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이 쪼이는 날이면 다반사가 예사롭지 않다. 공양을 장작불로 짓는 관계로 새벽이면 이불을 갠 뒤 바로 달궈진 큰방 바닥에 예불을 하기 위해 앉아서 땀으로 샤워도 아닌 목욕을 해야 한다. ‘부처님, 예불은 이렇게 해야 합니까?’ 바닥에 조그마한 손수건이라도 깔고 앉으려면 상반 스님들과 소임자 스님에게 보일새라 가슴이 조마조마하니 아예 생각으로만 그쳐야 한다. 또 방사가 협소하여 발우공양을 하려면 무릎과 무릎을 좁혀야 하는 것도 더운 여름날에는 마음 쓰이는 부분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상반 스님과 소임자 스님들의 경책은 끊이지 않는다. 취침을 위해 큰방에 한쪽 발만 들여 놓아도 더운 공기가 ‘훅’ 하고 숨막히게 다가온다. 잠이 들 때까지는 오로지 주력에 힘을 기울여 세상의 소리를 들어 주시는 분을 부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런 가운데도 어쩌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경經반 스님들은 경전과 다구茶具를 바랑에 담아 한적한 계곡을 찾아 산다회山茶會를 열며 깊은 정신의 지인智人이 되어 보기도 한다. 아직 도량이 익숙하지 않은 치문반 스님들은 솔밭에서 다음날 배울 학과목 공부를 하며 모처럼 한바탕 소리내어 웃기도 한다. 서장반 스님들은 상반 스님들 눈치 보고 아랫반 스님들 배려하느라 우왕좌왕 도량의 안식처를 찾다가,「서장」을 챙겨들고 그늘진 강설전 뒤에 모여 대혜스님께서 말씀하신 선도리禪道理를 다시 새긴다. 어딜 가든 옆에 놓고 보아야 한다는 선의 열 가지 병통病通을 놓고 ‘이 도리道理가 무엇인고?’ 알음알이 짓지 말라고 다시 확인시켜 주시는 중강 스님의 말씀도 잊은 채 또다시 문자에 빠져 ‘아하! 이것이 바로 이것인가’, 사량으로도 잡히는 대답. 하지만 그 대답은 금방 사라져 간다. 깨달음은 결코 관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도단의 자리에 있는 깨달음. 그 길에 이르는 것은 무엇일까. 그 길에 이르고파 서장을 배우는 학인 스님들은 몇 번이고 걸망을 쌌다 풀고, 쌌다 풀어 보지만 그렇게 쉬이 길을 떠날 수는 없다. 서장반이면 누구나 한 번쯤 그려보는 선방에서의 입선. 떠날 듯 머물러 있는 자리이기에 서장반 스님들의 눈빛엔 더욱더 산빛이 푸르게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비가 오고 난 뒤에 땅이 굳어 진다고 했던가. 이러한 가운데서도 호흡을 다듬어 서예와 사군자를 그리며 먹색의 조화로움과 붓끝의 놀림 속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잊기도 한다.
이렇게 갖가지 방편으로써 문필봉을 두드리는데 ‘북바위는 언제나 울릴 것인가.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까?’ .
또한 시간에 따라 온도의 차이가 커 동학사 학인 스님들은 겨울 누비를 여름에도 입는다. 누비를 입은 채 덥다고 말하는 스님. 여름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일까. 여름이라고 말해 주었을 때야 비로소 여름? 하며 웃던 스님들.
‘나무 대교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좇아 역대 조사 스님들께 상강례를 올림으로부터 또다시 경전 속으로 긴 여름 피서를 떠난다. 그렇게 또 입선 그래도 그 사이 잠깐의 방선 속에서 탁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하며 더위를 오히려 부르기도 한다.
때로 날씨가 무척 좋으면 분위기 파악(이 눈치 저 눈치를 살펴서)을 하여 치문반 막내 스님들에게 귀띔을 한다. 그러면 입승 스님 졸라서 책과 차담을 챙겨 우리의 정학 코스인 향아교를 넘어 다섯 성인이 깨친 좌대라 하여 붙여진 ‘오성대’ 에 앉아 자유 입선의 즐거움도 맛본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아주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산에 살면서도 늘 산이 그리운 것은 그 곳이 바로 우리의 정학 코스로 정해져 있어서일까!
여름 좋은 날 가운데 하나는 소풍 가는 날이다. 바랑을 메고 발걸음 가벼웁게 나서는 산문. 성지순례를 겸해서 떠나는 소풍은 초등학교 시절 잠못 이루며 하얗게 온밤을 새우고 소풍갔던 시절과 똑같다. 차에 오르자마자 하루의 무장애를 기원하는 뜻에서 기도를 하고, 산문 나설 때의 들뜬 마음은 오고 간데 없이 저마다 잠 삼매에 빠지기도 한다. 함께 오지 못한 소임자에게 조금은 미안해 하며 고프지도 않은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하룻동안 바깥 세상을 구경하지만 일주문이 다가올수록 ‘집에 다 왔다.’ 하며 반가움에 빠른 발걸음을 떼는 것을 보면 ‘우리는 역시 먹물옷 입은 동업중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또 다시 보인다. 우리 걸어 가야 할 아득히 먼 구도의 길이. 낙락 장송이 되기까지는 모진 더위와 비바람 혹한의 추위도 겪어야 되듯이 우리 또한 그렇게 깨달음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어느덧 더위가 약간 수그러지는 어스름이 깔리고 ‘책 많이 읽었나‘ 하시는 강주 스님의 말씀이 들려온다. 이렇게 우리는 성글은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성글게 하는 법을 다지며 수행의 결실을 맺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