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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의 사찰들 어떻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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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효림 1998년 08월 198호
정권이 교체되자 아이엠에프로 나라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역시 남북 문제이고 또 통일 문제라고 해야겠다. 지금 김대중 정부는 남북 문제에 새롭게 햇빛정책을 들고 나왔다. 이 말 속에는 그 동안 역대 정권의 대북 정책은 찬바람이 도는 경직된 정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현 정부의 햇빛 정책이란, 찬바람으로는 두터운 외투를 벗게 할 수 없고 오직 외투를 벗기는 것은 따뜻한 햇빛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정주영 씨의 소떼가 판문점을 거쳐 북쪽으로 넘어갔고, 9월 25일이라고 날짜까지 못박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올해 들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다녀왔다. 정부에서도 누구를 막론하고 북쪽의 초청장만 있으면 방북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민간교류와 경제교류는 전면 허용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다만 정부와 정부의 거래는 하나를 주면 하나를 얻는 방식의 정책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먼저 민간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그 뒤에 정부와 정부가 대화를 해도 늦지 않다는 뜻인 모양이다.
이 같은 정책은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전면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데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정주영 씨의 소떼가 넘어가는 그 시기에 동해 앞바다에 잠수정이 나타나 포획되었고, 연이어 동해 앞바다에 침투하다가 심장사한 무장병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되자 일부에서는 정부의 햇빛론에 대하여 비판하는 소리가 높다.
이렇게 남북간에 하루를 예측하기 힘들게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남북간의 변화와 교류가 확대되어도 그에 대한 사전 준비 하나 없는 우리 불교계가 문제이다. 알다시피 많은 사람이 북한을 다녀왔다. 그 가운데는 종교계와 문화계, 경제계가 다 포함되어 있다. 한데 오직 거기에 끼이지 못한 것은 불교계뿐이다. 들리는 말로는 북한쪽이 당분간 불교계와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다. 그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모 불교계 인사가 그 동안 대북지원(북녘 동포 돕기) 활동을 해 오면서 지나치게 언론에 폭로(북녘의 참상을 정도 이상으로 알린 것)을 일삼아 온 것에 대한 불만과, 또 모 인사는 대북 접촉시 교계 고위급 인사의 방북 초청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북한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지금 다른 사람들이 가고 있는 북한 방문을 우리 불교계만 못 가고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을 방문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우리에게 남아있는 경쟁 심리와 자존심으로 보더라도 남들 다 가는 방북을 우리만 못 간다고 하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그 기분 나쁜 것은 기분 나쁜 것으로 끝나지만, 통일운동을 하는 차원에서 볼 때 방북을 못한다는 것은 그렇게 기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방북을 하고 북쪽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를 가지고 하는 것은 그것만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그러한 접촉을 통하여 통일운동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 통일운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94년 종단개혁 뒤 우리 불교계와 종단은 한국사회에서 그 위상이 높아졌다. 총무원 차원에서 부장급의 인사를 여러 번 방북시켜 북한 사찰을 돌아보고 그 실태를 파악하고 통일 이후의 전통사찰 관리와 보존에 대하여 연구해야 했다. 물론 대북 포교 전략 같은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하여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은 신문지상에 이름이 나는 그런 일이 아니다. 뒤로 아주 은밀하게 해야 하는 일이다. 한데 우리는 그 동안 하는 일 없이 신문에 이름 내는 일에만 집착해 온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그것이 역효과를 나타내어 북쪽이 대화 거부를 선언하고 있다.
해마다 8.15가 돌아오면 민간 통일 운동 단체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어떻게 해서든지 통일을 위한 대중집회를 크게 한번 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큰 고민거리이다. 몇 년 전 한총련의 연세대 집회로 여론의 지탄과 김영삼 정부의 초강경 진압을 받은 그것도 바로 범민족대회라는 통일집회였다. 그 무렵 학생들의 과격성은 충분히 비판받고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할 때 지금과는 달리 그 때만 해도 김영삼 정부는 김일성 사망 뒤 차가운 바람의 대북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의 통일집회는 원천봉쇄를 당하고 있었고, 이럴 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이 과격시위였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도록 한 정부도 아울러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직도 성사여부가 불투명하긴 하지만 정부의 지원 아래 판문점에서 통일 축전을 준비하고 있는 정도이다. 여기에 오는 9월에 금강산 관광이 현실로 다가오면 남북관계는 엄청난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특히 올해는 김정일이 정식으로 국가 주석직을 계승하고 새로운 자기식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되는 때여서 우려와 동시에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때에 불교계에서 아직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다면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옛날에는 냉전시대를 핑계대고 그냥 아무 노력 없이도 지나갔지만 이제는 그냥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먼저 발등에 떨어진 불이 금강산이다. 알다시피 금강산은 산 전체가 우리 불교계의 성지다. 그런 우리의 성지가 관광지로 개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일 보듯이 쳐다보고만 있다. 나는 이직 이 일로 우리 불교계와 종단의 책임 있는 스님이 현대측 사람을 만나 협의를 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통일원과 현대건설과 그리고 더 나아가 북한 정부와 끝없는 접촉을 통하여 협의를 해야 한다. 그리하여 금강산은 우리의 성지임을 주장하고 인식시켜야 한다.
당장 급한 것은 금강산이 불교성지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인식시키는 일이다. 아니 우리가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먼저 이 일만이라도 해야 한다. 이 일은 돈 없이 입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현대가 금강산을 개발할 때 반드시 불교성지인 사찰을 잘 보전하고 복원을 해야 함을 주장하고 요구해야 한다. 금강산 초입에 있는 장안사와 장안사의 산내 암자인 유점사만이라도 우리 불교계가 나서서 관리 보수비를 북측에 지원하고 나아가 스님을 파견 상주하게 하는 것도 협의해야 할 것이다. 아! 통일의 길. 우리 불교계는 갈 길은 멀고 마음만 급하구나. 저 장안사 유점사 우리 옛 스님들이 수도하던 곳. 그 곳을 어찌할꼬.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