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날은 참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생각만큼이나 뜻 모를 방황도 아울러서였을 것이고, 비행 저지를 소년될 용기도 없었고, 턱없이 감상적인데다 대책없는 시절이었다. 그럴 수밖에. 너무 어린 날 맞았던 아버지의 죽음, 그것은 한 소년을 생각 많고 우울한 시절로 만들어 갔다. 부처님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어쨌을까. 이 때 이미 한생의 계산서를 다 작성해버린 셈이 된다.
출가하던 날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더 어릴 적부터 출가로 향하는 마음은 간절하였다. 그러나 어찌 가는지를 몰라 오랫동안 망설인 것이다. 이번에는 미리 친구 두 명과 함께 마음 먹은 절을 찾아가서 상담을 해 놓았었다. 그런 뒤 언제쯤까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 절에 오겠다는 약속까지 하고서였다. 그러고도 한동안을 떠돌아다녔다. 이미 마음을 정했으면 서도 이르러서는 쉽지가 않았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는지 간다던 날짜에 이틀인지를 넘겼던가. 그 때서야 용기가 났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갈 만큼도 수중엔 돈이 한푼도 남아 있지를 않았었다. 걸어야 할 수밖에. 몇 십리 길을 한나절인가를 걸었다. 동구에 이르렀을 때는 마을 집 아궁이에 생솔가지 쪄다 저녁 짓는 연기가 굴뚝을 타고 피어오르고, 가을걷이 끝나가는 들판에는 적막만이 가득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아픔이 인 것도 그 때였다. 모를 세상으로 향하는 두려운 마음이 그리움을 더욱 사무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왜 두렵지 않았겠는가.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은 긴장으로 몸과 마음에 가득하여 입술이 앙 다물어졌었다. 들고 가던 가방은 너무 무거웠다. 책 몇 권과 옷가지를 담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무슨 보물 단지처럼. 그런데도 누가 들어 준다고 해도 끝까지 혼자 들고 갔다. 동구에서 만난 대처승 아들이라던가. 그 절에서 행자생활하다 몸이 아파 잠시 다녀온다며 친절하게 접근하여 짐을 들어 주려 했다. 이제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혹시 다른 스님들이라도 보면 막 출가하러 오는 사람이 의지도 약하게 남에게 짐을 들리고 왔다고 밉보일까봐였다. 참 순진한 마음이었다.
출가한 첫날밤, 뒤척이다가 잠이 든지 얼마 안 됐었다. 어인일인지 목탁소리가 신새벽 하늘을 가르고 여러 개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와서 깨웠다. 법당에 가야 한다며. 이 날은 무슨 특별한 날이라서 새벽에 일어나서 법당으로 다 모이는가보다 하여 졸리운 눈을 비비며 법당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날만 특별한 게 아니고 날마다 평생을 절집에 살면서는 그렇게 해야 하는,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만큼 아무 상식도 없이 절문을 들어섰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어줍잖게 불교를 알고 출가하는 것보다 차라리 상식 없이 오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백지 위에 어떤 색깔을 먼저 칠하느냐에 따라 그 색깔이 돋보이듯, 아무 것도 칠해져 있지 않은 마음에 불교를 담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살아 보니 그랬다.
이렇게 시작된 행자생활은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의 나날로 이어졌다. 다른 스님들이 했던 것만큼이나 별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날마다 그 동안은 해보지도 못했던 공양 짓기 위해 쌀 씻고, 그리고 공양간에 불 때며 부지깽이 장단 맞추어 염불 외우는 날들이었지만 왜 그렇게 서럽도록 좋은지. 내 길을 찾았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처음 절마당에 들어설 때는 나의 출가는 숙명적이기 때문에 몇 년만 잘 해 보다가 또 다른 길을 찾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닌 걸 알았다. 행자생활의 시작과 함께 이 길은 나의 길이며 끝까지 간다는 마음만이었다. 그래 부처님 전에 나아가 날마다 다짐을 하였다. 잘해 보겠다고. 잘하게 해 달라고. 또 고무되어 있었던 게 있다. 출가한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하는 말이라는 걸 나중에는 알았지만, 보는 스님들마다 ‘중상’ 이란 말에 깜박 넘어가버렸던 것 같다. 어쨌든 좋았다. 치켜 주니 그랬던가 보다.
