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대의 인간성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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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강정구
1998년 04월 194호
지금 우리는 두개의 역사적 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하나는 오십 년 만에 여야 간의 정권교체로 새로운 국민정부를 출범시킨 점이고, 다른 하나는 국난이라고 일컬어지는 IMF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 개의 역사적 계기가 우리의 장기적인 민족사의 방향을 틀 지우고 우리의구체적인 삶을 결정짓는 전기가 된다는 점에서 깊은 성찰과 사려 깊은 대응을 요구한다.
이러한 자정의 계기를 맞아, 특히 IMF 시대에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세간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된 배경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속성, 곧 인간성마저 상실하였고 또 우리 스스로가 이 인간성 상실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 못할 만큼 자기 정화력을 잃어버렸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보편적인 인간성이냐 하는 물음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논의와 이견이 있겠지만 이러한 인간성을 잃어버린, 곧 인간답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라는 자화상은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이제IMF라는 외적 충격을 맞아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은 인간성 상실 현상이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우리 국민에게 다 해당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성 상실이란 일부 특권층에 국한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인간성 상실과 비합리성의 대표적 보기를 세 가지만 들어 보겠다.
첫째로 손꼽히는 인간성 상실의 보기는 반인륜성과 반도덕성일 것이다.
극도의 식량난으로 굶어 죽어 가는 북한 동포에게 식량지원을 거절하는 김영삼 정권의 대북정책과 이를 강제하는 보수언론에서 이의 전형을 확인한다. 인간생명의 존귀함을 거절하는 반인륜 행위, 동포의 굶주림을 애써 외면하고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반 민족행위, 정부차원의 지원을 거절할 뿐 아니라 민간차원의 북녘동포돕기 운동까지 억압하고 심지어 대북식량 지원을 추진하는 외국에까지 압력을 행사하여 동족을 수렁에 빠뜨리는 행위 등은 김영삼을 비롯한 정권수뇌부와 보수언론을 비롯한 지배집단의 반도덕성과 인간성 상실의 전형적인 표출이다. 다행히 새정부에서는 전향적인 북한 쌀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니 이것이 인간성 회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아직도 한나라당이 우리도 먹고살기 힘드는데 북한을 지원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반인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북한 뒷전 미루기 정책은 인간성 죽이기 정책의 지속일 뿐 아니라 서로 곤궁에 처할 때 도와줌으로써 민족통일의 전기를 마련하여 통일기반을 닦는 민족적 과제에 역행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성찰성 상실증이다. 곧, 평소 우리 자신과 자신의 행위에 대해 되돌아보고, 성찰하고 뉘우치는 과정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를 교정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80년대 중반의 3저 호황이라는 지극히 우연한 요인 때문에 한국자본주의가 도약하여 1995년 국민총생산액이 4570억 달러로 세계 11위를 차지하게 되고, 개인소득 1만 불 시대에 돌입하게 되자 갑자기 기고만장하여 오만과 방탕의 극치를 달렸다. 물론 이러한 오만과 방탕의 졸부근성은 상위 특권층이, 삼 퍼센트에 한정된 현상이긴 하지만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도박관광, 보신관광, 싹쓸이 해외여행 등으로 지구촌을 오염시킬 뿐아니라 그들 자신도 오염시켜 왔다. 이러한 오만이 IMF 총재의 구제금융 요청 요구에 우리의 재경원장관은 “너 정신 나 갔느냐?” 식으로 발로되었다. 더욱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러한 특권층의 오만과 방탕 및 자만심이 그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많은 중산층에게 까지 침투되어 이들 중산층까지 덩달아서 성찰 상실증에 걸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IMF 체제 아래서 이들 중산층은 자신들의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자기 성찰에 도달한 듯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특권층은 여전히 반성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IMF를 계기로 특권충은 높은 이자율, 금융실명제의 실질적 폐지 등으로 더욱더 떼돈을 벌게 되고 나머지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 양극화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반중산층이 출입하는 음식점이나 술집은 파리를 날리지만 강남의 룸싸롱 등은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 특권층의 반성찰성과 도덕결핍증을 그대로 보여준다.
