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나의 꿈, 공생농업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정경식 1998년 04월 194호
열아홉살… 나에게 꿈이 있다면 오로지 농사를 짓는 게 꿈이었다. 신발을 벗고 흙을 밟으면서 농작물을 어루만지며 자연과 교감을 함께 느끼는 농사를 짓는 것이 꿈이었다.
소박하고 단순한 꿈이었지만 열아홉살 때의 꿈을 실현하고자 집에서 무척 노력했지만 아버지와 주변 어른들은 절대 반대하였다. 아버지가 농사를 짓겠다는 이들의 소박한 꿈을 절대 반대한 이유는 첫째 농사짓는 사람은 사람 대접 못 받는다, 둘째, 농사짓는 사람은 돈 못 번다, 셋째 농사짓는 사람은 출세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가지고 평생 농사를 지어 봤지만 농사라는 것은 더이상 자기 자식에게 대물려 줄 수 없다는 생각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식에게만은 이제 절대 농사를 못짓게 하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소박한 꿈이었다. 여태까지 농사지어 온 것만 해도 억울한데 어떻게 다시 자식에게까지 농사짓게 할 수 있겠는가.
그 소박한 꿈은 어쩌면 아버지의 한으로 가슴 속 깊숙이 응어리져 있었던 것 같다. “이 미친놈아 너가 농사 짓는다고…. 지금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농사지어. 젊을 때 용기와 기백을 가지고 도시에 사는 꿈을 꾸어야지 농사지어 너 평생 천덕꾸러기로 살 작정인가. 농사라는 것은 죽어도 죽어도 한 평생 흙 파먹는 두더쥐와 같은 거다. 햇빛 못 보고 땅 속에서 흙만 파다 저 세상을 가는 거다. 농산물 제값 받아 돈을 버는가. 농사짓는 사람 진급이 있는가. 농사짓는 사람치고 상장 받아 보고 출세하는 사람 있는가 늘 흙 속에 파묻혀 손발은 쩍쩍 벌어져 피가 흐르고 얼굴은 땟물이 끼어 언제나 거지같지, 그렇다고 좋은 옷을 한 벌 사입어 맛난 음식 한번 사먹어. 늘 촌놈 티에서 벗어나지 못히는 농사를 뭐 할라 짓.” 내 인생을 봐서라도 아버지는 자식이 농사짓는 것을 절대 반대하셨고 논 밭을 팔아서라도 공부시켜 주겠다는 것 아버지의 소원이었다.

아버지, 그래 아버지 말이 맞아요.
한평생 얼마나 사람 대접 한번 못 받고 농작물은 저물가 정책으로 시달려 왔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옛날 옛날에는 모두가 농촌이었고 농사를 천직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업정책으로 인해 배운다고 배운 사람들 모두가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모두 농촌을 떠나고 있지요.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 아버지의 한 맺힌 절규는 농사 짓지 말아라. 어쩌면 한 맺힌 아버지의 절규는 이 세상의 끝을 이야기하는 바로 그것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도시로 떠났습니다. 불과 삼십 년 사이에 도시는 불빛이 너무 밝습니다. 이젠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지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연기 굴뚝은 끝없이 검은 독기를 풍기며 움직이는 자동차는 괴물이 되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쉴 줄 모르고 미치광이 처럼 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온갖 환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돈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환상 말입니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로 금 나와라 뚝딱하면 언제든지 금이 나오듯이 말입니다. 그 결과 우리 인간에게는 앞으로 어떤 재앙이 뒤따를까요. 저는 한국 동화에 나오는 보물 맷돌을 생각해 봅니다.
부자가 된 뚝쇠 영감이 더 부자가 되고파 무엇이든지 말만하면 나오는 맷돌을 훔친 이야기 말입니다. 뚝쇠 영감은 맷돌을 배에 싣고 가면서 비싼 소금이 나와라 하면 소금이 쉬지 않고 나왔습니다. 이제 소금을 그만 나오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지요. 결국 배는 소금에 눌려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문명 속에서 질주하는 기계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 창조해낸 축복 속의 재앙이 아닐까요.

이젠 멈출래야 멈출 수 없는 죽음의 행진곡. 그를 향해 오늘도 우리는 자가용을 타고 질주하고 있다. 도시는 이제 더 이상 멈추게 할 수 없는 보물 맷돌이라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맷돌을 근원적으로 멈추게 하는 농적인 사고로 돌아가야 한다. 농적인 사고로의 전환은 바로 공생 농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공생농업이란 글자 그대로 함께 살아가는 농업이다. 흔히 사람과 자연은 하나다 라는 것이 바로 공생의미이다. 흙 1그램 속에는 일억에서 이억의 미생물이 함께 산다. 그 공존을 해 흙이 살아나며 살아난 흙을 통해 식물이 자라고 그 식물은 동물 또는 사람의 먹이가 되고 그 동물 또는 사람의 배설물이 다시 흙으로 되돌아가는 순환 체계를 통틀어서 공생이라고 한다.
흔히 요즘 이야기하는 유기농업 또는 생명농업, 지면농업 모두가 공생농업이라 본다. 나는 유기농업을 통해 아아, 이것이 공생이다라고 느낀 체험이 있다.
