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밤기차 속에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동은 1999년 07월 209호
오랜 여행을 끝내고 낯선 시골 역사驛舍에서 지리산 토굴로 돌아가려고 기차를 기대고 있었다. 긴 여행에 지친 탓도 있었겠지만, 그 때 나는 정신이 황폐할 대로 황폐해지고 어지러워 그냥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지리산 토굴을 떠나온 지 한 달쯤 됐나. 토굴 선실禪室에서 좌선에 들었던 나는 용수철이 퉁겨 나오듯 문을 박차고 나와 오늘처럼 밤기차를 탔었다.
계를 받고 보름만에 만행을 시작할 만큼 방랑벽이 심한 나는 제도화(?)된 교육을 부정하고 바로 지리산 토굴에 들어가 참선공부를 시작했다.
출가할 때부터 늘 토굴생활을 꿈꾸어 왔던 내게 수계는 날개를 달아 주었고, 만행하면서 보아 둔 다 쓰러져가는 움막은 어설픈 용맹심으로 가득찬 햇중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말이 토굴이지 산 속에 버려진 허름한 밤 창고였다. 그 토굴에서의 첫밤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시벤트도 바르지 않은 구멍이 숭숭난 블록담 중간에 조그마한 창이 있었다. 그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한폭의 밤하늘 풍경운… 생애 처음으로 나만의 회상會上에서 좌복을 깔고 앉았으니 그 감동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온 천하가 내 것이었고, 이 밤 안으로 도통할 것 같았다. 한번도 졸지않고 성성하게 새벽을 맞아 멀리 첩첩한 산 아래서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하니, 지난 날 고뇌하며 방황하던 날들을 모두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토굴 생활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맨손으로 시작한 살림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조급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만큼 마음에 틈이 벌어진 것이었다. 썰어 떨어질 때쯤, 토굴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마을에 내려가 탁발을 했다. 하루에 버스가 두번 들어오는, 열 가구도 채 안 되는 촌락인데 인심은 참 좋았다. 소문은 언제 들였는지 쌀이며 김치, 된장 등을 퍼 주며, 공부 잘하라고 격려까지 해 주었다.
몇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뀔 즈음 나는 차츰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었다. 초발심의 그 사무치던 신심도 퇴색해 갔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제대로 되어 가고있는지 거꾸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상기가 되어 아픈 머리는 토굴 바닥에서 뒹굴게 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미친 사람처럼 온 산을 쏘다니기도 했다. 그대로 있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떠나기로 했다. 늘 그랬듯이 떠난다는 것은 내게 자유를 의미했다. 그렇게 떠돌기를 벌써 한 달. 뭔가 정리가 되는 듯 하면서도 머릿 속은 아직 혼란하기만 했다.
이윽고 기차가 들어왔고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어디쯤 왔을까. 뒤척이며 창 밖을 내다보려는데, “스님, 이거 박카스 하나 드세요”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앞 자리에 곱게 늙으신 할머니 한 분이 나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하기야 한 벌 옷으로 한달여 동안 만행을 했으니 내 몰골이 밀어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할머니나 드세요.” 겨우 대답을 하고 다시 눈을 붙이려는데, “아이구, 어쩌다가 젊은 스님이 이 지경이 됐습니까?”하며 말을 붙였다. 순간 어떤 느낌이랄까. 할머니를 찬찬히 바라보니 예삿분이 아닌 것 같았다. 건네주는 음료수를 받아 미시며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물으니 진주까지 간다고 했다. 자기는 젊어서 과부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부처님 공덕이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재가 불자들이 모이는 선방에 다니면서 나름대로 참선 공부도 해 왔다는 얘기도 했다. 서로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가 사는 토굴실이며 공부 얘기를 꺼냈다.
가만히 내 얘기를 경청하던 보살님이 조심스레 얘기를 시작했다.
“스님, 제가 감히 스님께 공부 얘기를 드린다는 것이 송구스럽지만, 오랫동안 절 집에 살면서 공부하는 스님들을 지켜보니 스님같이 토굴로 바로 가서 공부하는 스님네 치고 제대로 공부하는 스님을 못 봤습니다. 토굴 공부는 대중 처소에서 웬만큼 힘을 얻은 뒤 혼자서 더 용맹스럽게 정진하고 싶을 때 선지식의 점검을 받아 가며 할 일이지, 스님처럼 막 출가한 스님은 법도가 엄한 대중 처소에 가셔 그 속에서 부대끼고 하심하며 인욕행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보살이 주제 넘게 드리는 말씀이지만 잘 새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처음 보는, 아들 또래의 스님 앞에서 차근차근 나를 설득시켜 나가는 보살님을 보며, 관음보살의 화현인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전율하며 법문(?)을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힘겨웠던 토굴생활을 벌써 머릿속에서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밤기차는 내 긴 방황을 끝내려는 듯 하동역에 도착했고, 그 보살님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스님,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성불하세요”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날 밤, 그 기차 속에서 만난 노보살님은 출가 뒤 방황하던 내 공부 길을 올바로 잡아준 선지식이었고, 지금도 가끔 마음이 느슨해지면 그 보살님의 눈빛을 생각하며 경책을 삼고 있다.
지금 그 보살님은 어느 회상에서 정진하고 계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