셋째로 반합리주의의 만연이다. 선진국 진입이라는 OECD가입, 개인소득 1만불 시대 돌입, GNP의 성장 등 일시적인 거품의 팽창으로 합리적인 판단력과 제어력을 상실하여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로 돌변하는 모습들을 일컫는다. 아마도 전형적인 보기가 삼성이라는 재벌공화국의 ‘삼성제일주의’ 라는 반합리성 교리나 한보 재기 등일 것이다. 또 재벌총수의 개인적인 자동차 애호라는 편집광적 기질 때문에 과투자된 자동차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행위일 것이다. 이미 중복투자와 국내 자동차수요의 한계 및 수출시장의 제한성 때문에 더 이상의 자동차공장 증설은 우리 자동차업계에 공멸이나 심각한 출혈을 가져온다는 국내외의 연구결과나 일반 상식적인 판단을 한사코 외면한 점이다. 이제까지의 한국경제 관행은, 특히 재벌의 경제행위는 정경유착, 관치금융, 부정부패, 특혜지원 등으로 이러한 반합리적 기업경영이 허용되거나 오히려 장려되어 왔다. 수서 뇌물사건으로 회장이 옥살이하던 한보재벌이 은행돈을 바로 우리 일반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그 은행돈을, 무려 6조 원에 가깝도록 특혜 대출 받아 결국은 금융파탄을 점화시켰던 점등은 한국경제운영의 반합리성의 특별한 예가 아니라 보편적인 유형이었다. 우리 일반시민에게 은행 돈은 별따기 처럼 어렵지만 재벌에게 은행돈은 식은 죽 먹기였으니 대한민국은 우리들의 공화국이 아니라 재벌 공화국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제 국민정부와 IMF 체제에서는 잃어버린 우리의 공화국을 재벌공화국으로부터 되찾아야할 때이다.
인간성 상실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현상이고 그 역사적인 뿌리는 IMF통치를 받기 시작한 김영삼정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군사독재 삼십여년 기간에 군사지배와 군사문화가 시민사회의 구석구석에 침투하면서 정착화 및 구조화되었던 것이다. 단지 군사독재 기간은 냉전체제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IMF 통치가 나타나지 않았을 따름이다. 사실은 이미 1980년 우리의 경제 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일본과 미국의 긴급구제금융에 의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할 당시가 실질적인 모라토리움 상태였다. 만약 그 때 일본과 미국이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오래 전에 국가부도 상태였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인간성상실을 어떻게 치유하는가 하는 점이다. 흔히들 인간성 상실은 개인적 현상이니까 개인의 심성을 바꾸면 된다는 심리학적인 치유방식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전혀 효과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 이 방식은 몇몇 한정된 도덕주의자에게나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일상생활의 이해관계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일반대중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치유책이다. 문제는 누구든지 인간성에 입각한 행위와 삶을 영위할 때 그것이 사회적으로 보상받고 장려되어야 하며 이를 배반했을 때 강력한 사회적 규제와 제재를 받도록 인간성에 바탕한 경기규칙이 제도화 및 법제화되어야 한다. 또 이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동의를 유발했고, 동시에 통제와 감시를 항상화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정책에 의해 일차적으로 추진되어야겠지만 동시에 NGO와 같은 독립적인 조직을 통하여 국가, 재벌, 특권층등을 독자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발전과 민중의 세력화이다. 여기에다 교육과 예지를 통하여 개인을 의식화하는 심리적인 접근이 곁들여지는 치유책이 강구될 펼요가 있다. 단순히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국민의식 개혁이라는 수사어로써 인간성 회복을 쉽게 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근본적 치유책을 새 정부에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