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상과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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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남일
1998년 07월 197호
며칠 전 일이다. 장경각에 올라가려고 법당 앞에 오르니 한 젊은이가 핸드폰을 들고 한참 통화를 하고 있었다. 친구와 통화를 하는 모양이다. 지금 해인사에 와 있는데 정말 좋다. 어쩌구 저쩌구 하며 막 떠드는데 그 소리가 무척 크게 들리는데다 더욱 가관인 것은 통화 내용이었다. 고함 반, 욕설 반의 대화는 듣는 이로 하여금 참 어이가 없게 했다. 우리나라 핸드폰 보유실정은 천만 대를 넘어 서고 있으며, 전국 어디서든 통화가 가능하다는 광고도 자주 접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해인사 일대를 겨냥한 무선기지국을 설치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일련의 일에서 나는 가끔씩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해인사는 천이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최대의 수행도량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있고, 한국 5대 총림 가운데 가장 그 상징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해인사 도량에서 머물며 정진하기를 염원하고 불자들은 고려 팔만대장경을 한번 친견하는 것으로 그 선업의 극치를 맛보려 한다. 하지만 요즘은 왠지 해인사가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들곤 한다.
곧, 담배 예절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실정이라서 그런지 도량 안에서 담배를 입에 물거나 손가락에 끼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내고 들어왔으니 당연히 그들에게는 해인사가 단순한 입장료나 관람료만큼의 볼거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비윤리적 사고 방식과 도덕 불감증에 대해 지탄을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더 불행한 일은 다름아닌 해인사의 무반응적인 대응이다. 해인사가 청정한 수행도량이므로 겸허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하여 주길 부탁하는 사람이나 안내하는 스님이 없다. 아무리 일체 시비를 떠난 스님들의 수행 자세가 이런 현상을 유발시키는 것이라고 해도 시비에 휘말리기 싫어 방관하고 있음은 터무니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소한 것 말고도 여기가 수행도량인지 관광객들의 놀이 공원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일이 많다. 더욱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해인사 진입로 포장공사는 앞으로 더욱 심각한 관광객 통제 불능과 생태계의 괴리, 많은 산짐승의 죽음과 차량사고의 증가 따위를 불러 올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해인사는 관광지와 수행처 양면을 함께 구현할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게 문명은 육체의 편안함과 행동의 자유스러움, 그리고 시, 공간적 활용의 극대치를 구현하는 약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자연 파괴와 정신적 빈곤, 자연 가치를 말살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 해인사에는 많은 암자가 있는데, 그 암자들은 저마다의 특수성과 재정 자립의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그 효용가치를 재창출해야 한다. 가야산 해인사가 관광지로서 유명한 곳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정신적 보루로서, 수행과 포교 모든 면에서 가장 완벽한 도량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성해야 할 때이다. 그 때야 비로서 가야산은 한국 관광사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문명이 어우러지는 관광정책, 가야산과 국민의 마음이 하나되는 정신적 요람으로서 가야산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첫발로 해인사가 핸드폰 가능 지역으로 개발되는 것에 반대할 일이다. 그리고 한 업체의 이 광고를 생각한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