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사선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본 : 조사선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서옹 : 의식과 무의식을 투과하고 일체를 투과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야. 인간의 참모습을 찾는 것이지.
성본 : 인간의 참모습이란 ‘참사람’ 을 뜻하는 것인지요.
서옹 : 참사람이지. 그러나 일체를 투과한 ‘참사람’ 이지 의식 차원에서 말하는 ‘아트만’이 아니야.
심재룡 : 참사람이란 진인眞人이란 말은 조사선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에도 나옵니다. 이때 진인은 조사선의 진인과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서옹 : 여러종교에서 진인이란 말을 쓰지만 조사선의 진인과는 다른 것이야. 임제 스님이 말한 진인은 일체를 투과한 사람이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진인은 일체를 투과하지 않은 사람이야. 차원이 달라.
심재룡 : 한국 불교역사에서 깨달은 인물들이 있습니까.
서옹 : 있지. 태고보우 스님, 나옹화상 모두 다 훌륭한 스님들이지.
성본 : 조사선은 생활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인이 좌선․명상․사유의 문화 그 자체를 일상의 생활종교로 만든 것이 조사선의 특징입니다. 육조단경에서 이야기하는 좌선의 정의는 철학적 틀을 벗어나지 못한 형태이지만 당대 조사선은 그러한 철학적 선의 정의를 벗어나 그 정신을 지상의 생활종교로 끌어내렸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조사선의 정신을 명맥히 계승해 온 한국불교 입장에서 조사선 입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옹: 조사선이 일상의 생활선이라고 보는 것은 옳은 말이야. 그러나 일상생활 자체를 선이라고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지. 부처님이 깨달은 각覺의 경지가 있어야 해. 인간의 깊은 깨달음의 경지는 일상생활에서 자유자재한 것이야. 의식과 무의식을 투과하고, 일체를 무한히 투과하는 것이 조사선이야. 이런 바탕 없이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선을 그냥 조사선이라고 하면 안돼.
성본 : 마조 스님의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상생활상 속에서 ‘평상심’ 을 상실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육조단경이나 혜능 설법에도 도는 마음에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서옹 : 평상심이 바로 도야. 그러나 일생생활에서 말하는 평상심과는 다르지. 평상심 바탕은 일체를 무한히 투과하는 자유자재한 것에서 비롯돼. 그 바탕 없이는 안 돼.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평상심’ 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
성본 : 경전에서 이야기 하는 ‘여래장’ 이라던가 ‘진여자성’ 이란 말을 마조는 ‘평상심’ 으로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서옹 : 조사선에서는 교외별전이라고 해서 진여, 여래, 불성 그런 말에 매달리지 않아.
2. 선 수행과 공안 참구의 문제점과 해결점은?
성본 : 한국 선은 고칙공안 하나만을 참구하는 단조로운 수행이기 때문에 기초 불교학이나 교육체계가 너무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 공안을 타파한 사람은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사람은 무기력한 수행자로 남습니다. 깨달음만을 기대하는 대오각성적인 수행구조가 혹 공안선 수행의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닌지요.
서옹 : 단조롭지만 일체를 통할 수 있어. 올바른 길로 가면 일체가 통해서 자유자재하여 걸림이 없어. 깨달음의 경지에는 차별이 없는 거야. 깨달은 사람은 다 존경해.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생활이야. 인가 받지 못한 사람은 노력 해야지.
전병재 : 무한참구로 들어가기 이전에 따로 준비할 것이 있습니까.
서옹 : 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음이 중요해. 모든 것을 투과하겠다는 그 결심이 중요한 것이지.
전병재 : 조사선으로 바로 들어가기 전에 사념처四念處 단계를 거쳐서 조사선으로 들어가는 것이 올바른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서옹 : 근기에 따라 하는 게야. 처음부터 조사선을 해도 무방하지. 화두 드는 것은 누구든지 들 수 있어. 처음부터 화두를 올바로 드는 것이 중요해.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공안참구야. 선지식의 지도를 받으면 화두를 쉽게 들 수 있어. 지도를 잘못 받으면 어렵지.
