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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밝은 빛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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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 안도현 1998년 08월 198호
반딧불이 몇 마리가 풀잎 끝에 붙어 살고 있엇다.
초록 풀잎 끝에 맺힌 물방울을 빨아먹으며 그들은 어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뒤꽁무니에 노랗게 불을 켜고 일제히 날아오르기만 하면 여름밤은 반딧불이의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지긋지긋하고 깜깜한 어둠이 싫어.
나는 오늘밤에 틀림없이 도시로 떠날 거야.” 반딧불이 중에 몸이 가장 튼튼하고 날갯짓 솜씨가 좋은 녀석이 말했다. 그는 이미 혼자서 도시의 입구까지 날아갔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다.
“도시는 밤도 대낮 같아서 우리가 애써 불을 깜박거릴 필요가 없지. 우리 몸의 수백, 수천 배가 되는 전등이 집집마다 거리마다 환하게 밝혀져 있거든. 그뿐만 아니라 네온사인이라는 불빛은 얼마나 화려하게 깜박거리는지 나는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
이 말을 들으며 어린 반딧불이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들은 도시의 입구는커녕 이 풀밭 너머로는 단 한번도 날아가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풀밭에 사는 반딧불이들의 불빛을 한곳에 다 모아도 도시의 네온사인 불빛을 따라갈 수 없을 거야. 암, 어림도 없지. 나는 도시로 가서 네온사인처럼 밝고 화려한 빛을 만들어 내는 법을 배워 올 거야.”
그리하여 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그는 풀밭을 떠났다.

반딧불이는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도시의 입구에서 잠시 나뭇가지 끝에 내려앉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기가 날아온 곳을 되돌아보았다. 그 곳은 빛 하나 없는 암흑이 절벽처럼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저렇게 어두운 곳을 어떻게 날아왔는가 싶어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도시는 달랐다.
도시는 머리에 어둠을 이고 있었지만 그 자신은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는 동화 속의 궁전처럼 보였다. 그는 도시 속으로 날아가기 위해 발끝에다 힘을 주며 나뭇가지 위로 날아올랐다.
그의 꽁무니에서 불빛이 깜박, 하고 빛났다.
그는 도시의 공원에서 희미한 빛을 비추면서 한 줄로 늘어선 가로등을 만났다.
비록 불빛의 밝기는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반딧불이의 불빛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는 가로등에게 말을 걸어 보려고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갑자기 한 떼의 나방들이 나타나 반딧불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온몸이 얼룩덜룩하고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나방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섰다.
“나, 반딧불이…”
반딧불이는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너는 우리의 영역을 침입했다. 목숨을 잃고 싶지 않거든 어서 이 곳을 떠나라.”
그는 변명 한마디 하지 못하고 가로등 부근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길거리로 나왔다. 길에는 강렬한 두 줄기 빛을 내쏘며 달리는 자동차들이 보였다.
반딧불이들이 밤새워 날아갈 길을 단 몇 분만에 당도하는 자동차들. 자동차의 속도와 헤드라이트 불빛의 비밀을 배운다면 반딧불이 사회에 일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반딧불이들이 자동차와 비슷한 속도로 날 수 있게 되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거미줄 따위에 걸려 생명을 잃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 잠깐만요…”
반딧불이는 달리는 자동차에게 말을 걸기 위해 길 한복판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순식간에 길옆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자동차의 속도가 일으키는 사나운 바람 때문에 그는 말 한번 제대로 걸어 보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반딧불이는 도시의 형광등 불빛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아파트로 날아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창문을 열어 놓고 반딧불이를 기다리는 집은 한 군데도 없었다.
아파트마다 방충망이 촘촘하게 쳐져 반딧불이의 접근을 막는 것이었다. 반딧불이는 아파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한여름밤 반딧불이처럼 빛을 깜박거리는 네온사인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네온사인은 그가 도시를 동경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반딧불이는 긴 시간 동안 도시를 찾아와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느라 피곤했지만 네온사인을 찾기 위해 날개를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도시는 반딧불이가 살던 풀밭처럼 그저 아담한 곳이 아니었다. 도시라는 거대한 빛의 궁전은 풀잎 끝처럼 마음을 놓고 길들일 곳도 없었으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이었다.
반딧불이는 가까스로 울긋불긋한 빛을 깜박거리는 네온사인을 하나 찾아내었다.
다른 어떤 불빛보다 네온사인 불빛의 비밀을 알기만 한다면 그는 오늘밤이라도 당장 풀밭으로 되돌아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가 발견한 네온사인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지기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온 도시가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깜깜해졌다.
반딧불이가 목표로 삼았던 네온사인도 어둠 속에서 온 데 간 데가 없었다.

그 때였다.
도시의 어느 집에서 누군가 촛불 하나를 켜는 것이었다. 가로등보다도 자동차 헤드라이트보다도 형광등보다도 네온사인보다도 작은 촛불이 창문 하나를 발갛게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제야 반딧불이는 깨달았다. 크고 화려한 것만이 이 세상을 밝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저 작은 촛불보다 더 작은 반딧불이 같은 존재도 얼마든지 세상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