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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의 불사佛事는 사람 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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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적축 - 원철 1998년 08월 198호
제자 한 명 늘어나면 지옥 하나 늘어난다
절집에는 ‘제자 하나 두면 지옥 하나 늘어난다’ 라는 말이 전해 온다.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를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옥 하나를 등에 지면서도 사람을 거두었고 또 제대로 다듬어서 절집과 불법佛法을 이어가게 하였다. 제자를 받으려면 논 몇 마지기를 주어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얼마전까지 이어져 오던 절집 풍습이기도 하다. 현장 법사의 제자 사랑은 유별났다. 말썽꾸러기 규기窺基를 지옥고를 기꺼이 감수하면서 가르치고 또 가르쳐서 그의 법을 이어가게 했던 인고忍苦의 스승이었다.

번역문은 원문보다 더 명문(?)일 수밖에 없었다
장안의 대자은사大慈恩寺에 설치된 번경원飜經院이 현장 법사의 역경도량이었다. 역경작업 자체가 대규모의 인원을 필요로 한다. 구마라집 법사의 소요원 번역 인원은 팔백 명이 넘었다. 그 까닭은 역경원 조직이 갖는 광범위성 때문이다. 이러한 거대 조직은 구마라집의 ‘사철四哲’ 로 불리는 도생, 도융, 승조, 승예스님과 현장 법사 문하의 규기스님이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끌고 나갔다.
역경원의 체제는 송나라 지반志盤이 찬술한「불조통기佛祖統紀(대정장 49,129)」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거기에는 역경의 자리에 참석하는 구관九官의 명칭과 함께 그 역할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 역주譯主는 정면의 좌석에 앉아 원본의 산스크리트 문장을 낭독한다. 역자로서 번역된 경전에 그 이름이 기록된다.
둘째, 증의證義는 역주의 왼쪽 자리에 앉아 역주를 도와 산스크리트 원문을 평량評量했다. 역주와 더불어 원문의 구성이나 의미를 검토하는 직책이다.
셋째, 증문證文은 역주의 오른편 자리에 앉아 역주가 낭독하는 산스크리트 문장을 듣고 그 글자 발음에 관하여 검토하는 직책이다.
넷째, 서자書字는 자세히 산스크리트 원문의 낭독을 듣고 그 음을 중국글자로 나타낸다. 곧 범음을 한자로 음사하는 것이다.
다섯째, 필수筆受는 범음을 옮겨서 중국어로 만든다. 서자의 음사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역意譯이 행해진다. 여기까지는 단어 번역 단계이다.
여섯째, 철문綴文은 문자를 연결시켜서 구절을 만든다. 번역된 단어를 늘어 놓고 그 순서를 고쳐서 중국어 문법에 맞추어 재배치 한다.
일곱째, 참역參譯은 양국의 글자를 검토하여 잘못이 없게 하는 직책이다. 곧 번역문을 다시 한번 원문과 대조하여 검토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장을 다듬는 단계로 들어간다.
여덟째, 간정刊定은 지리한 곳은 깎아 내어 구절을 매끄럽게 만든다. 문장의 검토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홉째, 윤문潤文은 승려로 임명하고 남향하여 자리잡게 한다. 역주 다음가는 중요한 직책이다. 그 임무는 문장의 마지막 손질이다.
직책으로 본다면 역주의 원문 낭독에서, 증의, 증문까지는 원문의 이해와 검토의 단계이다. 참역, 간정, 윤문의 단계에서 다시 역문이 검토되고 마지막 손질이 가해져 번역문이라는 새로운 문체를 만들어 냈다. 번역 문장 또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까닭에 어쩌면 원문보다 더 명문적(?)인 표현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마저 갖고 있었다.

현장스님은 인고忍苦의 스승이었다
현장스님의 스승으로서 집념과 아량은 뒷날「성유식론成唯識論」을 비롯한 많은 경전의 번역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백본논사百本論師’ 로 불리면서 유식종을 완성한 제자 규기(632-682)스님을 어떻게 키웠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송고승전」4권 규기편)
규기는 무사집안 출신이었다. 현장스님은 눈썹이 수려하고 눈이 맑은 규기 소년을 보자마자 법기法器임을 알아보고 제자로 삼기 위하여 갖은 공을 다 들였다. 근위장군近衛將軍인 아버지 위지종경尉遲宗敬으로부터 겨우 출가 허락을 받아냈으나 오히려 당사자인 아들이 완강히 저항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출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두 번 세 번 권하니 마지 못해 출가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나의 세 가지 일을 들어 준다면 바야흐로 출가를 약속하겠습니다. 곧 정욕情欲을 끊지 않으며, 피를 먹으며, 오정午正이 지나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여자 문제와 음식 관계는 내가 어떻게 하든지 시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도저히 출가자로서 자격이 성립될 수 없는 이런 약속까지 하고서 그를 출가시켰다. 출가 뒤에도 그가 외출할 때는 늘 세 대의 수레가 따라다녔다. 앞의 수레는 경전을 실었고 가운데 수레는 자기가 탔으며 뒤의 수레는 기녀妓女와 산해진미 따위를 싣고 다니는지라 세간 사람들은 빈정거리는 투로 ‘삼거법사三車法師’ 라고 불렀다. 그러한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현장스님은 참고 또 참으면서 재발심시켜 훌륭한 수행자로 거듭나게 하고자 하였다.
규기스님은 스스로 말하기를 ‘아홉살에 부친상을 당하고서는 점점부속漸漸浮俗이 멀어져 갔다’ 고 한데서 보듯 삼거三車의 사실 여부는 좀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은사가 제자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적 일화라 하겠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들이 모이지 않는다
제도나 조직이야 인위적인 힘으로도 가능하지만 인재를 확보하는 일은 제도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심에는 대중의 신망을 받는 선지식이 늘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 현장 법사나 구마라집 법사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간적으로 따뜻했고 또 대중을 감싸 안는 포용력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래서 많은 제자를 거둘 수 있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여 들지 않고 사람이 너무 맑으면 따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조직이나 제도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운용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도 사람이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일이다. 인재 확보는 모든 일의 승패를 가름짓는 제1의 요소이다. 결국 사람을 아끼고 가꾸고 키우는 일이 모든 불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