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잡지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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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금희
1992년 12월 130호
‘다양한 읽을 거리를 수록하여 대체로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제본된 팜플렛’은 미국 출신의 저널리즘 사학자인 모르씨의 잡지에 대한 정의로, 잡지로 불려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을 서술한 것이다.
그러면 불교 잡지는 불교적인 내용으로 꾸며져 불교 신자나 일반인에게 불교 사상과 교리 등 불교 전반에 대한 ‘정보’와 ‘깨우침’을 전달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특히 문서포교의 중요한 매체로서 신문보다 먼저 탄생한 불교 잡지는 신문이 갖는 언론으로서의 비판이나 제도의 역할보다는 다양한 정보와 읽을 거리를 제공하여 불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외에도 ‘깨우침’이란 종교 본연의 역할을 더 많이 부여하는 매체로 볼 수 있다.
잡지는 신문이나 방송과 마찬가지로 보도 기능, 지도 기능, 오락 기능, 광고 기능 등 네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잡지는 보도 기능에서는 신문이나 방송보다 속보성에서 뒤지지만 대체로 주간 이상의 간별이므로 내용이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분석과 검토를 거쳐 정확한 내용을 보도할 수 있으므로 독자들에게 명확한 판단 근거를 제공할 수 있고 또 문제 해결에 대한 방향성까지 제시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지도 기능에서도 한 사안에 대한 다양한 분야와 계층의 의견과 논평의 수용이 가능해서 독자들은 강요당하는 느낌 없이 긍정과 부정을 극복한 객관적인 사실에 눈을 뜰 수 있다. 오락 기능은 현대에 들어서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더 많이 하는 잡지가 늘고 있어 재미와 유익을 겸한 본래의 순수한 오락 기능을 되살리는 잡지인 스스로의 노력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광고 기능은 잡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매체가 재정의 원천으로 크게 기대고 있는 기능이다. 특히 잡지는 방송처럼 일회적이지 않고 영구적이며 신문보다는 회람율도 높아 광고 효과가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물론 광고 효과는 발행 부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만, 광고효과를 증대시킬 만한 제반 요건은 잡지가 신문 방송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반적인 잡지의 기능을 불교 잡지에 한정시켜 본다면 상당한 편차를 보일 것임에 분명하다.
언론 매체라는 전체의 틀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 결과이겠지만, 교계의 언론 매체 가운데에는 이른바 ‘유력한‘ 이란 수식어를 붙여줄 만한 매체도 없을 뿐더러 잡지에서는 더더욱 미미한 실정이다. 사회와 국가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계 내에서조차 여론을 형성할 만한 영향력 있는 신문이나 잡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현실은 불교계의 현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불교계 최초의 잡지는「조선불교월보」로서 1912년 2월 창간하여 이듬해 8월까지 19호를 내고 폐간되었다. 권상로 씨가 발행한 이 잡지는 논설이나 전기, 기서, 잡저 등을 게재했다. 이어 1913년 11월 조선불교월보 후신으로 「해동불교」가 창간되었는데 이 잡지 역시 단명으로 1914년 6월까지 8호만 내고 말았다. 그러나 편집 내용에서는 광장설이니 무봉탑이니 무공저니 하는 특색 있는 고정란을 기획한 점에서는 앞의 월보보다는 짜임새 있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불교진흥회 월보」「조선불교계」「유심」「불교」「불일」「회광」등이 일제 강점기에 발간된 불교 잡지이다. 이들은 대부분 단명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해「유심」같은 경우는 3호로 종간되었는가 하면 겨우 일이 년쯤 유지된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불교」는 1924년 7월 창간되어 1933년까지 108호를 내고 휴간되었다가 1937년 속간되어 1944년까지 63호를 내고 또 다시 중단되었으나 1971년 태고종에서 재등록하여 현재까지 발간되고 있는 유일하게 장수하는 잡지로서 심한 부침을 겪으며 불교 현대사와 같이 걸어온 동반자이다.
