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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나무에 생명을, 경판에 희망을 담는 나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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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과 사람들 - 이윤수 1998년 08월 198호
장경각 틈새 사이로 얼굴을 디밀면서 고려대장경이 어찌 생겼나를 바라보는 이웃들에게 ‘아, 이 나무가 고려대장경의 바탕이 됐구나’ 하는 믿음이 되었던 것일까? 고려대장경이 모셔진 해인사 수다라장 입구에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손때 묻어 반질반질 빛나는 나무토막 하나가 걸려 있다. 그 나무 아래엔 ‘고려대장경의 경판이 됐던 자작나무’ 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최근 해인사를 찾아간 박상진 교수(경북대 임산공학과)는 해인사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께, ‘나무학자’ 로서 부탁 하나를 간절히 올렸다. 고려대장경의 바탕이 된 나무는 이제 산벚나무와 돌배나무가 중심이었음이 드러났으니 저 빛바랜 자작나무 대신 자신이 표본으로 갖고 있는 나무들을 보시하겠노라고. 머잖이 수다라장 입구엔 또 다시 관광객들의 손때 절어 있을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를 만나게 될 일이다.

1940년생. 서울대 공대를 나와 일본 교토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상진 교수의 주 전공은 ‘목재 해부학’ 이다. 의대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인체 해부학이듯 나무를 다루는 이에게 가장 기본 되는 작업은 생명체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형태를 통해 세포의 본래 나무이름을 찾아주는 것이다. 그는 나무의 세포를 통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밝혀내고, 그 나무가 베어질 때 적어도 어떤 상태의 원목이었을지를 추정해 낸다. 나무의 분포도로 봐서 나무의 고향이 어디인지, 오늘날 전하는 그 나무의 보존 상태는 어떤지를 헤아려 내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미 박상진 교수는 천마총에 쓰인 나무의 재질을 파악해 냈고, 공주 무령왕릉의 출토 유물의 다수가 중국 양나라 유물이 많아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때 무령왕의 관은 일본에만 자라는 금송임을 밝혀 당대 일본과 중국과 우리가 활발한 교류를 했음을 밝혔다.
그런 그가 고려대장경의 역사를 밝히는 또하나의 열쇠를 찾아내기 시작한 건 1992년 한 지방 방송사에서 팔만대장경 5부작을 준비하면서 장경의 나무 종류를 연구해 달라는 의뢰를 해오면서부터다. 나무와 인연 맺으면서부터 늘 고려대장경 경판의 나무 세포조직과 나무 성질은 어떤 것일까를 궁금히 여겨왔던 그로선 목조 유물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장경의 연구작업이 행운으로만 여겨졌다.
적어도 경판에 사용하는 나무는 재질이 균일하고 미세해서 글자 한획한획이 깨끗하게 파져야 하고 너무 단단해서 글자 새기기가 어려워서도 안 되는 법인데 막연히 세간에 알려진 자작나무는 그런 점에서 적당하지 않은 목재라고 여기고 있던 터였다.
석 달 남짓 방송사와 함께 장경각 동서 사간고에 쌓여진 버려진 폐판에서 추출한 부스러기를 갖고 연구에 들어갔다. 첫번째 조사에서 250여 점의 표본을 선정해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로 드러났다.
이후 1994년 이태녕 박사를 중심으로한 고려대장경판 기초 연구팀에 참여하면서 2년여 동안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폭넓은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 첫 번째 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산벚나무, 돌배나무가 전체 구성의 75퍼센트를 차지했다. 기타 층층나무 단풍나무 후박나무 등이 폭넓게 검출되었다. 자작나무는 1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 수치였다.

수집된 경판 부스러기는 물속에 넣었다가 연화처리된 후 로타리 마이크로톰으로 얇다란 절편을 만들어 영구 프레파라트로 제작된다. 이를 광학 현미경과 주사전자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연구실에 대형 모니터를 놓아두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산벚나무든 돌배나무든 현미경 사진 속에 드러난 조직이 퍽 닮아 있다는 것이다. 세포 조직이 고르고 적당히 단단한 것들이란 공통점! 전자 현미경이 없던 그 시절에 이미 선조들은 어떤 나무가 경을 새기기에 좋은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조성해야 천년 세월을 이어갈 것임을 ‘축적된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다. 전란 속에서 다 잃고 말았으나 삼국 이래 이 나라의 문화가 ‘나무로 꽃피웠던 문화’ 였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워낙 미세해서 꼼꼼히 작업해야 하는 일도 어렵지만 실은 국보라서 자그맣게 떼어내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죠.
버려져 동서 사간고에 놓여진 폐판을 밀어서 가루를 떼거나 경판 사이에 떨어져 있는 부스러기를 주워 가며 표본 채집용을 얻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떼어진 경판 부스러기는 저마다 고려대장경 경판과 똑같이 제 몇함 몇장의 이름을 달고 시료가 돼 작은 상자 속에 누워 있다. 얇다란 유리판에선 단단한 목재가 골라져 경판으로 제련되고 바닷물에 담궈지며 실력있는 각수들에게 몸을 맡긴 채 있던 나무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치지 않는 전란을 대장경 조성으로 이겨내려 했던 고려인의 숨결이 그 안에 숨쉬고 있었다. 박상진 교수 연구실 한켠에 빼꼼히 쌓여 있는 상자 하나하나는 고스란히 장경각이었다.

