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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불교지도자평화협의회 발족의 의의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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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2년 11월 129호
한국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미얀마,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 5개 불교 국가를 회원으로 하는 ‘동북 아시아 불교 지도자 평화 협의회’가 지난 달 13일 서울에서 발족됐다.
원래 동북아 불교 지도자 평화회의에 참석했던 6개 국가 가운데 스리랑카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만이 가입한 이 모임은 회의 당일 5개항으로 된 서울선언문을 채택하여 이 모임의 성격과 지향점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가 전쟁 없는 지구촌 건설과 세계 평화 수호, 그리고 헐벗고 굶주림에 있는 중생들의 구원에 앞장선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며, 나머지 3개항은 상호 협조 체제 유지, 첫대회 94년 개최, 서울에 상설 사무국 설치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는 1천 6백 년 한국 불교 사상 처음으로 국제기구를 주도적으로 창설해 낸 뜻깊은 일로서, 앞으로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우리도 세계 불교의 중심국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따라서 한국 불교계는 우선 회원국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보내어 동북아 지역 불교의 중심권 역할을 해 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념 대립이 사라지고 있는 요즈음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방 개혁 정책에 힘입어 중국, 러시아, 미얀마 등지의 불교가 복원 내지는 교세 확장에 나서고 있다.
1억 명 이상의 신도를 갖고 있으며, 최고 실력자인 등소평과 절친한 사이인 조박초 회장이 이끌고 있는 중국 불교회는 한국 불교가 우선해서 지원해야 할 곳이다. 우리보다도 훨씬 먼저 불교를 받아들였으나 문화혁명의 영향으로 사원들이 대부분 파괴되어서 십여 년 전부터 복원 사업에 나서고 있는데, 특히 신라의 불교인이었던 김교각 스님과 원측스님들은 그들에게서 매우 큰 신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연변 자치주에 한국 사찰을 건립하고 있어서 중국 불교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지원은 하루가 급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에 불교대학을 세워서 승려를 양성하는 등 포교에 진력하고 있는 러시아 불교계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주요 대상이다. 그들의 수십만 평의 사찰 땅을 확보해 놓고도 재원 부족으로 건립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지원을 우리 불교계에 비공식적으로 요청해 놓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한국 불교를 포교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 러시아 불교 협의회의 주장이기도 하다.
미얀마는 남방상좌부의 불교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국가로서, 최근 들어서 자국의 불교 전통을 나라 안팎에 널리 알리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어서 한국 불교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 이번에 한국 불교가 동북아 지역 불교의 중심권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불교의 전통성 들에 힘입은 바 크다. 아시아에서는 몇 안 되는 고도 성장 국가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우리로서는 이제 막 새싹을 돋우려는 이들 국가의 불교에 대해서 적절한 관심과 배려를 하는 일은 어쩌면 일불제자로서 당연한 의무이기도할 것이다. 나아가 이제부터 한국 불교는 서울 선언문의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대답을 마련하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처지에 있다.
선언 문제에서 밝힌 대로 세계 평화의 요체를 한반도 평화로 본다면 당연히 북한 불교계와 교류 추진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동안 초청이나 입북 등의 방법을 여러 번 취했으나 양쪽 정치권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서 한반도 안에서의 직접적인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나 중국 등 우리보다는 대북 접촉에 훨씬 유리한 처지에 있는 이들 국가의 불교계와 긴밀한 협조하에 직접 교류의 물꼬를 트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 불교계의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불교보다 한발 앞서서 직접 교류를 해 오고 있음을 타산 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고 본다. 동북아의 중요한 고지인 한반도의 평화를 논의하는 불교 모임에 북한측 불교계가 빠져 있다는 것은 아직은 이 모임이 완성된 모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으로 이들 국가의 불교도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고통에 대한 해결에 공동으로 나서는 일도 필요하다. 신앙의 자유가 핍박받고 있다든지 종교적 편향 정책에 의해 정부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다든지 하는 부분에 대해서 공동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이 모임이 회원국의 불교도들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관건이라는 생각이다. 나아가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개인의 양심이 제한받는 이른바 인권 문제에도 귀를 기울인다면 좀더 불교의 가르침에 충실한 모임체로서 비불교인들에게도 성원을 얻어 낼 수가 있을 것이다. 기독교계의 ‘세계기독교협의회’와 같은 단체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회원 국가들의 고유한 불교 전통을 상호 이해하고 공통의 불교 신행 형태를 개발해 내는 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들 나라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특징을 갖고 있고 또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들이 있다.
중국 불교는 공산 치하의 말살 정책으로 이제 겨우 자생력을 키우고 있다. 잡다한 중국 고유 종교 및 사상과 야합해서 여러 종교적 성격이 불교라는 이름으로 공존해 왔다. 법당에서 부처님과 공자와 노자가 함께 모셔지기 도 하고 심지어는 관우와 장비가 불상과 나란히 자리잡기도 했다.
러시아는 티벳이나 몽고의 밀교적 색채가 짙은 불교로서 대승불교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신앙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불교는 학문적인 연구와 업적에 견주어 사원을 중심으로 한 신행 생활은 그리 활발하지 못한 현실이다. 곧 신도를 위한 법회의 개설이나 법회를 중심으로 한 신도들의 집단적인 생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민족 종교인 신도와의 결합으로 불교의 선명성이 희석되기도 했다.
미얀마의 불교는, 부처님 당시의 인도적인 불교 모습을 계승하고는 있지만 발달된 대승불교에 대한 수용이 없다는 점을 단점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 불교는 부족한 점이 있긴 하지만 남방불교가 갖고 있는 인도적 정통성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발달된 대승불교의 다양한 교학 체계와 신행 형태를 수용하여 발전시키고 있으며, 사원을 중심으로 한 각종 법회가 재가자를 중심으로 신행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어느 나라의 불교보다도 전통성과 보편성을 가진 불교라는 자긍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공통의 불교 신행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먼저 각종 불교 명절의 날짜 통일, 기본적인 불교 의식의 통일, 공통의 기본 경전 채택, 정기적 법회 진행 등 불자로서 가장 기초적인 신행 패턴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전통을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경험에 비추어 이런 문제들이 그렇게 쉽게 해결될 것은 아니지만 일불제자라는 의식이 그 무엇에 앞서 전개된다면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닐 것이다. 서양 종교들이 불교에 견주어서 결속력이 강하고 더욱 더 조직화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점에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북아 불교 지도자 평화협의회’는 이제 많은 과제를 안고 역사적인 출항의 닻을 올렸다. 서울에 둘 상설 사무국에는 불교 각 분야 전문가들이 배치되어 기획과 조사, 연구에 매진하면서 명실공히 국제 기구로서의 위상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이 단체가 진실로 한반도의 평화와 아울러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부처님의 참 가르침을 구현하는 정법 선양의 단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는 전적으로 이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자칫 잘못해서 모여서 밥먹고 헤어지는 관광 단체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 모든 불자들의 바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