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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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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문리 일기 - 현진 1992년 11월 129호
감자 캐는 울력이 있던 날이다. 안거를 시작한 뒤 첫 울력이 되는 셈이어서 다른 때보다 서둘렀다. 고무신은 흙이 잘 스며들어 밭일 할 땐 오히려 성가시다. 그래서 깨끗한 양말이 흙투성이가 되는 게 싫어 이번에는 운동화를 신었다. 윗저고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밀짚모자까지 쓰면 밭일 할 채비가 대충 끝나는 셈이다. 팔뚝에 토시까지 갖춘 스님네들은 행동이 야무져 보기에도 좋다. 대중울력(大衆運力)은 빠지는 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어른 스님네부터 행자님들까지 팔목을 걷어붙이고 땀을 흘리는 시간이다. 뒷방의 노스님들도 힘든 밭일에 동참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이곳에선 아직까지 울력의 정신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화엄전 뒤 넓은 채마밭 대부분이 감자밭이다. 윗쪽에는 들깨밭이고 아래쪽은 고추와 상추를 심었다. 감자밭은 일꾼들 몇 명이 할 경우엔 며칠분 작업은 족히 될 만한 양이었다. 일 년 동안 먹고도 남지 싶었다. 그래도 살림을 꼼꼼히 하시는 원주院主 스님은 “가뭄이 들어 감자 알맹이가 작아졌어요”라며 토실토실 살이 오르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시는 게다. 사실 감자를 다 캘 동안 주먹만한 감자는 별로 눈에 띄질 않았다.
감자 캐는 일도 다 요령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호미로 파헤치다가는 감자가 상하게 된다. 호미 끝에 감자가 찍히거나 상처가 생기면 그곳이 썩어들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가 없다. 이랑에 심긴 감자를 그냥 푹푹 파낼 것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깊이 호미질을 하는 게 비결이다. 그러면 알맹이가 흙덩이채로 고스란히 드러나곤 했다. 또 한 줄씩 맡아서 하는 게 수월하고 능률도 몇 곱절 난다는 걸 알았다. 그러지 않고 우왕좌왕하데 되면 이랑 한 줄 정도는 비워 놓고 일을 끝내기가 일쑤다. 그래서 원주 스님은 괭이를 들고 다니며 이랑마다 확인하는 작업을 뒷줄에서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곳에 여러 개 박혀 있는 감자를 캐낼 땐 보물을 찾은 것처럼 신나서, “스님, 여기 좀 보세요. 한무더기나 되요” 라고 한 걸로 보아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밭자락이 반 이상 비워지면서 스님네의 손놀림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일에 탄력이 붙은 것 같았다. 감자 줄기를 뽑아 내면, 그 이랑을 따라 호미질을 하고 뒤이어 감자를 주워 담는 동작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다. 한 가마니가 금방 채워질 만큼 빠른 작업은 순전히 다들 자기 일처럼 열심히 몰입한 덕택이다. 이 이랑 저 이랑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감자를 줍는 스님은 고무신에 흙이 차는 것이 귀찮은지 아예 맨발이 좋다는 식이다. 울력은 땀이 흐르지 않을 만큼 쉬엄쉬엄하라는 말도 있지만 어디 그게 될 법인가. 무엇보다도 비구 스님네들은 무슨 일이건 후딱 해치우는 성질이 몸에 배인 까닭에 더욱 그렇다. 오늘 같은 일은 느슨하게 하면 도리어 기운만 빠지게 된다. 이런 살림살이는 일상의 공부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날씨도 뜨겁지 않아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감자 캐는 일을 마칠 수 있도록 알맞게 날을 정한 건 소임자 스님의 오랜 경험 덕이 아닐까 싶다. 때를 놓치면 대중들의 공부 분위기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손발이 척척 잘 맞아 하루일이 반나절로 줄어든 셈이다. 그 사이 넓은 감자밭이 빈밭이 되어버린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감자를 담은 자루들을 한곳에다 모아 놓고서 일을 마무리지을 땐 햇살이 많이 엷어져 있었다. 몸에서 끈적끈적 묻어나는 땀냄새가 싫게 느껴지지 않은 날도 오늘이 처음이다. 수행자로서의 내 삶이 괜히 당당해지려 한다. 그것은 내 일에 충실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다 같이 하는 울력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수행이다. 일도 늘 하던 사람이 잘 하는가 보다. 오랜만에 호미질을 반나절 했다고 손에 물집이 생기고 어깨까지 묵직하다. 몸을 크게 움직이는 일을 자주 하질 않은 탓일게다.
일본의 어떤 스님이 우리나라 사찰을 방문하고 세 가지에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울력이 적다는 사실과 일꾼을 사는 일, 그리고 불필요한 노임 지출이 그것이다. 스님네들이 너무 편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흔히 소임자 스님들이 “울력을 꼭 사중일로만 생각하는 자세 때문에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라고 말한다. 또 노스님들은 “큰 절을 그저 묵었다 가는 하숙집 정도로 여기고 남의 집 일 돌보듯 한다” 면서 꾸짖으신다. 이러한 지적은 내 생활만 봐도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점점 타산적이고 이기적으로 굳어 가는 내 일상이 무섭다. 아무튼 수행자가 어떤 문화에 길들여진다는 건 자기 질서에 둔감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까 먹었던 햇감자 생각이 자꾸 난다. 포슬포슬하게 잘 삶은 감자는 단백한 맛이 으뜸이다. 그리고 다른 식품보다 조리법이 많아서 물리는 일도 없거니와 고혈압을 예방하는 건강 식품이기도 하다. 여러 개 먹은 탓인지 여태껏 속이 거북하다. 절식을 잘 못하는 것도 내게는 큰 병이다. 앞으로 삶고, 볶고, 튀긴 햇감자 요리를 공양 때마다 맛보는 즐거움도 괜찮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