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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阿難尊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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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실천자들 - 편집실 1998년 09월 199호
법이 아닌 바를 보는 것은 중생이며, 일상을 일상으로 듣는 것 또한 중생이다. 보살은 일상에서 법을 구하며 세상 만유萬有를 그대로 보고, 상相없이 들으니 그 자체가 법이 된다. 보살은 세상의 모든 부처님에게서 들은 바를 중생에게 회향回向하며 그 공덕功德을 마음자리에 두지 않는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 대부분의 경전이 이와 같이 처음을 시작하는데, 이는 아난이 들었던 것이며, 우리가 듣는 바이다. 지금 우리가 지송하는 부처님 말씀에 아난존자가 듣고 전하지 않은 바가 없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십대제자十代弟子 가운데 한 분으로 부처님 설법과 말씀을 모두 듣고 기억하여 후세에 전한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알려져 있다. 아난은 범어로 Ananda로 적으며 이는 “기쁘다” 는 뜻을 가지고 있어 무염환희無染歡喜 또는 경희慶喜로 번역하기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스물다섯살에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굳은 의지로 수행을 하였다. 석가모니 열반 뒤 가섭존자의 주창으로 경전 결집이 이루어지는데, 아난은 그 때까지 아직 아라한과를 얻지 못했으므로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 때 문 밖에서 가섭이 설한 “아난아, 문 밖의 찰간刹竿대를 꺾어버려라!” 하는 말씀의 뜻을 삼일 밤낮으로 참구한 끝에 크게 깨달은 뒤 결집회의에 참석하여 경전의 완성을 보았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내었으니 이는 아난의 기억력이 바상하였다기보다는 부처님에 대한 존경과 법에 대한 겸손, 그리움이 그 누구보다 수승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의 진리가 귀함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말씀을 후세의 중생이 받아 지닐 수 있도록 했던 아난존자의 다문행多聞行은 부처님 말씀의 공덕만큼이나 거룩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