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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실력만큼이나 한글 실력이 뛰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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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적축 - 원철 1998년 09월 199호
‘다불유시多不有時’ 는 ‘뒷간’ 이라는 말이다
얼마 전에 어느 식당에 들렀다. 소피가 급한 까닭에 자리에 앉기도 전에 뒷간부터 찾았다. 아무리 처음 가 보는 집이라고 할지라도 그 곳을 찾는 일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지라 가르쳐 주지 않아도 찾아 갈 수 잇다. 뒷간 문인 듯해 열어 보니 변기가 보였다. 일을 마치고 문을 닫는데 바깥쪽에 이상한 한문글씨가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들어갈 때는 워낙 급해 쳐다볼 여유가 없었는데 나오면서 보니 예삿 글귀가 아니었다.
‘다불유시多不有時’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것 같아 이리저리 해석을 해 보아도 ‘뒷간’ 의 의미로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 라는 뜻인가. 그러니 뒷간에 있을 때만이라도 편안한 시간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인가?
판화가 이철수 씨 집에 들렀을 때 일이다. 거기서도 변소를 묻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 낡은 난로가 있는 마루방에 문이 하나 달려 있었다. 웬 아낙네가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엉덩이를 까놓고 똥을 누고 있는 판화 작품이었다.
그림이 붙어 있는 그 문을 당기면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주인장 왈.
“어린애들은 그냥 그 그림을 보고 뒷간인 줄 알고 바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 판화를 ‘심오한 작품’ 으로만 보려고 할 뿐 뒷간을 알리는 그림 문자라는 사실을 읽어내지 못하고 꼭 물어옵니다.”
‘다불유시多不有時’
분명히 뒷간이라는 말인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화두로 남아 있었다. 같이 간 일행들과 함께 퀴즈풀기에 들어갔다.
정답은 ‘W.C.’ 의 음역音譯.
모두 쾌재를 부르면서 박수를 쳤다. 절집에서는 뒷간을 더욱 심오하게 ‘해우소解憂所’ 곧 ‘근심을 푸는 곳’ 이라고 하여 뜻 번역의 극치를 달리는 곳.
W.C.? 다불유시多不有時?? 해우소解憂所???

‘삼보를 잇사올제’ 와 ‘삼보를 뵙사올제’ 의 차이
가장 유명한 발원문의 하나인 ‘이산연怡山然 선사의 발원문’ 을 번역한 사람은 초대 역경원장을 지낸 운허耘虛(1892-1980)스님이다. 한문으로 된 원문과 한글로 된 번역문을 대조해 보면 의역문임을 알게 된다. 그 의미 전달의 명확성으로만 본다면 원문을 능가하는 명번역이다. 잘된 번역문으로 인하여 원문의 가치 역시 더욱 높아진 전형적인 경우라 하겠다. 동시에 번역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창작문의 대접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설사 한문 원문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한글 발원문” 으로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번역 한역 대장경도 그러한 경우이다. 원전인 범본이 여러 가지 이유로 산실散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대장경을 근거로 하여 중국불교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번역문이 가지는 이러한 양면성은 그 한계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친 자의적 번역은 오히려 원문을 훼손한다.
발원문 속에서 “삼보를 잇사올제” 라는 말을 “삼보를 뵙사올제” 라고도 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런 문제가 생길 경우 원문을 확인하면 ‘소융삼보紹隆三寶’로 되어 있다. ‘소융紹隆’ 은 ‘이어받아 높인다’ 라는 말이다. 따라서 ‘삼보를 잇사올제’ 가 맞는 번역이다.
그러므로 번역문은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단점은 극소화하고 그 장점은 극대화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번역은 한문 실력이 아니라 한글 실력이다
따라서 번역하는 사람은 번역자로서의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번역자는 번역하고자 하는 원전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둘째, 원어와 번역어에 대한 동시적 이해 능력과 두 언어구조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셋째, 번역어는 가능한 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인 유형을 선택해야 한다.
넷째, 번역자는 번역어의 문법적 어순에 따라서 격조를 갖추어야 하며, 전체적으로도 통일 조화된 효과를 조성해야 한다. 곧 한문 실력도 한문 실력이지만 그것 못지 않게 국어 실력이 받쳐 주어야 한다.
이런 본격적인 내용 번역에 앞서 기초 작업이 있어야 한다. 곧 먼저 경전목록이나 해제解題를 통하여 번역하고자 하는 경전의 윤곽을 파악하고, 구두점을 찍고-고려대장경은 구두점이 없는 까닭에 신수대장경보다 이용 횟수가 떨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고사古事를 고증하고, 이본異本과 대조하여 오자와 탈자를 고치고, 가차어假借語-예를 들면 다불유시多不有時 등-고유명사 등을 가려내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탈된 문장까지 교정하여 전후 문장을 연결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기존 번역문 가운데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객관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여러 가지 번역 형태를 각주로 처리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은정희 씨의「대승기신론소․별기」에서는 번역상 논란이 있는 부분은 탄허스님, 이기영, 성낙훈 등의 번역문을 각주로 처리하여 서로간의 안목차이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어쨌거나 번역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영어를 한문으로 번역하다 보면 재미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 은 ‘긍덕기肯德基-중국 발음은 컨더지’ ‘맥도날드’ 는 ‘맥당로麥當勞-중국 발음은 마이땅라오’ 라고 한다. 모두가 소리 번역(音譯)이다.
컴퓨터는 ‘전뇌電腦’ 라고 한다. 이는 뜻 번역(意譯)이다.
소리 글자인 영어를 뜻 글자인 한문으로 옮기는 일이나, 뜻 글자인 한문을 소리 글자인 한글로 옮기는 일이나 모두 괴롭기는 매한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