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의식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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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강 - 소홍렬
1998년 07월 197호
현대과학의 마지막 미개척지라고 하는 의식의 세계에서 과학과 불교는 만나지 않을 수 없다. 불교는 우리의 의식세계에 대하여 가장 심오하고 방대한 체험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의 과학을 탐색하기 시작한 과학자들이 인식하게 되는 문제는 우리의 의식을 발생학적으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종교에서, 예술에서, 철학에서, 그리고 과학적 탐구에서 우리의 마음이 지향하는 바는 참으로 신비스럽다. 창조적이다. 영감적이다. 감동적이다. 해탈적이다. 의식의 과학은 이런 지향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므로 지금과 같은 과학적 방법으로는 가능할 수 없다고 한다. 수학자, 물리학자인 Penrose는 미래의 과학이 새롭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3원적 세계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신비스러움을 표현한다.
불교가 의식의 과학과 만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예컨대, Penrose가 남긴 3원적 세계와 그들의 신비에 대한 불교적 해석을 해보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또한 불교적 개념들을 현대과학적 관점과 관련시켜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Penrose는 물질세계와 의식의 세계에다 제3의 세계라고 할 수학적 진리의 세계를 더한 3원적 세계를 주장한다.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세계 또는 형상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신비롭게 여기는 것은 어떻게 수학적 진리 중 일부분만이 물질세계에서 물리적 법칙을 표현해주는 공식으로 적용되게 되느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물질세계의 진화과정에서 생명이 출현하고 의식기능이 나타나는 데 이것 역시 물질세계의 일부분만이 그런 기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의식기능을 하는 마음들 가운데 일부분만이 수학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게 된다는 사실이 또한 신비스럽다는 것이다.
물질세계, 의식세계 및 형상의 세계를 하나의 전체 세계(우주)를 이루는 세 가지 차원, 또는 양상의 세계들로 본다는 것은 그들 간의 관계가 연속적이면서 동시에 불연속적인 두 측면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은 불교의 ‘연기緣起’ 개념으로 설명 가능한 관계이다. 연기적 관계를 coupling(짝짓기)으로 해석을 해보면 짝짓기가 되는 관계는 쌍방적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정보소통이 가능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세계들의 관계는 어떻게 쌍방적 연기의 관계로 해석될 수 있는가?
형상의 세계에 있는 수학적 진리는 ‘구체화’ 를 통하여 물질세계의 법칙적 공식이 된다. 물질세계의 구체적 형상들은 ‘추상화’ 를 통하여, 즉 질료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이데아 세계의 형상이 될 수 있다. 물질세계는 ‘진화’ 로써 의식기능을 가능하게 하고, 의식기능은 ‘체화’ 로써 물질세계 내의 정보기능에 참여한다. 또한 의식기능인 마음은 ‘지향성’ 으로써 형상의 세계를 추구하며, 형상의 세계는 ‘영감’ 의 방법으로 마음과 정보 소통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3원적 세계의 연기적 작용이 우주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며, 시간의 역사가 시작되고 계승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적 역사가 시작되기 전의 상태나, 그 역사가 멈추는 상태는 일종의 한계상황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것이 ‘공空’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한 존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緣起’와 ‘공空’을 이렇게 해석해 볼 때 마음의 발생적 설명과 지향적 설명이 가능하게 되며, ‘무심無心’, ‘무아無我’ 그리고 ‘불심佛心’ 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가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