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쏘는 물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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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 곽재구
1992년 11월 129호
하늘나라에 아사달이라는 이름의 한 꼬마 요정이 살았습니다.
이 꼬마 요정은 대단한 개구쟁이인 데다 심술꾸러기였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사는 사람치고 이 꼬마 요정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였습니다. 하늘나라 사람들이 말썽꾸러기들을 혼낼 때 처음 시작하는 말이 “요놈, 요 아사달 같은 놈”이라는 것만 보아도 이 꼬마 요정의 장난과 심술이 어느 정도인 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 안 듣기, 컴퓨터 프로그램 지우기, 비둘기 다리에 감자 달아 매기, 빨간 불 골라 횡단보도 건너기, 이웃집 자동차에 낙서하기, 합창 시간에 혼자 큰 소리로 노래하기, 여선생님 도시락에 개구리 잡아넣기, 잔디밭에 오줌 누기... 아무튼 이 꼬마 요정의 장난과 심술은 흥부 놀부전의 놀부가 그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생각하기에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심술꾸러기 꼬마 요정에게도 꽤 심각한 불행의 시간들이 닥쳐왔습니다. 이 불행은 필경 이 꼬마 요정의 장난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장난의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닌 하늘나라의 임금님인 옥황상제라는 점에서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옥확상제의 정원에는 천도복숭아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천도 복숭아 나무에는 일 년 사철 천도복숭아가 열려 있었는데, 이 복숭아는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지구의 인간 세상에서 무슨 큰 재앙이 일어났을 때 한 개씩 떨어뜨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신비의 복숭아였습니다. 옥황상제가 하늘나라의 임금님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천도복숭아의 힘 때문이었겠지요.
하지만, 옥황상제의 복숭아 나무에는 이제 천도복숭아가 세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땅 위에 무슨 큰 일이 있을 적마다 다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이 천도복숭아 세 개는 하늘나라의 큰 보배로서 아주 귀중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천도복숭아가 자라는 옥황상제의 정원을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그 귀한 천도복숭아가 하나 없어진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일찍이 하늘나라가 이렇게 큰 소동에 휩싸인 적도 없었고 옥황상제께서 그렇게 크게 화를 낸 적도 없었습니다.
범인은 곧 밝혀졌습니다. 옥황상제의 방에는 모든 사람의 과거 행동 하나하나를 다 비춰 주는 거울이 있는데 범인은 그 거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범인은 바로 꼬마 요정 아사달이었습니다.
그 모든 장난과 심술에 싫증이 난 아사달에게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옥황상제의 천도복숭아 나무였습니다.
“이까짓 복숭아가 귀하면 얼마나 귀하다고 다들 야단이야.”
정원지기가 잠시 조는 틈을 타서 열매 하나를 뚝 따 지구를 향하여 힘차게 던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옥황상제의 복숭아 나무에는 이제 천도복숭아가 두 개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꼬마 요정 아사달은 하늘나라가 생긴 이래 가장 큰 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로부터의 추방이었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늦게야 깨닫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 아사달에게 옥황상제의 노한 목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네가 천도복숭아를 던진 그 땅으로 내려가 잃어버린 천도복숭아를 되찾아 와야 한다. 하루에 한 가지씩 해서 천 일 동안에 천 가지의 좋은 일을 하면 그 복숭아를 찾는 길이 열릴 것이다. 당장 떠나라.”
그렇게 해서 천하의 개구쟁이요 심술장이인 아사달은 하늘나라로부터 지상으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만나려는 이야기가 바로 이 꼬마 요정 아사달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은 너무 자연스런 일이겠지요.
아사달이 처음 이 지상에 떨어진 곳은 서울의 어느 변두리였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이었는데 날씨가 꽤 쌀쌀했습니다.
아사달은 어느 골목 입구에서 한 소년을 보았습니다. 소년은 골목 앞의 큰길을 바라다보고 있었는데, 얼핏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울음을 꾹 참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얘야, 여기가 어디니?”
아사달이 물었을 때 소년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습니다.
“무슨 슬픈 일이 있어?”
두번째 물었을 때야 소년은 아사달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한참 동 아사달에게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왔니? 못 보던 얼굴인데. 춥지 않아? 옷을 다 벗고.”
