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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불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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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8년 08월 198호
훼불이라는 말은 지난 김영삼 정권 아래에서 인구人口에 많이 회자됐다. 개신교의 장로신분인 대통령이 집권한 것을 기회로 더욱 적극적으로 교세를 늘리고 상대 종교를 약화시키려는 경향이 일부 교인들 사이에 생겨나면서 문민정부 5년 내내 훼불사건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공격적인 선교를 하는 개신교의 행태를 미루어볼 때 김영삼 정권 아래서의 훼불사건은 어느정도 예상된 것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 최고 권력자가 장로라는 점을 그들이 흘려넘길 리는 만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 아래서 발생한 휘불사건은 주로 군이나 정부 부처 등 공기관에서 특히 많이 발생했다. 그 때마다 교계의 언론들이 이러한 훼불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순서처럼 몇몇 재야단체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장로 대통령인지라 종교편향정책을 쓸지도 모른다는 교계의 폭넓은 우려를 선거 기간을 통해 잘 알고 있던 김영삼 정권은 훼불사건을 둘러싼 교계의 반발에 적극성을 갖고 귀를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한 일이긴 하지만 이런 까닭에 교계는 일정한 반사이익을 거둬들이곤 했다. 훼불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김영삼정권은 교계를 무마할 목적으로 불교관계법령 등 불교계의 요구를 수용해 개정하거나 제정하는 등의 배려를 했던 것이다.
김영삼 정권이 임기를 마치면서 교계는 이제 이 땅에서 훼불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더군다나 파계승 탈을 법정 선거홍보물에 게재했다가 낙선이라는 된서리를 맞은 여당후보를 누르고 집권한 국민의 정부 아래에서 훼불이 만연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즈음 교계가 훼불사건으로 떠들썩하다. 국민의 정부 출범 채 반 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는 훼불사건에 교계는 매우 당혹해 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외부로부터의 불교권익 침탈행위에 투쟁을 해왔던 교계의 재야단체들은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과 함께 김대중 정권에 대한 규탄의 소리를 차츰 높여 가고 있다.
최근의 훼불사건들은 불교의 종단 대표자가 기회있을 때마다 각 종교계를 돌며 종교간 화해를 역설하는 등 종교간 화합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이고 있는 도중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당혹감의 정도를 더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터져나온 훼불사건들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김영삼 정권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검찰의 부산 금선사 침탈 사건과 해병대 사병들에 의한 공공장소에서의 선교행위, 송파구청장과 강북구청장이 공식 취임식장에서 성경책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한 사건 등 정치권력에 의한 훼불이나 종교 편향행위가 잇따랐다. 집권당의 원내총무이자 ‘리틀DJ’ 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현정권의 실세로 꼽히는 한화갑 씨는「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권은 하나님이 주신 정권’ 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범인이 으레 정신질환자로 판명이 나는 광신자들의 대범한 성보훼손 행위들도 서울과 제주 등지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6월 3일 서울 방배동 보덕사 삼존불이 개신교도의 만행으로 훼손됐고, 6월 26일에는 제주 원명선원에서 칠백구가 넘는 불상의 목이 잘리는 상상을 초월한 만행이 역시 개신교도에 의해 저질러졌다.
