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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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손여림
1998년 08월 198호
막연한 대상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쑥스럽고 어색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더 쉽고 편안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내가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얼마전 텔레비전에 크게 보도되었던 ‘잠수정 침투 사건’ 때문이야. 그것을 보고 갑자기 우리가 통일을 꼭 해야 되는 것인지, 또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생겼거든. 그리고 물론 내가 편지를 쓴다고 해서, 너희의 의견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또래의 북한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지도 궁금했고.
북쪽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란 노래는 없지?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 노래를 배운다. 그래서 은연 중에 통일은 꼭 이룩되어야 할 민족의 소망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하지만 이런 생각은 피상적이고 기계적인 것일 뿐이지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간절한 소망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 모두가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아니잖아. 그래서 통일이 되기를 바랬다가도, ‘잠수정 사건’ 같은 것을 보면 북쪽 사람들이 미워져서 통일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쉽게 생각하게 돼. 하지만 얼마전 북쪽으로 정주영 씨가 소떼를 몰고 갈 때, 북쪽에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리워 오열하는 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어. 우리도 만일 가족들과 떨어져서 그들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지내야 한다면 정말 슬프겠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서 그래도 통일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굳은 생각은 우리 민족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남북의 정치인들이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해서,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불리해진다 싶으면 상대방 국민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사실을 왜곡시켜 우리에게 알리는 것 같은 일 말이야. 너희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공심’ 을 함양시킨다는 명목으로 교육을 받아왔어. 그래서 나는 어려서 북쪽 사람들은 모두 뿔이라도 달린 무서운 사람들인 줄 알았다. 이렇게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는 단순히 언론이나 교육을 통해서 상대방 주민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 하지만 이처럼 서로간에 신뢰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할 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통일에 대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을 버리고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분단이 돤지도 한참 지났고, 세월이 변했는데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일에 대한 정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잖아.
하지만 과연 한반도에 한 사람의 대통령을 갖는 통일만이 이 시대의 유일한 통일일까? 그리고 이러한 통일이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하다면 차선책을 간구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도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너희들은 통일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니? 나는 남북한간에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남북한 주민이 각기 익숙해 온 제도와 사상을 존중받아 가면서 서로 왕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족적 통일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서로간에 신뢰감이 먼저 형성되어야 할 것이고. 왜냐하면 정치적 신뢰가 형성되어야 남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니깐. 그리고 정치적 신뢰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남한 정권의 안보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는 지금의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거야.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바뀌면 남북한 주민들이 비자를 발급받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잖아.
지금과 같이 남북한이 각각 통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북한은 남한을 무력으로 흡수하려고 하고, 남한은 북한을 경제력으로 흡수하려는 고정 관념은 서로간에 긴장감만 유발시킬 뿐이라고 생각해. 남북한이 모두 이와 같은 욕심을 빨리 버리고 민족의 안녕과 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도 남한은 해마다 십오조 원 가량의 국방예산을 소비하고 있고, 육십만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산업전선을 외면하고 북쪽을 향해 총을 들고 서 있어.
지금까지의 통일방안, 통일개념을 크게 수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할 테고, 반작용으로 군사력은 계속해서 확장될 거야.
지금은 발상전환의 시대야. 통일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민족적 낭비는 계속될 거야. 우리 민족이 서로 이해하고,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며 그래서 세계에서 우리민족의 힘을 발휘하는 것, 이것이 통일의 대의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되고, 군사적 긴장이 해소된다고 해서 남북한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앞에서도 말했지만, 분단이 된 뒤 계속해서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사고체계를 가지고 생활해 왔는데 이에 대한 문제해결 없이는 우리민족의 통합이 불가능할 거라고 믿어. 물론 수많은 세월 동안 익숙해 온 사회, 문화적 차이를 하루 아침에 극복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합일점을 찾으려는 꾸준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거야.
너희들도 물론 알고 있겠지만 동독과 서독도 우리처럼 분단된 상태로 사십오 년을 보내다가 통일이 되었어. 나는 둘이 합쳐진 독일 통일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데.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하는 과정에서 동독의 많은 지식인들이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대. 왜냐하면 둘이 통일될 때 거의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형식을 취했잖아. 그런데 서독은 자본주의 국가였고 동독은 사회주의 사회였잖아. 따라서 동독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사상에 평범한 서독 사람들보다도 무지했고, 자연히 그들은 통일이 된 독일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을 해낼 수가 없었던 거야. 그리고 대신에 그들은 단순 노동자나, 청소부, 아파트 관리인 등의 직종으로 전락하고 말았대. 이 이야기를 읽고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 우리나라도 통일이 될 때, 서로에 대한 충분한 사전 지식과 그를 바탕으로 한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끊임없이 공존과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통독에서 일어났던 문제가 똑같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너희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북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할 거야. 북한말이나 너희들이 받는 교육, 그 곳에서 유행하는 노래나 책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 기회가 없고, 단순하게 너희들의 문화는 저급한 것이고 함부로 우리가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만 배워 왔어. 그래서 내 생각인데 정치적인 통일이 지금 당장 이루어 진다면, 우리는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남북한간의 문화, 예술, 학문 교류는 상호 이해의 증진과 신뢰의 구축 및 민족 의식의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증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제까지처럼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교류가 좌지우지되어, 정치적 군사적 상황이 악화되면, 따라서 교류도 중단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이제는 이러한 구태의연한 모습을 탈피하고 갈라진 민족을 하나로 끌어내는 진정한 사회,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할 거야.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 문화적 교류를 정치적인 문제와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지속시키겠다는 남북 당국의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하겠지.
우리는 끊임없이 통일이 오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노래까지도 만들어서 통일을 염원하지. 하지만 가사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꿈에도 바라고 정성을 다한다고 해서 그냥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거야. 가만히 누군가가 통일을 이루어 주겠지, 아니면 통일이 이루어져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하고 가만히 있는다면 정말 우리에게 통일은 단순한 ‘소원’ 이요, ‘꿈’ 으로만 머물고 말 거야.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고로 서로에 대한 끊임없는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통일의 길은 마냥 멀고도 험난할 거야. 이제부터는 우리 젊은 학생들부터 노력해서 하루라도 빨리 통일의 날이 올 수 있도록 하자.
내가 편지를 이렇게 쓴다고 해도 너희들이 받아보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나의 새로운 생각이 우리 국민의 생각을 변화시켜서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대할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