소년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사달이 하늘나라로부터 추방당할 때 하늘나라의 모든 물건은 다 압류되었기 때문에 지상에 도착한 아사달의 모습은 알몸 그대로였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웃옷을 벗어 아사달의 어깨에 걸쳐 주었습니다. “넌 참 따뜻한 아이구나. 내 이름은 아사달이야. 하늘나라에서 쫓겨났어.”
“아사달? 하늘나라에서 쫓겨났다고? 넌 참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래, 하늘에서인지는 몰라도 어디선가 쫓겨난 것만은 분명해.”
소년의 이름은 민세였습니다. 아사달은 민세와 함께 골목 안쪽에 있는 민세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뜰안 가득히 국화가 피어 있는 자그마한 집이었습니다. 민세는 아사달에게 자기가 입던 옷 한 벌을 내주었습니다.
“집에 가거든 돌려줘. 바꿔 입을 옷이 그것밖에 없어.”
“난 집이 없어. 당분간 이 지상에서 살아야 하거든. 하늘나라로 돌아갈 때까지만 빌려줘.”
민세는 아사달이 정말 넉살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하늘나라에서 왔다고 몇 번씩이나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어쨌든 좋았습니다. 아사달이라는 이 엉뚱한 친구가 아니었다면 민세는 오늘 저녁도 어제 저녁처럼 혼자 울다 잠들었을 테니까요. 저녁도 먹지 않고 엄마 아빠 생각만 하다가요.
민세는 라면 두 개를 끓였습니다. 아껴 두었던 달걀도 하나 터뜨렸지요. 라면은 민세보다도 아사달이 훨씬 잘 먹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전혀 보지 못한 음식인데 이름이 뭐야? 맛이 기막혀...”
기가 막힌 것은 아사달 쪽이 아니라 민세 쪽이었습니다. 라면을 처음 먹는 다는 어투도 그렇거니와 그놈의 하늘나라 타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넌 라면도 모르니? 정말이야?‘ 하고 물으려다가 민세는 말을 멈추었습니다. 어쩌면 아사달이라는 이름의 이 엉뚱한 친구가 정말 하늘나라에서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사달이라는 이름만 해도 그렇습니다. 단군왕검이 맨 처음에 우리나라에 세운 땅의 이름이 아사달이라는 것을 민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민세가 아사달을 천천히 살펴보자 아사달은 민세를 향하여 싱긋 웃어 보였답니다.
“엄마 아빠는 어디 가셨니?”
아사달이 물었을 때 처음 한동안 민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밤이 깊어 갔습니다. 민세는 아사달에게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해 나갔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참 좋으신 분이었어. 두 분 다 학교 선생님이셨지. 그런데 지금은 학교에 안 계시고 감옥에 계셔.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은 단체에 가입하신 게 죄야.”
“이를테면 내가 천도복숭아를 딴 것과 같은 셈이구나.”
“천도 복숭아? 무슨 말이지?”
“응? 아냐, 별 거.”
천도복숭아만은 아사달도 민세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 최대의 비밀이고 신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난 우리 엄마 아빠가 죄가 없다는 것을 믿어. 엄마 아빠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셨어.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셨단다. 무슨 말인지 좀 어렵지? 내일은 한강변에서 모임이 있어. 엄마 아빠와 같은 분들이 죄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이야. 경찰 아저씨들이 많이 나와 두렵기는 하지만 난 내일 그곳으로 갈 거야. 참 너도 내일 함께 갈 수 있겠니?”
민세의 말을 들으며 아사달은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내일부터 하루 한 가지씩 좋은 일을 하기로 한 옥황상제님과의 약속을 실천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민세야.”
그렇게 말하며 아사달이 민세를 바라보았을 때 민세는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느 틈인지 마른 눈물자욱 두 줄기가 나 있었습니다.
날이 밝자 아사달과 민세는 한강 둑으로 나갔습니다. 한강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손에 한 송이씩 꽃을 들고 있었습니다.