조국분단과 한국전쟁을 겪고난 뒤 60년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창간된 불교 잡지는「법시」로서 1967년 9월에 첫호를 발간했다. 이어 1968년 11월에「법륜」,1974년에「불광」이 창간되었으며 1979년에는「여성불교」가 탄생했다.「불광」은 불광산,「여성불교」는 도선사, 또「봉은」은 봉은사에서 발행하는 등 사찰에서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나「법시」는 발행인이 사단법인으로 되어 있는 점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법시」는 90년 6월부터 발행이 중단되고 있는데 스물다섯 해 남짓 발간되는 동안 여러 차례 휴간과 복간을 되풀이해 왔다. 다행히도「법시」판권을 한 개인이 인수해 복간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불자들 스스로의 자탄대로 ‘절 집안’ 일이라 언제 어떻게 결말이 지어질지는 미지수이다.
80년대는 불교 잡지의 일시적인 전성을 이룬 때이다. 지금도 불자들이 아쉬워하며 복간을 기대하는「불교사상」이 1983년 12월 계간으로 첫선을 보였다.「불교사상」은 기존의 불교 잡지가 보여 준 영세성을 벗어난 새로운 포맷으로 탄생되었다. 면 수만 해도 대부분 이백 면을 못 넘긴 잡지와는 달리 삼백 면이 넘어 사상적으로나 학술․문화적으로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지면이 제공된 점에서 환영받을 수밖에 없었다. 새롭고 신선한 지식에 갈증을 느껴 오던 불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겨우 삼 년을 넘기고는 다른 잡지들처럼 폐간되고 말았다.「불교사상」은 회생 가능성이 높은 잡지로 알려져 있는데 창간 당시 조계종 기관지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육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간 실적이 전혀 없어도 등록이 살아 있다. 문제는 조계종 기관지로 등록해 놓고 개인적으로 발행한 스님의 의지에 달려 있는데, 재정 여건이 따르지 않아 폐간시켰으면서도 판권만 쥐고 있어 햇빛을 못 보고 있는 실정이다. 종단측에서라도 성의를 보인다면 좋은 잡지 하나 되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비슷한 시기인 1984년 12월 창간된「법회」야말로 불교 잡지의 운명이 어떻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실례이다.
「법회」는 일반 불자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사찰이나 불교 단체의 스님 법사들을 대상으로 하여 법문이나 설법 자료를 게재하는 월간지로 출발했다. 처음엔 스님 한 분이 개인적으로 출발했다가 열다섯여 명 가량의 젊은 승가로 구성된 한국청년승가회에서 발행을 맡았다. 이때부터 잡지의 성격이 바뀌어 불교의 사회 참여 내용이 다루어지면서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봉은사 사태로 주요 책임자의 신상에 변화가 오면서 잡지는 자연 방치되었으며 결국 1988년 3월로 종간되었다. 여건이 어려워지면 잡지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도 못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법회」에 열정을 갖고 참여했던 스님들은 그 뒤에 또 다시 다른 잡지에 손을 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영구 독자까지 확보했다가 잡지를 더 이상 내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한 마디를 광고란에 실은 것으로 할 일 다했다는 스님들의 의식은 분명히 문제삼아야 한다.
스님들이 시작했다가 어떤 이유로든 시들해져서 버림받는 잡지의 운명은 「현대불교」란 이름을 가진 잡지에서도 볼 수 있다. 1989년 8월 역시 스님에 의해 빛을 본「현대불교」는 구 개월 만에 휴간되기에 이르렀다. 재정적인 문제 때문이다. 이를 인수한 봉은사 측은「현대불교」보다는「봉은」에 더 비중을 두어「현대불교」속간보다는「봉은」재창간에 착수해 현재는「봉은」이 달마다 나오고 있다. 불교 운동 전문지로 뿌리를 내린「대중불교」는 1982년「대원회보」를 거쳐 1985년「대원」으로 정식 창간되어 십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해인」은 1983년 교재용 사보로 출발해 지금은 독특한 불교 잡지로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그밖에 천태종 기관지인「금강」이 1985년 창간되어 현재 84호까지 꾸준히 내고 있다.
교계 유일의 어린이 잡지로는「굴렁쇠 어린이」가 89년 10월 창간되어 91년 12월 폐간의 위기에 처해 있다가 올해 1월 새 발행인을 맞아 발간되고 있다.「굴렁쇠 어린이」의 폐간 소식은 교계 전체에 반향을 불러 일으켜 전국 각지의 사찰과 신도들이 앞장서서 후원 회원을 확보하는 등 구제에 힘쓴 결과로 폐간 위기를 넘겼다.
