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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大選), 불선(佛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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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만우(시인) 1992년 12월 130호
지리산 자락입니다. 저는 겨울을 지낸다는 것이 늘 부담스럽습니다. 체질상 추위에 약해서 겨울이 오면 따뜻한 곳을 찾아 게으름을 즐기곤 했지만, 이번 동안거는 결코 따뜻하지 않은 지리산 바람과 함께하기로 하였습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눈 높이로 바라다 보이는 천왕봉이 벌써 눈 속에 잠겨 있고 게으른 눈길이 가끔 맞닿는 감나무 가지에는 까치밥이라 불리는 감이 몇 개 떨어질 듯 매달려 있습니다. 이런 곳입니다.
스님.
토굴 생활은 어떻습니까?
대중을 떠나 홀로 사는 것이 결코 수월하지 않음을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만, 자신을 냉철하게 응시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쨌든 대중 처소에 있거나 토굴에 있거나 우리는 중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중노릇이란 말에는 출가자의 삶이라는 뜻 말고도 생명이라는 존재 일반의 궁극적이고 포괄적인 뜻이 있습니다. 때문에 승과 속이라는 이원화된 역사관과 가치관은 보살의 삶 속에서는 그 지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어떤 존재든지 우리 모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후보들로서 선불장選佛場에 서 있는 것입니다.
스님.
얼마 안 있으면 이 땅에 대선이라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은 어떻게 든 수습될 사건이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승복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닙니다. 제도적인 모순과 인물 됨됨이는 제쳐두고라도, 정치라는 환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치사하고 공허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역사 속에서 많이 겪어 왔습니다. 새로운 인물과 권력 구조의 개편이 이루어질 때마다 미래의 희망은 언제나 인내만을 요구해 왔습니다. 이 사건도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인내를 요구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성도하고 나서 처음으로 설하셨다는 사제법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것은 고통의 현실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존재 자체가 갖는 근원적인 괴로움의 실체와, 역사와 시․공간의 상황에서 연기된 고통을 바르게 인지하는 것(苦諦)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은 무조건 생성된 것이 아니라 제반 여건과 상의상관相依相關하고 있으므로, 그 원인을 바르게 사림이 집제集諦입니다. 이것이 선불장에 들 수 있는 기본 요건입니다.
정치사에서 가장 큰 대선은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근원적이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는 인물과 정당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지위를 탐내는 인물은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찬탈에 의해서는 부처의 지위나 명예에 결코 이를 수 없듯이 바른 선택을 통하여 바른 인물이 가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후보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유권자들의 바른 안목일 것입니다. 역대 대선이 이성적인 합리성보다는 감정적인 편파성을 토대로 치루어 졌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이나 혈연, 기득권에 곁들여 종교도 우리 안목을 흐리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마다 대중 매체에 종교인들의 모임이 자주 보도되고 정치와 종교가 야합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선거는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의 바른 양심을 시험하는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인물을 통하여 이 땅에 살고 있는 전체를 가늠해 보는 기회가 선거가 아닌가 해서입니다.
사제법에서는 고통의 원인을 바르게 살펴 고통을 여읜 해탈세계(滅諦)를 얻으려면 괴로움의 요인을 타파해 가는 바른 실천(道諦)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선거에서는 공약과 이의 실천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천 가능한 공약을 제시하고 제시한 공약은 꼭 실천하는 인물을 가려야겠습니다.
스님, 정진하시는데 이 무슨 잠꼬대인가 하시겠습니다만, 우리 모두 선불장의 후보들이기에 대선을 빌려 저의 변을 늘어 놓아 보았습니다.
마음이 공空해야 선불이 되어서 돌아간다 했던가요. 선불장의 후보로서 자격 심사를 다시 해 보아야겠습니다.
7공에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