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혈 선사께서 영주郢主 땅의 관아로 초청받아 법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철우鐵牛의 선기禪機와 같다. 도장을 찍고 그 도장을 치우면 찍은 자리가 나타나지만, 찍은 채 그대로 도장을 놔두면 과연 찍혔는지 어떤지를 알지 못한다. 이렇게 찍은 채 그 도장을 놔둔다면 찍는 게 옳은가 찍지 않는 게 옳은가?”
이 때 어떤 장로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철우의 선기禪機가 있으니 새삼 스님의 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풍혈스님은 “평소에 고래를 낚아서 바다를 맑히려 하였는데 도리어 개구리가 진흙 바닥을 저어 물을 흐리니 참으로 딱하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그 장로가 머뭇거리자 선사께서 ‘할’ 을 크게 한번 하고는 다시 물었습니다.
“장로는 어찌하여 말을 못하시오?”
장로가 무어라고 하려는데 다시 불자拂子로 한 대 내려치고는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느냐? 알았으면 뭐라고 말해 보라.”
계속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고을 수령인 목주牧主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불법佛法과 왕법王法이 같군요.”
그러자 풍혈 화상이 되물었습니다.
“무슨 도리로 그렇게 된단 말이요?”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혼란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이 말에 풍혈스님은 법좌에서 내려왔습니다.
이 ‘풍혈철우風穴鐵牛’ 공안의 주인공인 풍혈연소風穴延沼스님은 어릴 때부터 체격이 자주 장대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재주까지 갖추어 세간의 글이라는 글은 다 읽었으면서도 세상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형이 억지로 벼슬에 나아가게 하는지라 할 수 없이 한번 서울로 올라가긴 했으나 바로 낙향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출가하여 개원사開元寺 지공智恭 화상에게 계를 받았습니다.
설봉의존雪峰義存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경청도부鏡淸道怤스님 회상에서 공부를 하였고, 그 뒤에 남원혜옹南院慧顒스님을 찾아갔습니다.
남원스님이 물었습니다.
“남방의 몽둥이를 어떻게 헤아리는가?”
“굉장하게 헤아립니다마는 이 곳의 몽둥이는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이에 남원스님은 주장자를 옆으로 눕히고서는 어루만지며 말햇습니다.
“몽둥이 끝에 무생법인無生法忍의 기연機緣을 만나고도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쳐 남원스님의 법을 이어받게 됩니다.
혜옹스님을 육 년 동안 시봉하고 난 뒤 여주汝州 땅에 이르니 서까래 몇 개의 빈 초가집이 있는지라 알고 보니 옛 풍혈사風穴寺였습니다. 걸식하면서 밤에는 관솔불을 피우고 혼자서 칠 년을 지냈는데 차츰차츰 도력이 알려지면서 법석이 천하에 으뜸인지라 공부하려는 사람이 멀리서도 모여들어 임제의 선풍을 제방에 드날리게 됩니다.
