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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生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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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숲 - 무무생 1998년 08월 198호
푸른 하늘 흰 구름 흘러가고 하얀 구름 아래 말들이 뛰노네.
채찍을 휘둘며 사방으로 소리치니 온갖 새들 즐겁게 노래하네.
만일 어떤 사람이 찾아와 이곳이 어떤 곳이냐 물으면
나는 자랑스럽게 나의 집이라 말하겠네.
몽고인의 노래
몽고의 푸른 초원에 홀로 서 있을 때 그 곳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늘과 땅, 말들만이 어제와 오늘을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물음은 한낱 헛된 망상에 불과했습니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옷깃을 스치우는 바람 소리가 징기스칸의 이야기를 말하려는 듯하였지만, 그 초원 위에서 징기스칸은 무엇이며, 한나라는 무엇이며, 몽고의 역사는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그 광대무변한 초원 위로 전생인 듯 꿈결인 듯 나 홀로만 가득하였습니다.
아! 광대무변廣大無邊, 이 어휘가 갖는 참뜻도 광활한 초원에 와서야 알 것 같습니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이 무엇인지도 여기 서서야 어렴풋 알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숙소(빠오)로 돌아와 나이든 몽고인에게 물었습니다.
“도道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답하기를, “호好.” 설명하기를 이 세상 모든 사물이나 사건 모두가 다 쓸 데가 있다 라는 뜻이었습니다.
이튿날 초원을 뒤로 하며 다시 나에게 물었습니다. 생이란 무엇이며, 사死 란 무엇인가. 어제 초원 위에서는 생사가 없더니 오늘은 다시 생사 문제가 떠오르는가. 어제는 세상도 없고 천상에 노는 듯하더니 돌아가는 발걸음에는 다시 세상이 있는가. 이 물음은 중국에 머물며 내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고서야 이렇게 정리를 하였습니다.
모연수는 한나라 원제 때의 화공. 궁안에는 궁녀가 많아 일일이 얼굴을 볼 수 없으므로 화공을 시켜 얼굴을 그려 바쳤습니다. 궁녀들은 왕을 가까이 하기 위해 화공에게 뇌물을 주어 얼굴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사 문제에 대한 무수한 논란, 이념, 종파, 문화의 모든 논의가 어쩌면 화공에게 얼굴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간청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닌지, 생에 대한 의미부여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화장과 같은 것. 무엇 때문에 우리는 속박 속에 살아가고자 하는지. 이 속박은 궁녀가 왕을 가까이 하기 위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닌지.
결국 모연수는 그 그림으로 인해 죽었고, 왕소군은 그 그림으로 인해 흉노족에게 팔려 갔습니다. 애당초 그 그림이 없었다면 생과 사 또한 없었을 것을. 결국 생사의 문제는 그림 그리는 데서 비롯된 것. 애당초 그림이 없었다면 생사문제 또한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주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삼십 년 동안 쓸데없이 마음을 쓰지 않았다. 똥 싸고 밥 먹는 일 외에는.” 쓸데없는 그림이 생사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몽고를 떠날 때, 소녀가 들려 준 몽고인의 노래 소리가 마치 왕소군이 흉노족에게 팔려 갈 때의 심경을 노래한 것처럼 발목을 감았습니다. 쫓겨 가는 왕소군의 심정과 몽고의 땅에서 돌아서야 하는 심정이 어찌 같겠습니까마는 돌아와 서울의 생활은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