십삼 년 전쯤 유기농 초기 때 이 곳 마을 사람들과 고추 농사를 한 적이있다. 그런데 고온다습한 여름이 오니까 진딧물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웃 동네 사람들은 진딧물을 죽이기 위해 독한 농약을 뿌리기 시작했지만 진딧물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 극성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 고추밭에는 이상하게도 농약 한 방울 뿌리지 않았는데 진딧물에 없기에 이상하다 생각했다. -유심히 관찰해 보니 무당벌레, 쐐기가 엄청 많았는데 그게 진딧물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구나, 이것이 자연의 순리로구나, 이것이 공생이로구나. 서로가 서로를 위해 먹고 먹히면서 우주 질서는 운행되며 그 질서를 파괴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그것이 수억 년의 인류역사, 지구역사를 존속시키게 했구나.
그런데 지금 인간들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해 살겠다고 독한 농약을 뿌리다 보니 진딧물은 고사하고 고추를 보호하는 힘없는 벌레들만 죽이게 되었구나.
우면히 발견한 이 사건을 통해 모든 이치가 공생적 관계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체계를 바로 잡아 주는 농업, 가령 윤작체계인 돌려짓기라든지 혼작인 섞어 심기가 바로 조화를 이루는 공생농업이다.
고추밭에 들깨 모종을 간간이 심는다든지, 토마토 밭에 대파를 간간이 심는다든지, 고추 수확 뒤에, 보리와 밀을 심고, 보리와 밀을 수확한 뒤 양파를 심는다든지, 양파 수확 뒤에 콩과 기장과 수수를 심는다든지, 어쨌든 돌려짓기와 혼작 체계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농업이 바로 공생농업이다.
또 다른 의미의 공생농업이라는 것은 농민인 나와 농작물의 생명과 영혼과 피가 하나라는 생명사상을 말한다. 유기농업을 통해서 발견한 생명사상은 나로 하여금 깨달음을 주었다. 농작물인 벼와 고추와 상추 한 잎 속에도 생명이 있고 내 영혼 속에도 물과 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함께 즐거움을 느끼는 교감은 바로 식물과 나와 일체감이었다. 유기 농업 초기시절 나는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제초제와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벼를 재배하여 동네 사람들이 농약 없이도 농사가 가능하다고 칭찬했는데 벼 알맹이가 생길 때쯤 벌레가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나에게 피를 말리는 고통을 주었다. 벌레가 벼를 갉아먹으면서 잎새가 하얗게 돼갈 때는 마치 내 살을 갉아먹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러면서 동네 사람들은 주의를 주었다.
농약 없이 농사가 되지 않는다고, 종자도 건지지 못할 것이니 농약을 치라는 거였다. 그 때 나는 밤낮으로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나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기 위한 즐거운 고통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생명의 농업인 바른 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삼대 굶주릴 각오와 삼대 얼어 죽을 각오와 삼대 매 맞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그런 뒤 하늘에 맡기고 자연에 맡겼다.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지만 벼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닷새가 지난 뒤 아내와 나는 결정했다. 농약을 치자, 한번 치자, 이런 마음을 먹고 농약 방에 뛰어가서 농약 한병을 사와 분무기를 빌려 농약을 타농약통을 지고 논으로 갔다. 농약통을 지고 들어선 논둑에 붉게 물든 노을속에 흔들리는 벼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생명을 깨닫게 하였다.
저 아름다운 벼… 저가 내 생명인데---나는 통곡을 하고는 그 자리에 무릎을 끓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내 생명에다 어떻게 독을 뿌린다고 마음먹었을까---. 농약을 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졌다. 생명의 발견 그건 바로 저 농산물에도 내 생명과 영혼과 피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다니.
그 깨달음이 바로 공생농업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공생농업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 소규모 가족농업이어야 한다. 둘째, 기계에 의존하는 농업이 되어서는 안된다. 셋째, 농약과 화학비료 또는 비닐-화학연료-석유-에 의존하는 농업이 되어서는 안된다. 넷째, 퇴비는 그 지역 또는 그 농장에서 확보할 수 있는 순환 체계적인 퇴비여야 한다. 이 네 가지 기본적인 조건을 현실적으로 절대화시킬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가족농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생산 공동체 단위로 문제 해결을 풀어나가야 한다. 가족농 중심이란 자가 노동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땅을 가지고 공생농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자면 소규모 농업이어야 한다(삼천 평 이하). 그렇지 않은 대규모농업은 자본과 시장경제라는 거대구조 속에 편입되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 있다.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우리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바로 생명의 힘이다. 나는 생명의 힘을 농업에서 발견하였다. 그런데 이젠 농촌에는 어쩔 수 없는 사람만이 살아간다.
그래서 농촌에는 이제 아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미래가 없다. 농업에는 희망이 없다, 그것이 오늘의 농업 현실이다. 그러나 니는 생명의 힘을 농업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정반대로 도시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삶이란 철저한 수탈이며 착취의 삶이고, 그 끝은 인류 전체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나는 생명의 힘이 공생농업에 있다고 믿는다. 도시적 절망이 아니라 생명의 원시성이 그대로 살아나는 공생의 농업에서 희망을 본다. 능력과 경쟁에 근거한 가학의 경제구조가 아닌 상생과 사랑에 근거한 새로운 삶의 모습이 이 공생의 농업 속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공생의 농업을 꿈꾸며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이 세상은 생명력 넘치는 사랑의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