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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염원하는 불국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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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경성 1998년 04월 194호
불교에서 사회에 해당하는 용어는 ‘중생계衆生界’ 이다. 곧 중생이 모여서 살고 있는 세계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중생은 ꡐ중연화합이생衆緣和合而生‘ 곧 여러 가지 요인들이 모여서 발생된 존재라는 뜻이다. 여러 가지 요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설명이 바로 오온설五蘊說-오온五蘊이란 색온色蘊(물질), 수온受蘊(감각), 상온想蘊(지각), 행온行蘊(의지), 식온識蘊(의식작용)을 말한다-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물질과 감수능력, 지각능력, 의지력, 인식, 사고, 추리능력이 합쳐진 존재로서 개개인에게 특수한 자아自我란 성립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무명이라 한다. 무명으로 인해 탐, 진, 치 등의 번뇌를 일으키고, 번뇌는 반드시 고통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고통을 크게는 생, 노, 병, 사의 사고四苦로 보았고, 그러한 논리가 전개되어 희, 노, 애, 락, 우優, 환患, 공포, 불안, 번민 등도 모두 고통의 결과를 가져오는 번뇌로 파악한다.
인간의 고통은 전적으로 개인의 잘못인가 그렇지는 않다. 중생계는 탐, 진, 치의 삼독을 제거하지 못한 개인들이 모여 사는 사회이다. 따라서 탐, 진, 치는 개인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 형태로 발산되어 다른 이에게 번뇌와 고통을 불러 일으키고, 개인도 사회로부터 사회적 탐, 진, 치의 고통을 받게 된다.
‘탐貪’ 이란 남을 희생시켜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려는 것으로 착취의 형태로 나타난다.
‘진賑’ 도 사회적 형태로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폭력이란 이기적 충족을 위해서 남을 괴롭히는 치명적 행위이다.
‘우치遇癡ꡑ 란 개인이 몽매함을 말하는데 사회적인 형태로는 억압으로 나타난다. 억압이란 상대가 몰라야 하므로 하얀 것을 검은 것으로 진실을 거짓으로 모든 정보를 은폐하고 조작하여 강요하는 폐쇄적인 행위를 일컫는다.
이와같이 인간, 곧 중생은 내적으로는 개인의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으로부터 고통을 초래하고 외적으로는 사회의 착취와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과 중생의 무명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며, 고통이 극복된 세계의 열반, 해탈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 것이다. 인간의 과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착취와 폭력과 억압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남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ꡐ나의 임무ꡑ로 여기고 굽힘없이 나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보살인 것이다.
대자대비大慧大悲의 자慧는 기쁨을 주고 비悲는 고통을 없애 주는 것이며, 부처님 마음 가운데에 있으므로 ‘대大’ 라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비의 정신은 매우 넓고 큰 이타적 정신이다. 보살은 이 자비의 실천활동인 이타행으로써 이른바 복전행福田行을 실천한다.
복전福田이란 복행을 하는 대상이며 그 대상을 공양함으로써 자기의 장래에 복을 받게 하는 원천 또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복행이 행해지는 대상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복덕을 주는 밭이라는 의미에서 공양하는 대상을 복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복전이라는 명칭은 불교 이전부터 인도에서 사용되었는데, 수행자, 빈민, 여행자등에게 보시를 하면 그로써 공덕이 생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들을 복전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보시물의 대상이 확대되었다. 이것을 행함에 따라 상대적인 복덕을 얻는다고 해서 생천복락사상生天福樂思想이 나타나고 복전사상이 차츰 확대, 발전하여 널리 일반사회의 곤궁자에 대한 보시행이 되었다.
우리는 남에게 내 것을 준다는 것이 소유의 이전으로 다시는 내 것이 안된다는 고정관념과 재물에 대한 절대적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살은 이미 동체대비로써 인간은 그 양태에 있어서는 차별이 있고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은 관계적 위치에서 연기緣起임을 자각한다. 보살은 연기를 통하여 ‘나’ 라는 개체의 차별을 드러내게 하고 있음을 보고 위로는 진리를 구하여 자기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는 자리自利를 행한다. 그리고 동시에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두루 도움을 주는 이타利他적인 자비의 실천자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혼자 견디기에는 너무 힘들고 슬픈 시간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따뜻한 가슴과 정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무슨 점령자처럼 들어와 우리의 땅을 휩쓸고 있는 IMF라는 이국의 시간대 속에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 지척에 있는 이웃들뿐이다. 내가 너의 복전이 되고 네가 내 복전이 될 때 우리는 사람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태어나는 보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자리에서 태어난 보살이 우리 사회에 많을 때 우리는 이 엄청난 삶의 위기를 극복하고 삼독의 번뇌가 끊어진 존재로 희망에 찬 시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복전도 역시 중생이다. 중생이 없는 불교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중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우리 사문의 의무이다. 우리가 염원하는 불국토란 현실세계에서 주위의 모든 이웃들이 고통과 괴로움에 없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할때 진정한 정토가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