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이원수씨가 열여섯살에 지은 동시이다. 이 노래만 들으면 밥 냄새, 장작 태우는 냄새가 물씬 풍기며 선연하게 그려지는 옛 고향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60년대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동구 밖을 나서면서 성공하고 돌아오마고 눈물을 훔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울을 메우고, 인근위성도시를 메우면서 돌아갈 생각 없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자가용을 한 대씩 끌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그런대로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하고 돌아오겠다는 생각은 이미 저버린 지 오래고 이제 자신이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그 맑은 냇가, 그 푸르던 동산에 올라 제법 주판알을 튕기면서 땅값을 얘기하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고향을 흥정하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는 고향으로서의 시골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으로서의 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귀농이라니?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농촌이라는데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안 되면 농사나 짓지’ 라는 푸념을 뇌까리며 돌아오는 걸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도 일 년에 몇 백만이 농촌을 떠나는데도 불구하고 철모르는 낭만주의자들의 치기 어린 서정인가? 아니다.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왜 귀농운동인가
왜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을 운동으로 벌이는가?
먼저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도시는 돈과 이윤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이다. 그 곳은 시간, 공간으로 구속 받는 곳이며 오염된 공기 속에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해고의 위협에 한치도 맘 편할 날 없이 사는 곳이다. 숨쉴 틈없이 꽉 짜여진 생활의 틀을 벗어나 진정 안빈낙도의 풍류를 느끼기 위해서 귀농은 의미가 있다. 내가 도시를 선택하는 순간 그곳은 시간을 초단위로 저당 잡혀야 하고, 월급의 수준과 승진에 물질적 축적과 체면에 신경 써야 하는 삶에 포섭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끼리 계산하지 않고 만나고 자연과 친화되고 정말 고향을 고향으로 여기며 자연과 벗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농촌으로 돌아가야 한다.
두번째로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ꡐ고향의 봄ꡑ 이라는 노래를 부르면 무엇이 떠오를까? 그들에게 고향은 OO아파트 0동 O호일 것이다. 같은 모양의 집에서 자신의 집에 대한 정체성은 숫자라는 기호로 구분될 뿐이다. 그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 없다. 사람에게 고향이 있다는 것은 정서를 안정시키고 더불어 마음의 귀의처가 된다. 요즘 아이들에게 위대한 장군이나 지도자가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번도 골목대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성은 아이들끼리 놀면서 생긴다. 그러나 요즘의 아이들은 돈으로 산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갖고 혼자 놀뿐이다. 과거에는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고, 흙이나 집, 풀 등 자연물을 갖고 놀았다. 돈이 전혀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놀이 자체가자연 속에서 함께 하는 것이었다. 자치기와 씨름, 비석치기를 하기에는 땅은 딱딱한 아스팔트로 덮였고, 마음껏 뛰어 놀이야 할 어린이들의 놀이터는 이미 자동차로 뒤덮인지 오래되었다.
공부 잘하고 영악한 아이들은 될지 모르지만, 풍부한 정서와 감수성, 타인을 배려하고 살피는 마음을 배우지는 못한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 아이들의 진정한 교육은 도시를 떠나야 한다. 아이들에게 도시는 입시 지옥과 내신의 강박 속에 젊은 시절부터 온갖 상처를 떠 안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로는 땅과 지신의 건강을 위해서이다.
물론 과다한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이미 농촌에도 개구리나 메뚜기, 미꾸라지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제비도 더 이상 찾지 않는 곳이 되었다. 도시도 이미 암이나 당뇨병 등 각종 현대병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생명의 근원인 땅이 돈으로만 계산되어, 더불어 살아야 할 터전으로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 전락되었다. 귀농은 단순히 농사가 아니라 생태적 환경 친화적 귀농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 자신이 살기 위해 땅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땅이 서로 상생하는 농업을 말한다. 물론 유기농업이나 자연농업으로 지어야 하며, 이윤 추구를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자립적이고 스스로 생존만을 위해 짓는 농사여야 한다.
네번째로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최근 북한돕기 불교운동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 인구의 3O퍼센트, 그리고 최소 300만 명이 이 년 육 개월만에 굶어 죽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이미 94, 95년 기근과 한발, 홍수 등 엄청난 기상재해로 인해 지금 같은 재난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 많은 사람들은 현재 식량자급도가 24퍼센트 밖에 안되어 대외식량의 존도가 높은데다가 남한이 수입하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의 곡창지대가 기상이변이 발생하면 엄청난 재앙수준의 사회적 혼란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것은 불가능한 미래의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농촌이 살고, 농업 인구의 증대로 인해 곡물 자급도가 높아져야만, 다국적 곡물 메이저의 횡포를 막을 수 있고 식량대란을 막을 수 있다.
왜 불교가 귀농운동을 전개해야 하는가
최근 IMF 한파로 많은 사람들이 실직을 당하고 생활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귀농운동에 관심을 갖는 듯하다. 실제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돈 좀 벌면 시골로 내려가서 조용히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농촌의 삶은 도시보다 어렵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한 땅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시에서 벌지 못한 돈을 농촌에서 벌려고 한다면 거의 대부분 실패한다.
귀농도 건강하게 해야 한다. 돈벌이를 위해 귀농해서는 안 된다. 조금 고생하고 추위와 더위로 어렵더라도 그것이 바로 정직하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워야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먹거리도 만들고 자신도 건강해지며, 그 과정에서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생겨 경제적인 이득도 얻게 된다. 경제적인 효과는 부산물이다.
도심의 포교당이나 절이 많이 생겼지만 아직도 도시에서 안정된 종교문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역에 기반한 신도조직보다는 전국구 신도들이 많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 불교는 본래 농촌문화에 근거한 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지방의 곳곳, 산중 곳곳에 절이 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의 전통사찰은 농촌에 있다.
도시문화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합리성과 조직성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불교는 근대적 합리성에 적합하지 않는 종교이다. 이렇게 볼 때 농촌문화가 풍부히 발전하는 것은 바로 농촌에 근거한 불교가 터를 강화하는 좋은 조건이 된다.
더욱이 앞으로 지방자치 시대에 지역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 사람들이 귀농하여 농촌이 살아야 한다.
그래서 환고향還故鄕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농촌이 살아난다면 불교에 종교적인 득이 되면 됐지 해가될 리 없다.
그리고 불살생계율을 첫번째 계율로 중요시하는 불자로서 만 생명을 살리는 업종은 바로 농업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자연농이나 유기농업이어야 하며 그것을 하기 위해 돈 욕심을 덜어내고 선정과 깨달음을 얻는 수행으로 귀농해야 할 것이다. 도시는 인간중심의 욕망이 빚어낸 구조이며 이곳은 자동차로 인해 각종 오염, 인간과의 경쟁으로 인해 생명을 살리기보다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문화가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불교가 귀농자들을 돕고 살피는 일은 불교의 자비행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가운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의 귀농교육
올해 실상사를 중심으로 사찰토지를 귀농자들이 참선과 마음을 닦으면서 자연농이나 유기농을 훈련하는 곳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단히 미래지향적으로 의미있는 생각이라고 본다. 총무원도 적극 나서고 있지만, 지금으로는 3월말 불교귀농학교가 그 출발이 될 것이다. 출발은 작지만 앞으로 이러한 작은 노력이 십년 뒤의 귀농운동으로 꽃피면 바로 십년 전의 오늘을 웃으면서 전설로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