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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거산 계곡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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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지은 1998년 07월 197호
호거산 꼭대기로부터 내려오는 구름이 푸르다 못해 검푸른 솔숲을 감싸고 운문 도량마저 감싸고 돌며, 때로는 호랑이의 한숨으로 비 뿌린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오려나 보다.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설현당說玄堂 툇마루에 앉아, 한가로운 마음으로 마주보이는 청풍료淸風寮를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청풍료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에 맞춰 치문, 사집반 스님들의 낭랑한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운문사에서의 네번째 맞는 여름철이다. 이제 이 운문 도량을 떠나면 도반들과 함께 했던 운력도, 목우정牧牛亭에서의 법담法談도, 수박 들고 올라가서 신나게 물장난 치던 선녀탕의 추억도 그리운 기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O월 O일
똑 또르르르륵….
대중운력 목탁소리가 울려 퍼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밀짚모자, 토시, 장갑 챙기기에 바쁘다. 동작이 느려 모자를 챙기지 못한 날엔 여지없이 이글거리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서 자신의 인내와 싸우며 체력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도 호미 끝에 느껴지는 감자를 조심스레 캐내며 수확의 기쁨에 더운 줄 모른다. 눌러 쓴 밀짚모자 사이로 구슬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얼굴리 벌겋게 달아올라도 쉴 새 없이 염불하는 스님, 수업 시간에 배운 경을 외는 스님, 화두를 들고 묵묵히 감자만 캐는 스님, 모두 이렇게 운력 삼매에 빠지는 것이 우리 운문사 학인 스님들이 아닐까?
힘들라 치면 어느새 종두 스님들이 얼음 탄 미싯가루와 아이스크림, 수박 등을 한아름 안고 나타난다. 새참 시간이다. 그늘로 가서 모자를 벗으며 땀을 닦아낼 때 불어오는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백장청규의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는 말이 아니어도 농부의 피땀어린 노고를 생각하며 더욱 더 올곧게 수행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O월 O일
며칠째 비가 오지 않아 도량을 걸을 때마다 먼지가 날린다. 한 차례 비를 기대하지만 하늘은 꿈쩍도 않는 눈치다. 책을 싸들고 나무 그늘로 찾아 들어도 금방 다시 더워지니 부채질만 할 수밖에.
도반 스님이 수박 한 덩어리를 안고 왔다. 덥다, 덥다 하지 말고 선녀탕에 가서 발이라도 담그자는 것이다. 더워 꼼짝도 못하겠다던 막내 스님들이 물가에 간다 하니 입이 함박꽃이다. 운수 바위 지나 올라가다 보니 다람쥐 녀석도 지쳤는지 움직이지 않고 두 손 가지런히 모은 채로 눈만 꿈뻑이고 있다. 선녀탕에 도착하니 벌써 몇몇 스님들이 자리잡고 앉아 수제비를 끓이고 있었다. 가져온 수박 담궈 놓고 불옆으로 가서 수제비 반죽을 뜯어 놓는데 익기도 전에 휘저어 한 입씩 먹고는 물 속으로 풍덩풍덩. 학감 스님께서 보시면 걱정하실 일이지만 야단 맞는 건 그 때 가서의 일이다. 헤엄치는데 자신이 없는 스님들은 물 속에 담궈 두었던 수박을 돌멩이로 깨어 한 조각씩 베어 먹는다. 수박 씨를 누가 더 멀리 뱉나 시합을 하면서.
옷 입은 채로 물 속에 뛰어들었던 스님들은 바위에 걸터 앉아 그대로 널어 놓은 빨래가 되어 버린다. 바위인지, 사람인지,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한참을 지켜보다가 내려왔다. 이래서 여름은 더워야 제맛인가 보다.

O월 O일
명랑한 금빛 가루는 한여름 나뭇가지 위에서 빛남을 노래하는데 말라버린 개울 탓인지, 푸석푸석해진 심心길 탓인지 그 슬픈 가락에 어느새 객客이 된 느낌이다. 건조한 도시 속에서도 새벽 이슬을 머금고 피어 오르는 작은 풀잎처럼 언제나 신선한 호흡을 하고자 발원했었고, 청靑 빛 삶을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겐 한낱 사치스러운 풍조일지도 모를 일이나 며칠 동안 무기력함으로 하염없이 기울어졌던 모양이다. 해질 무렵 목우정에 올랐다. 휴가철을 맞아 몰려드는 참배객과 관광객들의 지치지 않는 소음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목우정 마음심心자 연못에 수련꽃송이들이 지는 해 속에 피어 있다. 우리네 마음은 언제 저렇게 피어 나려는지.
서장반 때 중강 스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거룩한 침묵’ 이 떠올랐다. 수업 시작하기 전 떠들고 있는 우리를 향해 ‘부처님께서 수행자가 해야 하는 두 가지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 첫번째는 법담이고 두번째는 거룩한 침묵이다’ 라고.
하루종일 하는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에 대한 말보다는 타인을 향한 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남의 허물이 자기의 허물인지 알지 못하고 하루종일 떠들다 보면 남는 것은 공허空虛뿐. 법담은 못 할지언정 거룩한 침묵이라도 해야 하는데 입만 열면 세속世俗의 정치 이야기며, 스포츠 이야기, 타인에 대한 자기의 견해이다. 또 이와 반대로 꼭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아니하고 비겁한 침묵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서로 탁마해 주어야 할 때, 왜곡된 상황에서 진리를 말해야 할 때, 나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뒷짐지고 물러나 있지는 않은지?
경계에 끄달리지 말아야 하겠다. 매 순간마다 온전히 나의 정신과 육신을 오롯이하여 깨어 있어야 하겠다.
함께 온 도반 스님도 나의 마음을 아는지 말 없이 맑은 차茶만 따라 준다.
목우정 내려오는 길에 오백전에 들어가 언제나 정다운 오백 나한님을 뵈었다. 어쩌면 저 오백 나한님들은 추우나, 더우나 한결같이 익살스럽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앉아 계실까? 설현당 쉰세 명의 도반 스님을 함께 떠올리며 운문의 마지막 여름을 아쉬워해 본다. 네 해 동안의 더운 여름을 함께한 도반들이야말로 나의 가장 가까운 선지식일 것이다.
지금은 모르지만 몇 년이 지나면 꿈에도 그리울 곳 운문사. 남은 여름을 보람되게 보내야겠다.
오백전 앞
이끼 낀 탑 너머
하늘 빛 능멸하며
아름다움 뽐낸다는
능소화 꽃불길에
오백 나한 뛰어나와
합장하고 섰네.
어허라.
눈 맑은 납자
오늘은
둥근 달로 떠서
운문雲門을 두루 비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