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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뾰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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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법장 1992년 12월 130호
가을은 싫지 않은 계절이면서도, 무언지 싸아한 아픔이 가슴 한구석을 비집고 들어와서 못내 아쉬움을 남겨 놓고 떠나는 때이기도 하다. 뿌린 것을 거두는 계절, 크고 작은 일들을 대충이나마 정리해야 여유로운 겨울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가을은 그렇지 않았다. 해마다 계절병처럼 다가오던 아픔 대신 조금은 환희를 맛볼 수 있었다. ㅂ스님이 다녀가고서였다. ㅂ스님도 어지간히 갈 데가 없던지 두 번이나 처소에 와서 며칠씩 묵으면서 여러 해 동안 나라 안팎을 다니며 보고 들었던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갔다.
흔히들 맛있는 음식 푸짐하게 내놓고 남을 흉보는 것이 재미있는 일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ㅂ스님에게 들었던 얘기 가운데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적잖은 미담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우선 내가 살아왔던 모습들이 가증스러울 만큼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우선 ㅂ스님에게 들었던 얘기를 조금도 미화시키거나 과장됨 없이 그대로 적어 본다.
여인은 강원도의 한 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사고로 남편을 여의었다. 어린 딸 하나만 남겨 놓고서. 시집의 형제들이 사고 보상금과 부조금까지도 모두 찢어가 버리고 여인에게 남은 것은 슬픔뿐이었다. 슬퍼했다. 사람들은 다 자신의 슬픔 때문에 운다고 하지만 여인은 진심으로 청춘도 가기 전에 가 버린 남편이 가여워서 울었다. 그래도 남은 사람은 살아야 했다. 이제는 남이거니 생각하여 부스러기 돈까지 다 갈라간 형제들을 그래도 때 되면 아이의 손을 잡고 잘도 찾아다녔다. 신세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교육이나 정서를 위해서, 그리고 혈연의 의미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결혼 전에 일하던 직장에 다시 나가서 부지런히 일하며 틈나는 대로 봉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형제들은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고, 오히려 남편이 살았을 적에 진 빚이라며 어렵사리 사는 생활에 빚까지 탕감해 주도록 독촉했다. 이럴 때 어찌보면 많은 사람들은 더욱 독해지고 세상의 한을 가슴에 품기 마련인데 여인은 달랐다. 신앙의 힘이었다. 열심히 일하여 집도 마련했고 혼자 살기가 쓸쓸해 세도 놓았다. 세든 사람들에겐 명절이나 기념된 날은 작은 선물이라도 챙기기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남들보다 세도 적게 받고 옮겨갈 때까지는 올린다거나 아이들이 아무리 법석을 떨어도 싫어하는 기색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고마워할 줄을 몰랐다. 더구나 일곱 여덟 집이 살다 다행히도 전부 자기 집을 장만하여 나갔지만 고마웠다는 인사 한 번 없었다. 선물도 낼름 받기는 하면서도 답례는 커녕 으례 그러려니 하는 것이었다. 쓸쓸했지만 자기 할 도리만 묵묵히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날 세들어 살던 한 여인이 찾아왔더란다. 찾아온 여인은 이 여인의 손을 꼭 잡은 채로 고마웠다는 말들을 뒤늦게 털어 놓았다. 자기가 집을 마련하고 세를 들여 보니 주인 아주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며 이제부터라도 자기도 이 여인처럼 세든 사람들을 대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갔다. 다행히도 한 사람 건진 것이다. 어렵고 쓸쓸해도 끊임없이 베품을 행하다 보니 자신을 이해하고 뜻을 따르려는 또 한사람의 동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말이 쉽지 보통 사람으로는 흉내를 내더라도 며칠 못 가서 지치고 말 일이다. 그래도 여인의 얘기가 여기서 그쳤다면 고개 정도나 끄덕이고 말았을 것이다.