이 때는 오대五代의 난리가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영주 땅의 목주가 스님을 맞이하여 여름을 지내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루는 목주가 스님에게 상당법문을 청하니 이 “풍혈철우” 의 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모양이 철우鐵牛의 바탕과 같아서 석인石人이나 목마 木馬와 같지 않으니, 현묘하게 제창提唱하고 현묘하게 제시提示함이 분명히 철우와 같아서그 곁으로 가까이 갈 길이 없습니다. 납자들이 만일 심인을 버린다면 버리자마자 갈고리처럼 돌아올 것이요, 머무르게 한다면 머무르자마자 백 조각으로 부서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치우지도 않고 그냥 두지도 않을 때엔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 찍지 않아야 옳은 것인가?” 라고 물었으니 이것은 낚시 끝에다가 미끼를 건 것입니다. 그 장로 역시 인제문하의 자손인지라 문득 그의 화두를 되짚어 물었습니다. 기특하게도 “저에게 철우鐵牛의 선기禪機가 있으니 새삼 스님의 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아는 소리를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풍혈 선사께서는 정령正令에 의거하여 “평소에 고래를 낚아서 바다를 맑히려 하였는데 도리어 개구리가 갯벌을 저어 물을 흐리니 딱하구나” 해버렸으니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사실 이 말 가운데 심금을 울리는 메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운문스님도 말하기를 ‘사해四海에 낚시를 드리움은 사나운 용을 낚으려 함이요, 격식 밖의 현묘한 기봉機鋒은 지기知己를 찾기 위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큰 바다에 고래를 잡기 위하여 미끼를 던졌으나 개구리 한 마리를 낚은 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장로가 한참 동안 머뭇거리니 그것을 보고서도 알지 못한다면 천 년이 되도록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설사 일천 권의 경전을 강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 구절의 기봉機鋒에 이해서는 입 벌리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실로 그 장로는 좋은 말을 찾아 대답하기 위해 “말해 보라” 는 명령을 따르지 않다가 대뜸 깃발을 꺾고 북을 빼앗는 풍혈스님의 기봉에 당해 버린 것입니다. 완전히 핍박 당해 어찌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속담에 ‘전쟁에 지면 종노릇을 면치 못한다’ 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창 쓰는 법을 익혀 두었다가 그 때 겨루어야 했었는데 오히려 가르쳐 주기를 기다렸다가는 머리가 땅 위에 이미 나뒹굴게 될 것입니다.
영주 땅 목주 또한 오랫동안 풍혈 선사에게 참문하였으므로 견처見處가 없지 않기에 “불법과 왕법이 똑같소이다” 하니 풍혈 선사로서는 안남安南지방을 평정하고 나니 다시 북방을 근심해야 하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또 “무엇을 보았느냐?” 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쯤에서 그 장로의 굴욕까지 벗겨 주었으면 좋으련만 겨우 말한 것이 “끊을 데서 끊지 않아 도리어 혼란을 불렀다” 고 해버렸습니다. 풍혈스님은 속마음을 모조리 다 털어 놓고 싶었지만 속관俗官인지라 냉가슴을 앓으면서 그냥 자리에서 내려와 버린 것입니다.
개선선섬開先善暹 선사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당堂에 오르고서는
“풍혈 선사의 말씀이 매우 묘하도다. 권세가 손아귀에 있으니 흙을 쥐고서 금을 만든다. 대중이여! ‘치우면 찍은 자리가 나타난다’ 고 하지만 어디로 치우려고 하는가? 소머리를 눌려서 풀이나 먹여라. ‘찍은 채 그대로 두면 직혔는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고 하니 거기에는 그대들이 발을 붙일 곳이 없도다. 또 말하기를 ‘찍은 채 그대로 도장을 놔둔다면 찍는 게 옳은가 찍지 않는 게 옳은가’ 라고 한다면 도장은 써서 무엇을 하겠는가? 삼십 년 뒤에 중심점을 잘못 잡지 말아라” 말씀하였습니다.
조사의 심인心印이라고 하는 것은 철우鐵牛의 선기禪機와 같습니다. 도장을 치우면 찍은 자리가 나타나고, 찍은 채 그대로 두면 찍혔는지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설사 치우거나 치우지 않거나 간에 납자의 행리行李할 곳이 아닙니다. 법운法雲이 오늘 가야산 앞에 왔는데 당장 앞으로 나아가려니 길이 없고 뒤로 물러 서자니 문이 없습니다.
비로소 온누리의 사람이 해인海印에서 벗어나지 못한 줄을 알 것입니다. 하근기는 도장을 진흙에다가 찍는 것과 같고, 중근기는 도장을 물에다가 찍는 것과 같고, 상근기는 도장을 허공에다가 찍는 것과 같습니다. 상, 중, 하근기도 아닌 사람은 어디에다가 도장을 찍어야 하겠습니까?
(양구良久 후後)
순랄호수順捋虎鬚는 유자가猶自可어니와
도염사미倒拈蛇尾는 유수지有誰知리오.
범의 수염을 내려 쓰다듬기는 쉽지만
뱀의 꼬리를 거꾸로 잡을 줄을 누가 알겠는가?
악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