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을 치다가 졸면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우소 - 주경
1999년 07월 209호
입산하여 출가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스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행자 생활과 강원에서 경을 보는 기간으로 꼽는다. 나의 경우는 몇 년 동안의 본사 생활과 군입대 관계로 비구계를 받고 강원에 가게 되었는데 같이 공부하던 도반 스님들이 이미 공부를 시작한 중간에 입방을 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미안함이 적지 않았고 그런 까닭에 약간의 부담을 안고 생활을 하게 되었다.
입방의 선우에 따라 철철이 새로 소임을 정하는 원칙에 따라 가장 늦게 방부를 드린 나는 조금 어렵고 궂은 소임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 2학년에 해당하는 사집반이 되면 법당의 목탁을 치는 소임을 맡게 되는데 방학과 불사로 인해 휴강이 잦은 해제철에는 별 부담 없이 소임을 맡지만 결제철에는 엄격한 대중 생활과 보름마다 삼백 명이 넘는 대중이 모이는 법회와 포살이 있어 다들 목탁 치기를 꺼려하고 설사 소임을 맡아도 두세 번 실수를 하게 되면 대중을 불편하게 한다 하여 소임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다.
원래 낙천적이기도 하고 늦게 대중에 들어온 죄(?)로 궂은 소임을 마다하지 않았던 까닭에 사집반 여름 결제철의 법당 목탁소임을 맡게 된 나는 법회 중에 가끔 조는 일을 제외하고는 큰 탈 없이 한철 소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도반 스님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철이 지나 해제를 하고 소임을 바꾼 지 며칠 되지 않아 후임으로 법당소임을 맡은 스님에게 일이 생겨 전임자인 내가 하룻동안 목탁을 치게 되었다. 하지만 일은 그 날 벌어지고 말았다. 그 날은 대중의 운력이 있어 하루 종일 뙤악볕 아래에서 일을 하고, 저녁 예불 때에는 온 대중이 심한 피로에 지쳐 있었다. 그런 날은 대중 소임자의 재량에 따라 예불 뒤 금강경 독경을 쉬기도 하는데 그 때의 소임자는 꽤나 고지식한 스님이라 예외를 두지 않았다. 지친 몸에 배부르게 먹은 저녁 공양 탓에 평소에도 잘 졸던 나는 금강경 독송을 위해 목탁을 칠 때에는 거의 견딜 수 없는 졸음에 시달리기 시작하였다. 목탁을 치다가 깜빡 졸음에 빠졌다가 번쩍 정신을 차리기를 두세 번 했을까, 옆자리의 스님이 허벅지를 툭툭 찔러 경고를 했을 때에는 이미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졸음에 빠져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 목탁소리도 같이 줄어드니 간경에 열중하던 스님들은 이상함을 느끼게 되었고, 자연스레 목탁 치는 곳을 보니 졸면서 목탁을 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예불이 끝나고 대중 방에 내려와서 가사 장삼을 벗을 시간도 없이 찰중 스님의 호출이 왔다. 스님은 껄껄 웃으며 오늘의 피로는 자신도 알지만 그래도 목탁을 치면서 조는 사람은 평생 처음 보았다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도반을 대신해서 목탁을 친 것은 고마운 일이나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백팔배 참회를 내렸다.
지치고 피곤한 몸에 백팔배를 하느라 애는 조금더 먹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경책하며 살던 대중이 아직도 마음에 의지가 됨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