다. 그토록 무더워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여름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절기 앞에서는 스스로 떠날 준비를 합니다. 곧 가을이 오겠지요.
해제의 큰 걸망을 메고 찾아 온 스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풀풀 한 철 수좌 삶의 내음을 풍기며 다가와 어여 산으로 가자고 조르던 스님의 모습에서 나는 중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소박하고 단촐하게, 일체의 부나 명예는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오직 구도의 일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날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의 출가란 무엇입니까. 부나 명예를 위해서였다면 우리의 출가는 너무나 부끄러운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출가가 부나 명예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차라리 세간의 삶을 선택했어야 합니다. 산중은 숲과 꽃과 하늘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자연을 이루는 곳이지 부와 명예를 쫓아 숨가쁘게 달려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우연히 본 신문에서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스님들이 도박을 하고 검찰에 연행당하는 장면을 말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어쩌나, 이를 어쩌나 얼굴이 화끈거리며 두근거리는 가슴의 떨림을 느꼈습니다. 청빈과 검소를 삶의 철학으로 지니고 살아야 할 스님들에게 그것은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스님들의 삶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스님, 저는 사실 그 도박 사건을 보고 일반 국민들이 우리네 절집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무척 염려스러웠습니다. 일부가 전체로 확산될 때 우리 절집이 받아야 할 상처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승려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한국의 승가에서 그것은 극히 미세한 일부였다고 말하기에는 그 사건의 파장이 너무도 큽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승단에서 왜곡된 부의 편재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삼보정재가 다수 대중에게 회향되지 못하고 극히 적은 소수가 거의 전부를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종단 발전을 운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자본의 논리가 여과 없이 관통되는 오늘 종단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 평등 공양이 실천되는 청정한 승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님, 중은 길을 가다 논두렁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열반처 또한 구하지 않는 것이 중의 삶입니다. 하물며 살아서 부귀영화를 논하겠습니까.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깊은 산 길을 가다 가을숲을 만나면 하늘을 보고 한번 누워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내 삶의 현주소를 물어 보아야겠습니다.
너는 과연 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