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각지쟁蝸角之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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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수완
1998년 09월 199호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국제구제금융에 의존하는 국가적 경제난국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하여 기업 도산이 줄을 잇고 환율과 금리가 폭등하고 실업률 또한 날로 중가하여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한 때 정부 당국자와 매스컴들이 나서서 소비가 미덕이라면서 부추켜 몰염치한 사람들로 하여금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의 사치품들을 스스럼없이 사게 했고, 공항은 외국 여행을 가고자 하는 이들로 날마다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꺼번에 거지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말을 하면 다 아는 일을 웬 뒷북이냐고 핀잔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다른 해와 달리 엄청난 홍수로 인하여 수천 명에 이르는 수재민이 발생했고 그 피해도 매우 심각하다.
이처럼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있는데도 우리 위정자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이들은 대한민국의 위정자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방향키를 잃은 지 이미 오래이고, 자파의 이해관계와 자당의 이익에만 급급할 뿐, 상처 입은 민심을 어루만지고 수습하려는 어떠한 의지도 의욕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이 IMF나 홍수보다도 더 큰 상실감과 절망감을 국민에게 안겨 주고 있다.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말이 있다. 달팽이 뿔 위에 촉觸이라는 나라와 만蠻이라는 두 나라가 있어 죽기살기로 영토를 다투었는데 그 정도가 지극히 작음을 비유한 말이다. 저들의 다툼이 비록 큰 뜻이 있다 할지라도 만일 그 다툼 때문에 달팽이가 죽는 일이 발생한다면 한갖 달팽이 뿔 위의 영토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 큰 뜻이라고 하는 것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볼 때 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 아직은 희망이 있는 나라야 하고 위안을 해 본다. 까닭인즉 재해를 당한 수많은 사람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국민이 아직은 많고, 그들의 아픔을 적게나마 공유하고 위로할 줄 아는 국민들이 아직은 많기 때문이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온 국민이 함께 힘을 집약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때에 특수를 누리는 부류가 있다면, 또 그 특수를 무슨 벼슬인 양 의기 양양해 하며 사치와 방종을 일삼는 부류가 있다면, 이 나라 정치는 이를 방조한 방조자요 또한 공범자의 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IMF로 인한 기업 도산과 실직, 홍수 등의 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은 우리가 당면한 엄청난 재난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설령 이보다 더한 재난이 닥친다 해도 국가와 사회를 좀먹는 이기심을 버리고, 더불어 살려는 이타적 보살행을 너나 없이 실천한다면 쉽게 좌절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이제 심호흡을 하고 난 뒤 와우각상쟁하사蝸牛角上爭何事(달팽이 뿔위에서 어떤 일을 다툰다는 뜻)를 상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