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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리고 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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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이영경 1999년 07월 209호
캠퍼스에는 벌써 여름이 왔는지 가끔 매미소리가 들리고, 창 밖을 스쳐가는 꽃 향기 속에서 지난날 힘들었던 시절 제게 도움을 주선 고마운 분들을 떠올려 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를 지금 이 자리에 이만큼이나마 있게 한 것은 제 주위의 좋은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마음에 흡족하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많은 분들이 저를 끊임없이 세우고 바르게 이끌지 않았으면 지금 이만큼의 사람 노릇을 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까닭에 모든 인연이 다 소중하지만 제 가슴에 가장 소중하게 남아 있는 인연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미국유학을 스물여넓 살 가을에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오 년이나 다니고 “노처녀”라는 별명이 이미 익숙해진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격려와 도움이 그걸 가능하게 했습니다. 석사 시절, 어머니는 일요일 아침이면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거셨습니다. 매번 거의 같은 대화를 했지만 어머니나 저나 그 전화 덕분에 일 주일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제가 받은 전화는 어머니의 사고와 죽음을 알리는 전화였습니다.
한국에 오고, 장례를 치르고, 다시 미국에 돌아가서 석사 논문을 마무리하는 4월부터 6월까지 그 석 달 동안 너무나 많은 분들의 도움과 보살핌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유학생을 위해서 49재를 정성껏 지내 주선 명선스님, 한 시간이나 떨어진 절까지 재가 있는 날마다 차를 태워 준 후배들, 밤샘하는 컴퓨터실에 음식과 커피를 가져오고 같이 밤을 새운 후배, 어설픈 영어를 꼼꼼히 고쳐 주며 논문을 지도해 주신 지도 교수, 그리고 힘들 때마다 내게 용기를 준 격려와 위로의 말…
그렇게 논문을 끝내고 저는 그 해 8월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어머니가 미국에 와서 학위식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저만 학위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학위를 받는 순간 이미 어머니는 기뻐하셨을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석달 제게 베풀어진 그 많은 자비와 가피는 생사를 넘는 어머니의 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박사와 교수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발원이 저를 박사와 교수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지금도 가끔 들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가장하고 싶었던 일은 어머니의 손을 한번 잡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염을 하는 날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남겨진 육체는 제가 생각하는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일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무릇 있는 바 상상目이 다 허망한 것이다. 만일 모든 형상을 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그때 완전한우주의 밝은 빛인 여래를 볼 수 있다”라는 금강경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던 슬픔이 사라짐을 느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이 시간 속에서 현재라 할 만한 것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 없음을 슬퍼할 필요도 까닭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당장의 손실이 내 자신의 욕구에 상처를 주기는 하지만, 그 상처때문에 오래오래 마음이 슬프고 어두운 채로 있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다고나 할까요.
그 뒤로 저는 지금까지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탓에 제대로 경 공부를 못 하지만 하루에 한번 부처님의 가르침을 엉성하게나마 새겨보는 일을 꾸준히 하게 한 것은 어머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쉼 없이 혼들리지만 많이 벗어나지 않고 불자로 바른 길을 가게 저를 끊임없이 일으켜 세우는 좋은 인연, 제게 그 인연은 어머니이고 불연인 것 같습니다. 그 인연에 감사드리고, 그리고 이제는 제 자신이 그런 좋은 인연으로 남기를 발원합니다. 일체 중생이 업장소멸하고 세세생생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짓고 행복하기를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