전병재 : 지도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선지식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옹 : 개인이 노력해야지.
종림 : 선이 최고라고 하지만 선이 왜 최고인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스님의 깨달음과 우리의 깨달음은 다른지, 깨닫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요.
서옹 : 무한히 일체를 투과해서 구경의 자리에 가면 똑같애. 문제는 거기까지 가지 못한 단계에서 헤매는 것이지. 개인의 근기와 수행력에 따라 도중에서 헤매는 것을 조심해야 해.
종림 : 깨닫는 것도 질의 차이가 있습니까.
서옹 : 무한히 일체를 투과해 깨달으면 똑 같지. 그러나 그러한 단계에 가기 전에 단계적으로 깨닫는 것은 질적인 차이가 있어. 도중에서 차별이 있는 것이지. 차별이 있는 것을 갖고 문제를 삼으면 한이 없어. 최고의 구경 자리는 무엇인가. 그것만을 파고들어 해결해야 해.
일수 : 선방에서 간화선 위주로 참선을 하는데 근자에 위빠사나나 염불선, 묵조선으로 수행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두선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서옹 : 화두 조사선은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올바른 길이고 지름길이야. 다른 것은 구경의 자리에 가기 전 중간 단계에서 해결하는 것이지 구경까지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종묵 : 깨달음을 얻으면 오도송을 읊습니다. 오도송은 오도를 한 상태서 일부러 지어내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자연히 내부에서 흘러 나오는 것입니까.
서옹 : 자기 내부에서 흘러 나오는 그대로를 표현한 거야. 의식을 바탕으로 일부러 지어낸다면 이상한 거지.
종묵 : 한문 세대 스님들은 당연히 한문에 대한 학문적 소양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도송을 하는데 있어 한문으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요즘 젊은 한글 세대스님들이 많습니다. 한글 세대이기 때문에 한문에는 능통하지 못합니다. 오도송이 내부에서 자연히 흘러 나오는 것이라면 한문보다는 한글 게송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지요.
서옹 : 게송을 한문으로만 하라는 법은 없어. 한글로 해도 돼.
종묵 : 법어도 한문게송을 하거나 한문투의 법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선에 접하려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상당법어를 꼭 한문법어로 시작해야만 하는 것인지요.
서옹 : 종교는 전통이 있어. 선이 중국에서 일어나 한문으로 하다보니까 한문으로 한 거야. 꼭 한문으로만 하라고 하지는 않아. 한국사람은 한국말로 해도 돼. 전통을 살리면서 우리것을 살리는 방법을 쓰면 되지.
종림 :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서옹 : 돈오점수는 보조스님이 주장한 것이야. 보조스님이 말한 ‘돈오’는 지혜로 깨달은 것이지. 지혜로 깨달았기 때문에 망상이 남아 있고, 망상이 남아 있으니 계속 점수해야 한다는 게야. ‘돈오돈수’ 는 지혜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을 투과해 깨달은 거야. 본래 망상이 없는 자리를 찾은 거지. 없앨 것이 없기 때문에 돈수가 되는 거지. 조사 스님들의 입장은 돈수의 경지에서 한 것이야. 점수는 순수한 조사선과는 다르지. 보조스님의 점수는 조사선과는 다른 수행법이야. 완연히 근본이 달라.
지선 : 우리는 중국에서 만들어 놓은 화두선만을 들고 있습니다. 한국불교에 맞는 독창적인 화두선을 만들어 들면 안되는지요.
서옹 : 한국적인 화두선을 들어도 돼. 전통이 있기 때문에 주로 중국 화두를 드는 게야.
지선 : 부처님이 깨달은 후 3․7일간 선정에 들다가 깨어보니 깨달은 바를 그대로 설하면 중생들이 모를 것 같아 근기에 맞게 설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어려운 조사선이 왜 이 시대에 그대로 적용돼야 하는 것입니까?
서옹 : 부처님 깨달음의 극치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조사선이기 때문이야.
정리/채한기(법보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