특히 민선구청장이 성경책을 놓고 취임선서를 한 것이나, 현직 검사의 지시로 사찰이 침탈당한 사건, 또 정신질환자라고 하는 이교도가 수백기에 달하는 불상의 목을 흉기로 절단시킨 사건은 교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성보를 유린당한 사찰의 충격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 끔찍한 훼불현장을 담은 사진이 교계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불자들의 충격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정부도 이번 사건의 파장을 내심 염려하는 분위기다. 자칫 이번 사건이 종교간 분열을 초래해 국민화합을 손상시킬까봐 우려하는 기색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 종무실쪽에서도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집권당인 국민회의의 정균환 사무총장이 7월 14일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 교계의 현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등 이른바 불교 달래기에 나선 것도 교계의 최근 동향이 심상치 않음을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정균환 총장은 월주스님과 만난 자리에서 교계의 현안인 농지법 개정 문제와 국립공원입장료 폐지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등의 몇 가지 보상성 선물 보따리를 풀어놨다. 전례로 미루어볼 때 이러한 정부의 무마용 선물공세는 일정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매우 의아스러운 일은 불교종단협의회나 조계종 총무원 등 이른바 교계를 대표할만한 기구들은 아직도 이 훼불사건들을 남의 일인 양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불교종단협의회는 이번의 훼불사태에 대해 7월 중순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7월 10일 현재 조계종 총무원이 보여준 훼불대책은 종단 대표자가 경찰청장에게 재발방지와 철저한 수사를 당부하는 전화를 하는 의례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이 일이 총무원의 어느 부서 소관이냐를 놓고 미루기 내지는 혼선을 보이는 양상마저 엿보이기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모습을 아직은 찾아볼 수가 없다. 훼불사태 대처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7월 10일 열린 조계종 중앙종회 사회분과위원회는 총무원의 훼불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대처자세를 강력히 질타하기도 했다. 그러나 습관처럼 대국민 성명이나 각종 호소문 발표를 해오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이 이번 사태를 놓고는 규탄성명이나 아니면 훼불을 저지른 자들이 속한 교파를 향해 유감성명을 발표했다는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교계는 이번 사건을 놓고 지난 7월 4일 발족한 종교편향대책위 차원의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21개 단체로 구성된 이 대책위는 7월 9일 기자회견을 갖고 7월 18일 가칭 ‘국민정부 종교편향 척결을 위한 불교지도자 비상대책회의’ 를 구성했다. 또 8월 8일에는 조계사에서 종교편향 규탄대법회를 열어 잇따르는 훼불행위에 대한 강력한 근절의지와 대국민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이 모임에 조계종 종회나 총무원 집행부의 참여를 끌어들이는 방안도 모색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투쟁을 통해 교계가 얻어낼 것이란 그리 많지 않다는 현실에 있다. 사실 훼불의 대가를 바란다는 자체가 말도되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교계, 특히 책임있는 종단대표기구가 이번 사건에 대해서 단호한 대응을 외면한다면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될 우려도 아주 없지는 않다. 이렇게 된다면 모르긴 모르되 불상을 훼손한 정신질환자에게는 이전의비슷한 전례보다 조금 강한 제재가 강해지고, 성경책을 놓고 취임선서를 한 구청장에게는 적절한 수준의 당부성 문책공문이 전달될 것이며, 현역 해병들의 공공장소 선교행위는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교계는 이제 훼불에 대한 대응방식에 일대전환을 모색할 시점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목소리 높여 대응을 하고, 형식적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고, 적당히 보상을 받는 그런 것이 아닌 더욱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을 맞고 있다.
먼저 교계는 훼불대책을 세움에 있어 필수적으로 싫든 좋든 불교가 이제 더 이상 이 땅에서 제1의 종교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훼불은 제1종교인 불교에 대한 소수종파인 이교도의 도전이었다고 한다면, 그래서 이런 까닭에 어느 정도의 훼불은 소수 종교 집단의 일탈된 행동으로 치부해온 면이 있었다면 지금부터의 훼불은 땅끝까지 전도를 한다는 그들의 선교 모토가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불교를 말살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받아들여야 하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교계는 또 잇단 훼불사건의 범인들이 이상할 만큼 정신질환자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배후세력이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불교를 음해할 목적으로 정신질환자나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던 사람을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훼불을 사주하는 검은 집단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시각에서 사건을 대해야 한다.
이 밖에도 기성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의 종교편향 행위나 발언들이 평소 그들의 신앙생활에 의해 습관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점을 예의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 나라의 지도층이 차츰 기독교 신자들로 채워져 가고 있으며, 이들이 보이는 여러 가지 기독교적 행동거지들이 차츰 우리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징후가 아닌가라는 관점을 교계가 시급히 인식하기를 요구하는 현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훼불사건을 대할 때마다 으레 내리는 결론이기에 이젠 식상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근원적인 훼불대책은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불교가 소수 종교로 전락하고 있고, 특히 40대 이하의 젊은 층에서 불교인의 숫자가 급전직하하고 있는데도 교계가 지금처럼 별다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한 훼불사건은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종교에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통한다는 사실을 교계가 시급히 인식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