그 때까지도 절집이 참 어려웠던 때였다. 겨울이 되었어도 겨울 내의 한 벌 못 입고 따슨 물아끼려고 찬물에 쌀을 씻으면서도 즐겁기만 했다. 여적도 새벽 잠 많기는 마찬가진데, 어찌 견디며 살았을까. 새벽부터 무슨 할 일은 그리 많은지. 더 어린 행자도 있었지만 그 나이에 분명 감당하기 쉬운 일들은 아니었다. 차츰 알게 되는 불교 교리들은 좋았지만, 예불 끝에 하는 참선도 쉽지는 않았다. 다리가 저리고 아픈 것도 문제였지만, 반가부좌 하고 앉으면 한쪽 다리가 엉성하게 들려 맷돌이라도 올려 놓아 빨리 스님들처럼 반듯하게 앉을 수 있었으면 하는 성급함이 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들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을 늘 필요로 한다. 시간이 지남과 함께 조금씩 자리도 잡혀져 갔다. 어렵기는 했어도. 예불과 참선이 끝난 자리에서 어른들이 일러 주시던, 중노릇하며 사신 이야기와 옛 스님들의 얘기는 오래오래 중노릇에 큰 도움으로 남았다. 절집의 생활도 한참 익숙해지고 가을과 겨울도 후딱 지나갔다. 돌이켜보니 후딱이지 어찌 그 겨울이 빠를 수있었겠는가. 요즘과 비교해서야 소박하고 정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층층시하 어른들 밑에 얼마나 편했겠는가. 거의 혼자서 후원 일을 도맡아 하고, 행자가 몇 있었어도 지금의 큰절처럼 소임이 별도 분담되지 못했다. 틈틈이 도량 곳곳을 청소하며 몸을 쉬어 주지 않았다. 웬 신심이었을까. 모든 것이 다행스럽고 즐겁다는 마음에서였다. 그 많던 상념들도 많이 잦아들었다. 낯 뜨거운 소리지만 어른들의 칭찬은 날로 더하고 중노릇 잘하겠다는 그 말들에 얼마간 많이 들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에 그렇게 죽을둥 살둥 매달려 겨울을 보내며 몸살에 시달리고 밤이면 고열에 떠 있으면서도 괴로워할 겨를도 없었다.
봄이 되고 사미계를 수계하였다. 절집의 구조도 많이 알게 되고, 처음의 긴장과 두려움도 많이 풀려 있었다. 봄이 되니 관광객이 몰려 오고 북적거림도 겨울과는 완연하게 달랐다. 사람 구경이 좋은 게 아니라, 북적거림을 피해 출가했는데 다시 또, 너무 싫었다. 번거로움은 절집의 구조와 함께 또 다른 회의와 방황을 나아 갔다. 정작은 역마살이 고개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더 먼 곳으로 떠나야겠다며 많은 시간을 고민하게 하였다. 더 힘든 고행과 사람 발길도 잦지 않은 더 깊은 곳으로 가자는 마음에서. 어딘들 입맛에 딱 맞게 기다려 줄까. 마음이 그랬지. 어디라도 그 때는 썩 만족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는 그것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곳저곳 행자로 기웃거리며 고민만 더 깊어 가고, 그럴수록 더 떠돌았다. 그래도 뭔가를 얻어야 방황이 끝날 수 있을 것 같고, 이대로는 중노릇 자체도 불투명하다는 생각이었다. 흔히들 출가하면 불법만 보고 현재는 보지도 듣지도 말라고 한다. 그러나 중생이 어찌 그러랴. 현실은 내 곁에 엄연히 존재하고 보이는데. 거기서 젊은 승들이 회의하고 방황에 빠진다. 알고보면 다 나부터지만.
그렇게 떠돌즈음. 경주 근처 어느 절이었다. 힘든 노정을 거치며 그 절을 찾았는데, 까닭도 분명치 않게 입산을 거절 당하고 망연한 채 객실에 있었다. 겨울 해는 이미 지고 저녁예불이 끝났다. 어느 스님이 객실로 찾아 왔다. 나의 사연을 들은 듯. 정말로 답게 해 보려면 해인사든 송광사든 큰절로 가서 걷어부치고 해야지 이런 곳에선 별로 얻을 것이 없다며 그랬다. 촌스럽게도 큰절은 경외심 때문에 상당히 멀리 두었었다. 잠자리에 누워 마음을 꼽아 보았다. 새벽 길 몇 십 리 걸을 일에 걱정이 먼저였지만 송광사로 정했다. 그리고 길을 나섰다. 먼길을 달렸다. 그 때 송광사엔 구산 노사老師가 계셨다. 겨울을 지냈다. 조금씩 길이 보였다. 구산 노사老師를 바라보면서 특별하게 노사老師가 나만을 위해 무슨 말씀도 없으셨지만 노사의 삶을 바라보면서 중노릇이란 걸 보게 되었다. 또다시 방황은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내 길로서 더 이상 흔들림은 없을 것 같았다. 그 겨울이 따뜻한 남녘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실체도 알 수 없이 끝없게 이어질 것 같던 흔들림을 멈추게 하고서.
해제가 되고, 그 때부터 걸망 메고 운수의 행각을 시작하였다. 흘러흘러 가며. 그 나이에 이미 인생의 계산서를 작성해 버렸으니 얼마나 홀가분한가. 지금 내 주변의 누구는 내 걸망 멘 뒷 모습만 봐도 끝없이 흘러가는 것만 같아 마음에 싸한 아픔이 인단다. 그러나 어쩌랴. 이 길이 내 길이고 그 아픈 마음까지 다 싸안고 언제까지 흘러 가고 싶은 걸. 그리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혼자인데.
정말 더 늙기 전에 단촐한 걸망 메고 끝없이 끝없이 흐르며 만행 같은 만행 한번 오래도록 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