“경찰 아저씨들에게 꽂아 줄 꽃이야. 조금 있다가 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경찰 아저씨들은 우리들에게 물대포를 쏘기도 하고 아주 매운 가스탄을 쏘기도 하지. 그렇지만 우리는 경찰 아저씨들을 사랑해.”
“물대포를 쏘고 가스탄을 쏘는데도 경찰 아저씨를 사랑한다고? 그 아저씨들에게 꽃을 꽂아 준다고? 무슨 소린지 알 수 없구나.”
“엄마 아빠 말씀이 그 아저씨들도 우리가 미워서 그러는 것은 아닐 거라고 하셨어. 그 아저씨들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는 같은 생각이라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경찰대장이나 그보다 더 높은 사람들 중에 아름다운 세상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에 더 맞는 세상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민세의 말을 들으며 아사달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강 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어느 순간 민세가 말한 경찰 아저씨들이라는 사람들도 아주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잘 훈련된 로마병사들처럼 행동했습니다. 긴 방패를 들고 투구를 쓴 모습이 꽤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경찰 아저씨들 중 한 사람이 나서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몇몇 사람들이 경찰 아저씨에게 다가가 투구며 계급장 위에 꽃을 꽂아 주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경찰 아저씨를 사랑해요’ 하는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꽃을 들고 경찰 아저씨들에게 달려갈 순간이었습니다.
“발사!” 하는 소리와 함께 물대포가 터져 나왔습니다. 거센 물줄기를 피해서 사람들은 여기 저기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넘어져 물벼락을 뒤집어쓰기도 했습니다.
아사달은 민세가 말한 경찰 아저씨와 물대포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마로 그 순간 아사달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아사달은 곧장 물대포의 포신 위에 올라섰습니다.
“경찰 아저씨! 물대포를 쏘지 마세요!”
물대포 위에 올라선 아사달이 외쳤습니다. 쫓기던 사람들도 그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사달의 외침과 함께 물대포의 물줄기가 깨끗하게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넌 웬 꼬마냐? 빨리 내려오지 않겠어. 엉!”
경찰 아저씨들 중 제일 높은 듯한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치더니 물대포를 쏘는 아저씨에게 큰소리로 명령했습니다.
“발사! 물대포 발사!”
그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물대포의 포신에서 붉은 물줄기가 솟구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 비단 같기도 하고 무지개 같기도 한 색색의 찬란한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펑펑 뿜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꽃이었습니다. 무수한 꽃송이들이 하늘 가득 쏟아져 사람들 앞에 쌓이고 있었습니다.
“만세! 만세! 꽃이다, 꽃! 아름다운 세상 만세!”
사람들이 그렇게 외쳤습니다.
“발사! 물대포 발사!”
경찰아저씨가 다시 거세게 명령했습니다.
“펑! 펑!”
그러자 또 어김없이 꽃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물대포의 포신을 떠난 꽃송이들은 마치 카드색션처럼 하늘에 글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꽃들은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글을 쓰기도 하다가 ‘우린 한 나라’ 또 ‘경찰 아저씨 사랑해요’라고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모두 글자로 쓰여졌습니다. 땅에 떨어진 꽃송이들은 경찰 아저씨들의 투구와 옷깃과 방패와 군화 위에 수북수북 쌓였습니다.
경찰대장 아저씨는 당황했습니다.
“최루탄! 최루탄! 최루탄 발사 준비! 발사!”
그러나 이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최루탄 발사기에서는 색색가지의 꽃가루와 테이프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금빛 은빛의 꽃가루들은 물대포를 떠난 꽃송이들과 함께 어울려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우린 한 형제야. 아름다운 세상 만세’하고 누군가 외치면 하늘에서는 그대로 꽃글씨들이 새겨졌습니다.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나갑시다!’하고 또 누군가 외치자 하늘에는 그대로 꽃글씨가 새겨졌습니다.
사람들은 꽃과 꽃가루와 색색의 테이프 속에서 아무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경찰도, 경찰대장도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어나갔습니다. 꽃들이 쉴새없이 수북수북 떨어져 내렸습니다.
민세는 비로소 아사달이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사달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사달! 아사달! 어디 있니?”
민세가 그렇게 외치자 하늘에는 어김없이 그 말과 똑같은 꽃글씨가 새겨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