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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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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성태용 1998년 04월 194호
“집에 다이아 있니?”
“아-니”
“밍크나 무스탕 있니?”
“아-니”
“그렇담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아라애, 니가 무슨 죄 지었다고 말끝마다 IMF 타령이니?”

안사람과 안사람 친구 사이에 있은 전화 대화 내용의 일부이다. 대화에 IMF가 빠지면 큰일나는 세태라 안사람이 IMF 들먹이며 우는 소리를 했더니 친구가 이렇게 재치 있는 말로 되받아 치더라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위 사실이 틀림없냐구? 그래도 교수 집에 다이아몬드 하나도 없다는 게 정말이냐구? 그건 어김없는 진실이다. 아무 것도 없이 안사람 자취하던 방으로 장가들어 가던 주제에, 신혼 초에 그릇이 없어 집단손님은 사절하던 주제에, 무슨 다이아몬드 반지 예물을 준비할 수 있었겠는가? 그 뒤로도 남들 다 야후-하는 다이아몬드 하나 안사람에게 여보란 듯 선물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불자라 그런지 남의 가죽으로 된 옷을 즐기지 않는 안사람의 취향 때문에 외화 써가며 무스탕의 원산지 호주여행은 다녀왔어도 정작 무스탕은사오지 않았다. 가방 하나 더 사지 않고 출발 때의 가방 그대로 돌아온 것은 그 많은 단체 여행객 가운데 나 하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선물 챙기는 것에 소홀한 내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무슨 궁끼 흐르는 집안 얘기냐? 그래도 나로서는 위 얘기를 전해 듣고는 뭔가 크게 느낀 점이 있어서이다. IMF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사람마다 계층마다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그 얘기를 듣고 새삼 머리에 강하게 자리잡게 되었기에 부끄러운 살림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래! 항심을 지니고 여일 하게 살자. 내가 살아온 방식에 대하여 한번 총체적으로 점검을 하는 계기로는 삼되, 너무 위축되어 꼭 해야 될 것도 무조건 미루는 그런 삶은 살지 말자?”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IMF를 핑계로 꼭 해야만 할 일도 무조건 눌러 버리고 생략하는 것을 능사로 여겨, IMF를 극복하고 이루어야 할 세상이 어떤 것인지, 이런 방식으로 극복하고 나면 그 때는 살기 좋아진 세상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싹 사라져 없어지고 오히려 지옥 같은 세상이 되지나 않을지 하는 노파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먼저 손쉽게 없애 버렸던 것을 회복하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도 힘든 상황이 올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다. 또 IMF라는 눈앞의 난관만을 외치는 방식은 너무도 짧은 호흡으로 세상을 살게 하는 것 같아 갑갑증이 나기도 하고.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마도 두 가지 유형의 삶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욕망에 의해 추진되는 삶이요, 하나는 서원에 의해 추진되는 삶이다. 대부분의 인생이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것인데 무슨 고상한 서원 같은 얘기를 하느냐구? 그런게 아닐 것이다. 서원이란 불교적 용어를 조금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향해 움직이는 삶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IMF, IMF하는 와중에는 우리가 함께 지향해야 할, 공동의 목표가 되어야 할 미래상이 없다. 그저 눈앞의 경제 위기만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은 우선 비참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짧은 호흡 속에서는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까지도 무참하게 밟아버리는 폭력성 또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저열한 욕망에 움직이는 삶의 전형적인 예요, 그러한 저열한 흐름에 온 국민을 몰아넣을 위험도 있는 것이다.
왜 그 많은 지도자들께서는 이 어려움의 극복을 통해서 도달할 이상적인 미래상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힘을 결집시키는 그런 고차원적인 길을 밟지 못하는 것일까? 시련 극복의 과정이 이상적인 미래 건설과 연결된다는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 채, 그저 이 어려움 극복하면 다시 잘 살 수 있다는 방식으로 넘어간다면 결국은 IMF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비극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장단에 그저 남의 춤을 추고 있어서는 안될 것 같다.
카추사로 군대 생활을 하고 있는 아는 분의 이들이 계속 양담배를 피워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더니 IMF 사태가 나면서 국산담배로 바꾸었단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IMF지나가면 다시 양담배 필 겁니다” 였다든가? 여기에 바로 두 가지 진실이 있다. 하나는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렇게도 줄기차게 피던 양담배까지 순순히 포기하는 착한 국민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어려움만 지나면 다시 IMF를 오게 했던 이전의 삶으로 원대 복귀할 대다수 국민의 모습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IMF가 왔든 안 왔든, 우리가 더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존재로서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었는지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 세계에 대한 인식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것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에 국민적인 차원에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IMF 사태가 그러한 반성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므로 무조건 한때의 분위기에 몰려 사치와 낭비 풍조에 대해 피상적인 비판으로 반성이 이루어 질 것은 아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시름을 달래던 대다수의 서민에게 무슨 사치와 낭비의 여유가 있었겠는가?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피땀 흘렸던 그들에게 또 부당하게 많은 고통의 짐을 지우기 위한 구실로 IMF가 사용되지나 않았으면 다행이 아닐까?
우리 집에 다이아몬드도 없고, 무스탕이나 밍크 코트도 없다 해서 그런 서민들 속에 끼어 이 어려운 시대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짧은 호흡을 벗어나 좀 긴 안목으로 이 시대를 보면서, 부처님 은택을 입은 몸으로 우리의 궁극적 서원인 불국토건설을 이 시대 속으로 구체화하여 이웃들과 공유하는 일에 지금이라도 나서야하지 않을까하는 뒤늦은 분발이 있어야하겠기에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한 것뿐이다. 불국토 건설이란 아득히 먼 서원, 입으로만 내세우던 서원을 나와 우리의 현실적인 삶속에 구체화한다면 IMF를 지나고서도 여일하게 이어질 큰 흐름을 일구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요즈음은 밥을 비벼먹고 나면 김치조각으로 그릇을 닦아 마신다. 설거지를 해 보니(자주는 아니고 가끔 한다) 생각보다 구정물이 많이 나와 내 몸으로 정화를 시켜야 될 것 같아서. 그런데 막내 녀석도 내 본을 보아서인지 따라서 한다. 어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우리 집에 애국자 두명 있어!”

“어머니 말씀은 결코 비꼬는 투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