한 번은 시내를 걷다가 길가의 장의사 하나가 눈에 띠는데 왠 허술한 보퉁이가 가게 앞에 놓여 있더란다. 예사 물건이 아닐 성싶어 괜히 장의사 주인을 불러서 물어보고 싶어졌다. 인근 읍에 사는 촌로村老가 갑자기 운명한 영감님의 장례를 값싸게 치를 수 있을까 하여 장의사를 찾아왔는데, 자신의 형편으로는 장례비가 엄청나서 황망히 가다 보니 그 보퉁이마저도 놓고 갔다는 것이 장의사 주인의 말이었다. 장의사 주인의 그이야기를 듣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떻하든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몰라서 어디로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장의사 주인이 수소문하여 알아낼 수가 있었다. 여인은 가진 것을 다 털어 주면서 절대로 그 사람들에게는 누가 했다는 것도 알리지 말고 장례를 치른 뒤 어떻게 했다는 것만 귀띔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뿐이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이나 지나서 왠 낯선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장의사에 사정하여 연락처를 알게 되어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장례비를 대 주었던 영감님의 아들이었다. 그는 거푸 고맙다는 말을 해댔다. 쑥스러울 만큼 그러더니 나중에는 이런 말까지 했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그런데 그렇게 해 줄 수도 있는 것입니까. 더구나 아주머니는 불교 신자라는데, 우리는 기독교 신자거든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인은 조용히 나무랬다.
“아저씨. 사람이 죽은 마당에 불교면 어떻고 기독교면 어떻습니까. 살아있을 적 말이지 죽은 사람에게 그것이 뭐 중요한 것입니까. 그리고 먼저 알게 된 사람이 손을 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저씨도 앞으론 그렇게 살지 마세요.”
여인의 말을 들은 그 남자도 감격의 울먹임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그러했다. 언제부터 ‘우리’에게 우리라는 단어는 어색해지고 다른 나라말처럼 생소해지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소수들이 자기 집단만을 굳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 때문에 그런 소박한 촌사람들까지도 종교라는 이념이 서로 다름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 이념, 우리 종교, 우리 지역, 우리 문중, 우리 가족 등 이웃은 없고 한 울타리 안에 포함된 조직의 구성원만이 우리일 뿐이라는 위험한 사상은 집단이기주의와 가족이기주의가 만들어 낸 세기말적 부산물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다.
그러한 시대이기 때문에도 이 여인 얘기가 귓가로 흘러 지나지 않고 가슴 한구석을 든든하게 채워 주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대단한 미담들도 많이 있기는 하다. 언론이 크게 보도하는 미담들도 더러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런 얘기에 더욱 감동하는 것은 그 여인이 그렇게 까지 남을 도울 만큼 부자는 아니라는 것과 우리와 우리 것이 소외되고 잊혀져 가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우려할 것만은 아니다. 이 여인처럼 몸으로 보시하고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어느 틈에나 있어, 때로 삭막해져 갈 무렵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일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반성도 해보면서 그 얘기처럼 실천해 보려는 노력을 할 것이 분명하기에 말이다.
하긴 지나친 집단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얼마 전에 있기도 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위기감을 조장시켰던 종말론자들. 휴거가 오면 믿는 자신들만 들림을 당하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며 자신들을 낳아 준 부모도 마다하고 도망을 갔다. 정말로 휴거가 오고, 그것이 또한 사실임을 믿는다면 적어도 부모 형제라도 설득하고 믿게 해서 함께 들림을 당해야지 버리고 가면 어찌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휴거가 없었기 망정이지 휴거가 와서 믿은 그 사람들만 들림을 당했다면 분명히 새로운 이산 가족 문제가 생겨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늘었을 것이다.
제발 그러지 말자. 지구 어디에도 내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 뜻과 한 가지라도 다르지 않은 부류들끼리만 모여 사는 곳은 없을 것이다. 언어, 종교, 이념, 문화, 종족 따위가 다르더라도 적어도 기존의 것들을 인정하고서 나중에 오는 시조가 발붙이려 하면 이처럼 첨예한 갈등은 없을 것이다. 기존의 틀을 싹 무시하려는 태도가 지금과 같은 기형적인 사상이 싹트게 된 원인이다.
모두들 염려하고 경종을 울리는 얘기도 많이 했다. 이처럼 남이 다 한 구태의연한 얘기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은 또 다시 소수 집단의 우리라는 단어를 무수히 남발할 계절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 어느 행사를 특별히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선거다 연말 연시다 하여 얼마나 그 소리를 남발하면서 천대받는 우리의 이웃을 그대로 둘 것인지 무척 염려스럽다.
사석에서는 정의롭고 깨끗한 것을 열심히 주장하여 가장 깨끗한 척하던 사람들도 종내 그 우리라는 말의 마력에는 녹아 넘어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이제는 그 유아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모두가 우리임을 깨닫는 성숙된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어서 다가오는 겨울은 그야말로 따뜻한 계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 곳곳이 뾰족이 튀어나온 돌처럼 너무 자신들의 이익만을 주장하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각자가 듬직한 정이라도 들고서 튀어나온 부분들을 두들기고 매만져 잘 좀 다듬으면 어떨까. 정말 너무들 뾰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