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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개미와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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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강은교 1999년 07월 209호
그 날 아침도 나는 일어나면서 나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오늘은 가 볼까? 아니 가야돼.”
그러나 그날도 그냥 지나갔다.
나는 방바닥에 펴 놓은 청바지를 노려보았다. 그러고 있자니 청바지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나가 보시죠…’
어느 날 나는 드디어 그 바지에 나의 다리를 꿰었다. 양말을 신고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쓰고 등산용 지팡이까지 들었다. 완전 무장이었다.
현관문을 나섰다. 봄눈이 날리고 있었다. 나는 지팡이를 짚었다. 앞에 놓인 길의 거리가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었으며 비탈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그 날은 거기서 그냥 돌아왔다. 미끄러운 비탈을, 더구나 눈이 날리는 데,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탈을 바라보면서 그냥 돌아왔다.
다음날 나는 다시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비탈을 넘어섰다. 지팡이를 짚으며 산으로 올라갔다. 마지막, 약수터로 가는 입구는 또 심한 비탈이었다. 나는 땅바닥에 앉았다. 거의 앉아서 그 비탈을 내려갔다. 몇 시간이 걸린 기분이었다. 약수터에 도달했을 때의 그 감격이라니!
그 날 뒤로 나는 매일 산에 갔다. 하루에 두 번씩 산에 갔다. 어떤 날은 세 번이기도 했다. 옷차림은 점점 가벼워졌다. 혼자 산에 올라가 심호흡도 하고 아랫동네를 내려다 보기도 했다. 아랫동네를 내려다 보면서, 해 떠오르는 바위에 앉아 명상 호흡을 하기도 했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여러부운-, 나는 강은굡니다아아아—”라고.
약수터로 내려가는 비탈은 점점 짧아졌다. 거의 1분밖에 걸리지 않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개미는 또 나를 얼마나 감동시켰는지.
산꼭대기에 앉아 아랫동네를 내려다 보고 있는데 개미 한 마리가 열심히 내 운동화를 타 넘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운동화 이 쪽으로도 가보고 저 쪽으로도 가 보고 돌아도 보고 하면서 가장 쉽게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 모양을 한참 내려다보던 나는 운동화를 들어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 녀석은 쏟살같이 운동화가 사라진 그 길을 달려갔다. 그 작고 부드러운 것의 맹렬함이라니!
나는 내가 삶이 어떠하고 어떻다는 것의 부질없음을 순간 깨달았다.
그 날의 개미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산에는 그 밖에도 얼마나 부드럽고 작은 것들이 많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나도 살기로 했다. 산을 내려와 집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굴 사이소’하는 아주머니의 음성이었다. 나는 곧 시를 하나 썼다.

아침이면 머리에
바다를 이고 오는 그 여자.

생굴이요 생굴!
햇빛처럼 외치는 그 여자.

바람 한 점 없어도
일렁이는 주름 그 여자.

손등엔 가득
먹구름 울고 우는 그 여자.

비 언제 올지 몰라…
비 언제 올지 몰라…

늘 파도치는 든든한
엉덩이 그 여자.

어둠보다 빨리
새보다 가벼이
햇님하고 같이 걷는
예쁜 예쁜 그 여자.
그 여자 1 전문

그러니까 이 시는 내 삶에의 회복이 들어 있는 시이다.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삶을 보여 준 이였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삶을 부르게 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런 다음 나는 다시 살기 시작하였다.
산과 개미와 그 여자, 나에게 어느날 문득 삶을 준 이들, 난 이들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