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에 놓여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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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행 - 혜묵
1992년 12월 130호
“수많은 진보적 사상가들이, 선종에서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의 영향을 받아 봉건적인 전통 권위를 비판하게 되는 적극적인 작용을 낳았음을 역사적인 사실들이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진보적인 정치 입장에서 출발하여 봉건적인 전통 사상이 분열의 과정에 놓여있을 때 비로소 반역적인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정신을 구현한 사람들이었다.”
임계유任繼愈는 이른바 해방 뒤의 중국 사상을 대표하는 중요한 철학자들 가운데에 한 사람이다. 그가 주편主編한 중국 철학사는 그 이상으로 중국 전통 사상에 대한-물론 불교를 포함하여-선입견은 이러한 전형적인 모범들을 통해 형성되어 온 것이다. 앞에 인용한 구절은 그의 중국 철학사 가운데, 중국 선종에 대한 수․당대隋唐代 불교에 대한 해석의 제일 끝 구절이다. 그들의 해석은 불교나 선종의 주관적이고 유심적인 태도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완강한 거부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러한 입장은 그들이 정통 유물사관의 방법을 해석의 도구로 채택했을 때 이미 예견된 것이다. 그런데도 선종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인용한 바와 같이, 드물게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천태나 화엄 등의 교학 사상이나 교종 승려들에 대한 비판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그만큼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교종에 대한 해석이 봉건제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상층 계급에 헌신적으로 복무한 죄상들로 채워지는 반면에 선종에 대한 비판이 주로 사상적인 분석에 국한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뭐라 해도, 안으로는 불교 내부의 부패와 사상적 병폐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여 밖으로는 현실 세계에 대한 선종의 개혁적이고 도전적인 태도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사상이나 모순에 항거하는 운동의 과정에 선종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심하기 어려운 역사적인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학자들은 억지로 선종과 진보적인 사상가들을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선종은 진보적인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자신이 진보적인 사상가였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선종이나 기타 전통 사상을 떠나서 독자적으로 진보적인 사상을 견지하고, 봉건제도에 대한 저항을 독립적으로 해 나간 진보적인 사상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청나라 말기에 도통道統 논쟁이 시작된 이래, 중국 철학사에 오르내릴 수 있는 전통 사상가들의 명단은 대개 고정적인 것 같다. 그 뒤 이른바 유법儒法 논쟁을 통해 그 명단은 유심적 ․유물적, 또는 봉건적․진보적인 두 가지 색깔의 딱지를 달게 된다.) “선종은 현실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반항을 하기보다는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바로 해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일종의 신비적인 직관주의에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과학과 상식에 상반되는 길을 걸어가게 되었고, 따라서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전한 태도를 가진 진보적인 사상가들과-그들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상반된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같은 모범답안형의 철학사는 이제 중국에서도 흘러간 옛노래가 되었다. 하물며 우리가 새삼스레 그들의 틀에 박힌 옛 해석들을 끄집어내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비판과 거부가 강력하고 완강한 만큼, 그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불교나 선종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작용, 역사 속에서 부단히 이어져 온 현실 개혁과 모순에 대한 저항의 노력들이 더욱 돋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적인 작용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유심 반동의 딱지를 달고 변태적인 소수로 낙인찍혀야 하는 과정이 의아하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불교는 개인적인, 나아가 사회적인 해탈을 주창해 왔다. 고통과 모순으로부터의 해탈이다. 그러한 태도는 의심할 필요도 없이 정당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오랜 세월 동안 그러한 가르침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불교나 선종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특징은, 오늘날 중국에서 하나의 종교나 사상이 긍정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변태, 또는 변동으로 도태되어 갈 수밖에 없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적인 실례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종교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 각 나라와 시대의 불교사는 갖가지 화려하고 교묘한 묘학,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수행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큰소리 친 것만큼 성공적으로 해탈하거나 해탈시켜 주지도, 또 해탈을 보여주지도 못했다는 사실들을 지적한다. 그렇게 큰 영향으로 오랜 세월을 군림했으면서도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커녕 병적이고 위선적인 인간형을 조장하고 결과적으로 억압을 방조하는 공밖에 없었다는 점들을 지적한다.
확실히 중국과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북전北傳의 대승불교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것 같다. 일본의 불교는 거대한 사찰 재산과 문화재 들을 토대로 부유한 자본가로 변신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유치한 푸닥거리나 해대는 무당으로 변신한 것 같기도 하다. 학술적으로 세계의 불교계를 이끌고 있다고 큰 소리를 쳐봐도 그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공염불로만 보인다. 중국 사람들은 요즘의 중국 스님들이 고기도 안 먹는 진정한 대승불교의 수행자들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어느모로 보나 그들을 불교의 전형적인 수행자라고 보아주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 불교의 심란한 모습에 비해, 현실적으로도 보통 사람들의 선입견 속에서도 완전히 변태나 미신으로 전락한 중국 불교가 오히려 홀가분해 보인다. 역설적으로 변태적인 삶을 직시하고 현실의 위선과 허구를 직시함으로써 참다운 수행자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직시야말로 불교적이고 선적인 것이 아닌 가도 싶다. 값비싼 기모노 차림으로 신도들에게 꽃꽂이나 가르치는 어여뿐 아내와 함께 위풍당당한 절의 별채에서 사께마시며 사는 것이 부러운 승려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전문적인 학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나 한국인의 성격은 중구과 일본의 중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되새겨보면 그 말에는 한국을 깔보는, 한국 고유의 개성을 부정하는 의식이 알게 모르게 담겨 있다. 한쪽에 중국의 특징들이 있고 한쪽에 이론의 특징들이 있다. 한국의 특징들은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두 가지 특징들이적당히 뒤섞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국적이고 저것은 일본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적인 것이다.
물론 이런 판단이 옳은 것 같지야 않지만, 우리 불교의 현실을 곰곰히 되새기다 보면 그 말처럼 적절하게 한국 불교의 특징을 표현해 주는 말도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중국의 불교는 미신과 위선으로 망했고, 일본의 불교는 미신과 위선에서 활로를 찾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불교는 떨어질 듯 말 듯 미신과 위선이라는 외줄을 타고 있는 곡예사 광대쯤 되는 것일까. 이런 문제들은 불경의 고매한 가르침이나 조사들의 심오한 수행경지와는 관계가 적은 천박한 것들일 수 있다. 그들의 깨달음이나 지혜 같은 ‘진짜 불교’의 문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태적인 언쟁들이 어쩌면 진짜불교의 진짜 고상한 문제들보다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헤아릴 수없이 많은 조사들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자칭, 타칭의 선지식들이야 충분하게 있지만, 밑바닥의 천박한 문제들은 아직도 해결될 기미가 없고, 그 변태적인 강도만 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바른 법과 바른 수행의 도리야 숱한 선지식들의 전등과 인가로 의심없이 지켜질 수 있어서 우리가 의심하고 염려할 필요도 없겠지만, 밑바닥의 더러운 문제들을 해결할 방도나 노력은 적어 보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정녕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나 피어오르는 연꽃이기 때문일까.) 지혜는 많아도 방편은 없기 때문이다. 불성이나 깨달음의 본질이야 변할 수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본질이 실현될 현실은 변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