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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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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남일 1998년 08월 198호
나는 요즘 내가 바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정쩡한 지식으로 어설픈 분별심만 지어내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사유와 인식의 틀이 좁아서 선택과 분별의 폭도 좁은 그런 바보였으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바보는 ‘욕심이나 소유욕은 있어도 지나치지 않고, 이기와 자만은 있으나 짐승 같지는 않은’ 그런 바보이다. 편견은 있어도 마음의 잣대가 휘어진 것은 아니고, 사랑이 있으나 집착하지 않으며, 남을 물리칠 때 순리와 포용을 전제로 삼고, 남을 받아들임에 자비와 관용을 기본으로 하는 그런 바보였으면 좋겠다.
또 내가 원하는 바보는 나약한 자를 위해 손을 들어 주고, 슬픈 일을 보고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바보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이 세상에는 바보보다 못한 바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아니 바보도 아닌 자들이 더 바보짓을 하고 있다. 그보다 더 바보의 자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바보짓을 하려고 바둥대고 있다. 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바보는 순수를 잃지 않은 인간의 상징이다. 그래서 상실의 시대에 바보는 회복기의 노래로 다가온다.
그 노래를 들어 보라.

바보는 아는 것이 없어 행복하다.
바보는 가진 것이 없어 행복하다.
바보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세상을 따로 갖고 있어 행복하다.
바보는 남들이 애써 버리고자 하는 것들을 애초부터 갖고 있지 못해서 행복하다.
바보는 늘 텅비어 있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기에 행복하다.

나는 바보가 되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막연히 바보에 대한 부러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많이 배워 유식하고, 똑똑해 잘나가는 바보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싫증과 혐오를 느낀 내 자격지심이라 해도 상관없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영악하고, 철저하다. 또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덫을 놓아 잡고, 그 고기를 먹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 일은 비단 세속의 일만이 아니다.
속과 비속의 차이 없이 모두가 버리지 아니하고 가득 채우기만 하려 하고, 진정한 것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체하며, 분별과 아집과 편견과 불만과 질시와…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을 미워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다는 아니더라도 이 가운데 뜻 있는 자들은 이제 바보의 행복론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텅비어 있는 가슴에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와 인류와 사랑과 자비를 담았으면 좋겠다.
더더욱 수행하는 스님들이야 다시 말해 무엇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