산벚나무나 돌배나무 단풍나무류 등 목재로 밝혀진 나무는 북쪽 추운 지방을 제하곤 이 땅 어디에서나 흔히 자라는 나무들이다. 칠백 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아름드리 나무들이 산하에 지천이었던 시절, 박교수는 그 동안 목재 문화재의 재질들을 분석해 본 결과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경판의 성분으로 보아 대장경 조성 시기에도 활엽수가 많았던 것으로 보아진다. 목판 인쇄 재료로선 최우량 나무인 산벚나무는 산야에 흐드러지게 꽃피어 있었고 꽃 필 무렵이면 멀리서도 쉽게 산벚나무를 식별할 수 없어서 몽고군에게 유린당한 땅에서조차 몰래 나무를 베기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면 왜구를 막기 위한 선박 건조사업이나 새왕조에 의한 각종 건축사업으로 삼림의 파괴가 이루어졌고, 숲속에 흔히 분포하던 활엽수 대신 소나무과의 나무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기둥의 수종을 조사한 결과 느티나무가 가장 많으며 특히 법보전은 마흔 여덟 개의 기둥 중에 마흔 일곱 개가 느티나무로 밝혀졌다.
“느티나무는 원삼국 시대 고분인 임당 고분, 신라 천마총, 무량수전, 고려 초기 화물선인 완도선까지 옛부터 널리 쓰였던 귀중한 우량재였습니다. 느티나무가 쓰인 법보전은 적어도 고려말 이전, 삼림 파괴가 심하지 않았을 때 건축되었던 반면 수다라장 기둥은 상당한 양의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등 침엽수가 많이 사용된 것으로 미루어 느티나무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여러 수종으로 대체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동서 양 사간고는 1900년대 이후로 미국에서 도입된 리기다 소나무가 검출된 것으로 보아 최근 문화재 보수 때 사용한 것으로 보아집니다.”

그렇다면 왜 그 동안 고려대장경의 나무는 자작나무라고 알려진 것일까? 박교수는 옛 문헌을 뒤져 그 의미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고려사나 조선왕조 실록 어떤 문헌에도 자작나무라는 이야기는 없다. 누구도 명확하게 나무의 종류에 관한 근거를 남긴 일도 없다. 다만 근대에 이르러 여러학자들이 화목樺木이란 기록을 남겼다.
박상진 교수는 이 화樺자란 오랜 옛날부터 자작나무와 벚나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 썼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문헌사적으로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사람으로서 적어도 자작나무가 중심을 이룰 수 없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인사 장경각을 처음 순례하던 날, 박상진 교수는 대장경 경판 한장한장에 항몽의 정신을 새겨넣은 선조의 정성 앞에서 경외심으로 숙연함에 젖어 옷깃을 여몄다. 그 때문에 지금껏 연구비조차 미미한 대장경 연구에 일생을 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교수는 1년 전 손수 인터넷에 홈페이지 (http://bh. kyungpook. ac. kr/~sjpark/)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이 한평생 연구한 학문적 성과를 담아두었다.

경북대학교 임산 공학과 목재 조직학 연구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나무로 만들어진 주요 우리나라 목질 문화재의 재질을 조사연구한 결과를 보실 수 있으며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공주무열왕릉의 관재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당신은 1997년 5월 27일 이후 14,880번째 방문객 입니다.

박교수의 사이트엔 팔만대장경이란 무엇인가, 경판의 나무종류 분석, 경판 보존 현황과 조사자료관련 논문을 비롯해 조선왕조 실록 시디롬으로 본 팔만대장경과 대장경 관련 문헌, 논문 모음 등 다채로운 내용이 하나 가득 들어있다. 빙긋이 웃는 예쁜 동자승 아래 경판사진이 등장하고 사이트 마다 경판의 각종 나무세포조직을 종횡으로 선보이는 살뜰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행간마다 흐르는 지극한 신심, 친절하고 자상하기 이를데 없는 그의 내면을 읽을 수 있던 것도 인터넷을 통한 성과였다.
“평생 해도 끝내지 못할 불사라고 생각합니다. 경판 하나하나의 수종을 모두 밝혀내는 일, 당대에 그 나무가 자라고 있던 지역을 밝혀내는 일 모두 제가 밝혀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올여름 휴가를 대신해 강화도를 찾아 그 곳의 수종분포와 나무 이운 과정을 살피고 올 예정이다. 아직 출판사는 구하지 않았지만「대장경판, 신비의 베일」이란 제목의 원고도 집필했다. 나무를 통해본 학자의 추정이 또 다른 베일을 벗길 수 있는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는 그의 확신에 찬 작업이다.
선조들이 물려준 세계의 인류문화유산이 나무를 바탕한 만큼 나무 전공자로서의 몫을 다하겠다는 그의 원은 이제 관심있는 무수한 전공자와 함께 고민하는 일로 이어질 것 같다. 한국과학재단에 대장경판 연구회란 모임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나무 전공 학자들이 머리 맡대고 세미나를 하고 연구를 하면서 오롯하게 모아진 학문의 세계를 펼쳐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사라지고 생성되는 세포, 그 생명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속에서 나무 하나를 통해 역사를 넘나드는 사람, 자신과의 사명감 그 고뇌에서 출발해 이를 세간에 알리고 세계 속에 전하려는 자존심으로 치열하게 고려대장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박상진 교수야말로 장경각 안에 숨쉬는 대장경판에겐 사라지고 없는 자신의 고향이야길 되찾아 주려는 희망의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