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연구소 주최, 월간「해인」후원으로 5월부터 11월까지 여섯 번에 걸쳐 ꡒ공空과 연기緣起의 조명ꡓ을 주제로 하여 학술 세미나가 열린다. 이 학술 세미나에서는 불교학, 인도철학, 동양철학, 서양철학의 전공 학자들이 불교의 핵심 개념인 공과 연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하게 된다.
이번 호에는 세미나의 주제를 이해하는 예비 자료로써 공과 연기가 전통적으로 불교 내에서 어떤 사상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를 흔히 깨달음의 종교라 한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의 전통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의존을 중시하는 다른 종교와는 대별되는 특정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명백한 기준이 있다.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의 출발이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과연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수많은 경전에 나타나 있듯이 부처님이 연기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하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경전을 통해 우리는 연기가 법, 곧 부처님의 가르침과 동일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기를 보면 법을 보는 것이고, 법을 보면 연기를 보는 것이다.(若見緣起便見法 若見法更見緣起)(「중아함경」30, 「상적유경」)
따라서 연기설은 어느 부파에서나 또한 시대를 초월해서 부처님의 교설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교설로 여겨지고 있다.
연기는 문자 그대로 ꡐ~에 연緣하여 일어남ꡑ 곧 ꡐ~을 원인으로 하여 일어남을 뜻한다. 이는 현상세계의 어느것도 자존自存의 존재가 아니라 다른 것에 의존하여 형성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말한다. 이런 의존적 인과 법칙을 경전은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는 공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연기의 법칙에는 제 1원인이나 전지전능한 존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의존성만이 현상세계의 존재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불교의 근본명제에서도 확인된다.
연기설이 현상간의 관계를 명료하게 설명해 주고는 있지만, 이것만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연기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12 연기설은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의 근원을 규명하여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실천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기설은 부처님 때조차 직제자들이나 불교도들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아함경은 여기저기에서 연기설이 심오해서 이해하기 어렵다(甚深難見)ꡑ 고 걱정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있다.
부처님의 이러한 우려는 불멸佛滅 뒤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났다. 불교의 백가쟁명 시대라 할수 있는 부파불교 시대에 들어서면서 현상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 곧 법法이 실유實有한다는 실재론이 우세하게 되었다. 이런 입장은 현상 존재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연기설의 본래 의미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실재론에 대한 반성으로 대승불교가 대두되었다. 새롭게 정립된 공사상과 유식사상은 대승불교의 2대 학파를 이루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불교에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 한국불교에서도 이 두 학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공사상은 원시불교 이래 부처님의 근본 교설로 인정되어 온 연기설을 공관空觀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사상으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공사장의 원류는 이미 초기 불교에서도 나타나 있다. 아함경에서는 ‘모든 것은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공空 이라고 관찰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공사상이 처음부터 불교의 근본 교설로 설해졌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기 경전에서 공이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 또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 라고 하는 일상적인 용법으로 사용된 예가 여러 군데 나타난다. 이를 통해 초기 불교의 공이 허무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로 이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인도의 대논사 용수龍樹는 부처님이 깨달은 바가 곧 공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 부처님의 근본 교설인 연기와 중도의 참뜻을 정교한 논리로 해석하였다. 연기가 곧 중도이고, 공이라는 해석의 단초가 이미 초기 경전에 나타나 있지만, 용수는 이를 철저한 부정의 논리로써 재구성하여 사상적으로 심화시켜 놓았다. 공사상은 또한 반야경의 반야사상을 수용하면서 무집착의 실천도라는 성격도 갖추게 되었다.
연기緣起와 공空이 불교에서 중요한 까닭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지시하는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은 모두 연기와 공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깨달음으로부터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연기와 공을 말하는 것은 곧 불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와 공은 불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불교의 허무적인 공은 사상과 실천 양면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띄게 된 것이다. 공사상이 이후 대승불교에서 중심사상이 되고 있음은 앞에서 말한 대로이다. 불교의 탄생과 발전은 외부 사상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개되었다. 여기에도 세상의 어떤 것도 독백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연기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외부 사상과의 관계를 끊고서 불교만의 세계를 고집했다면, 불교의 모습은 현재 자취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상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 아니 해야 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