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연어를 살생한 인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고형렬 1999년 07월 209호
인연 하면 먼저 슬픈 생각이 일어난다. 인연이 곧 부처라지만 세간에서의 일차적인 의미의 인연은 만남과 헤어짐이 그 주조를 이룰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인연이 가장 기쁘고 슬프다 할 것이나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다른 중생의 인연의 슬픔과 기쁨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이 세상에서 수 많은 살생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일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수년 전 그 해 늦가을 한밤중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깨우침은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의 연어였다.
그 해 늦가을 한밤중 동해안에 당도했다. 나는 그때 연어에 대한 장편신문을 마무리 짓기 전에 한 번 더 동해안을 찾아야 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는 어디론가 멀리 길을 나서서 낯선 바람을 씌어야 하는데 그것은 다른 환경과 풍물의 인연을 만나고 싶은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소한 본능의 움직임은 때로는 묘한 인연을 만드는 것 같다. 나와 그는 생각지도 않은 마음에 사로잡혀서 연어를 잡았다. 연어는 낯선 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쳤다. 우리는 그 몸부림에 전율이라도 하듯이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연어를 잡은 팔이 흔들렸다. 연어는 마치 끌려가지 않으려는 개처럼 손의 공중에서 펄쩍였다. 그는 목이 마르고 공포에 질려 있었을 것이다. 숨을 쉴 수 없는 이 기이한 공기의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다만 키득거리는 소리를 등 뒤에서 들었을 뿐이다.
오, 세상에 그런 일을 하다니! ‘나(我)’ 연어는 어떤 낯선 짐승들의 손에서 트렁크에 던져졌다.
그리고 우리는 미친 사람들처럼 남대천 국도와 시골길을 배회하다가 이윽고 낙산사에까지 들어갔다. 죄를 짓고 신성한 동해 새벽을 헤집고 다니다 부처님께 낯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절하러 들어가다니! 잠시 뒤, 후회할 일을 왜 했는지 몇 시간전의 만행은 씻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해괴한 살생의 인연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 때는 절을 찾지 맡고 참회했어야 옳을 일이었다. 죄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한번 죄를 짓더니 죄는 눈덩이처럼 마구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때는 무연히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도 어떻게 해야 옳은지를 모르는 이 중생은 그것에 또 커다란 무지의 죄를 더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밖으로 나오니 설악산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차가웠다. 그 소리가 연어들의 숨소리 같았다. 나는 그 바람 속에 한숨을 쉬었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쏴아쏴아 물소리처럼 바다의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우리는 차에서 일출을 맞았다. 차 유리에 와서 부서지는 햇살 속에 대포항은 어수선했다. 나는 해를 보면서 눈물을 닦았다. 슬픈 생각이 스쳐갔다. 이 일을 어쩌란 말인가, 어젯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의 잘못을 다 씻어 주었단 밀언가, 시간과 햇살과 바닷물이여, 그것들이 인연이었던 것일까. 볼 수 없고 붙잡을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어찌 살생하지 않는 생명이 있겠느냐”, “자신이 살생하지 않으면 남이 살생한 중생을 먹는다”라고 설령 저 바다가 그리 말하더라도 그 날 아침은 그를 향내로 보내 놓고 처참해진 지옥의 마음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연어들의 생이 없는 그 시간 속에 있는 자신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 전태극을 찾아갔다. 신세를 지더라도 찾아보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우리에게 밥과 회와 술을 차려 주었다. 나는 문득 오징어 횟살이 되어 나에게 순하디 순하게 먹히고 있었다. 나는 또 업을 짓고 있었다. 이번에는 친구에게 배를 가르게 하고 그것을 잔얼음을 깐 스티로폴 상자에 넣는 죄를 짓게 하고 있었다. 나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그 일들이 내내 잊혀지지가 않았다.
인연은 복잡하다. 인연의 빛을 따라가면 내 경험으로 나는 마음의 공의식으로 돌아간다. 이상한 일이다. 잠시 슬픔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내 조용해진다. 누가 나를 먹는 것 같고 이윽고 어디선가 새로운 인연이 막 시작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어쩌면 실체일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 속에서 나는 통해 수평선에 나를 찾아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이 인연 없이 새로운 삶과 아픔은 이어지지 않으며 자례심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꿔는 모두 산란을 마치려는 연어와 같으며 인생은 그 뒤의 켈트-산란하고 죽어가는 연어의 육신-와도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정말 저 수 많은 배와 같은 생의 인연이란 바다와 같은 죽음의 인연을 취하며 이어지는 불가해한 고통과 환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