다른 종교계의 잡지 발간 현황을 살펴보면 불교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계는 여러 면에서 불교계를 앞지르고 있으나, 특히 문서를 통한 포교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한국 기독교 정기 간행물 1백년」의 자료에 따르면 잡지만 수십여 종에 이른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만 살펴보면「기독교 가정」은 1949년에 창간되어 제호대로 기독교인의 가정에서의 신앙 생활을 도와주는 잡지로 꾸준히 발행되는 알찬 잡지이다. 1957년에 창간된「기독교 사상」은 초교파 잡지로 기독교의 사회 운동에 비중을 둔 잡지로 내용이 진보적이다. 목사 개인이 내는 잡지로는「교회와 사회」란 잡지로 제호에서 시사하는 대로 사회평론과 기독청년운동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평신도들 대상으로 한「신앙세계」는 1960년 창간되어 신앙의 지성화에 역점을 두고 편집해 오고 있다. 그밖에「크리스찬 그라프」는「대중불교」처럼 표지를 인물사진으로 하여 기독교에 입각한 사회 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다.「월간목회」는 불교계의「법회」처럼 목회 정보를 게제하며 교회 부흥을 기치로 발간되고 있다. 그리고 진보적인「현대사조」와 종합 교양지「빛과 소금」이 있으며 시사성 있는 문제를 다루는「목회와 신학」이 있다. 어린이 잡지로는「새벗」과 「소년」이 삼십 년 가까이 발간되고 있으며 맹인을 위한 점자지인 「새빛」도 나오고 있다.
이들 다른 종교의 잡지와 불교 잡지를 비교해 보면 우선 숫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양이 질을 지배한다’는 말이 적어도 여기에서는 적절하게 통용된다고 하겠다. 숫자가 많아지면 선의의 경쟁을 통한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고유한 전문성을 키우는 풍토가 마련될 수밖에 없다.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가운데 특별한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몇 개 안 되다 보면 ‘있는 게 다행’이라는 인식이 잡지계를 느슨하게 만들어 발전이 더디게 된다.
불교 잡지를 포교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신문 방송과 함께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불교를 알린다는 포교의 기능만이 아닌 불교를 확대 재생산해 내는 발전적인 역할까지 하려면 몇 가지 문제점이 해결되어야 한다.
우선 대부분의 불교 잡지는 독자층이 불교인으로 한정되어 있다. 비불교인이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불교 잡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한 대학교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불교에 관심은 있으나 어렵게 생각되어 접근이 쉽지 않다는 학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문서를 포함한 포교의 방향성을 세우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제 불교계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불교 잡지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불교 잡지 대부분은 편집 내용이 비슷하며 교양 함양의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심심파적거리 이상이 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다양한 독자층의 요구를 무시한 채 적당히 뭉뚱그려서 서로 비슷한 보통 수준의 책들이 많으면 내용이 겹치기도 하거니와 나중에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기 십상이다.
아제는 각기 잡지의 전문성을 살려 특화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불교의 사상적 확장에 주력한다든지 불교 문화의 대중성 확보를 중시한다든지 진보적인 사회 운동을 주도한다든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킨다든지 하여서, 분야와 계층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또한 잡지도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좀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할 수 있는 유통 구조와 홍보가 필요하다. 시내 대형 서점에서는 불교 잡지를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교계에서 신문이나 잡지가 나오고 있는 사실조차 모르는 불자도 꽤 많이 있다. 날마다 두 종의 잡지가 창간되는 매체의 홍수 속에서 독자를 확보하려면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불교 잡지 경영주는 인력을 늘리는 데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현재 불교 잡지는 한두 명의 기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게 마련이다. 신문보다 잡지쪽의 인력 착취가 더 심한 편인데 잡지 기자는 업무량에서는 수퍼맨이다.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심이란 묘한 무기로 협박당하거나 아니면 기자들 스스로 무장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튼 열악한 조건에서 그만한 책 만드는 것이 다행인 시대는 끝났다. 스스로 위안하며 보내기에는 세계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컴퓨터로 연재 소설을 읽는 시대이다.
포교의 전령이며 불교 문화의 척도인 불교 잡지는 이제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