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얽힌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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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지하
1999년 07월 209호
한 달 전인가 「해인」지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내가 그 자리에서 선뜻 승락을 했던 것은 바로 제목 때문이었다. ‘나를 일으킨 인연’이라면 나도 할말이 있지 싶어서다. 내가 이제껏 숱하게 얘기해 왔던 저 감옥에서의 흰 민들레씨 얘기며 해남에서의 뭇 환상과, 미국 애리조나 사막 쎄도나에서 어떤 젊은 여성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단군 얼의 깨달음 등 그야말로 인연이 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다시 「해안」지의 독촉을 받고 막상 원고지 앞에 앉으니 생각이 싹 달라진다. 원고지 맨 앞에 ‘인연’이라는 말을 써 놓고 나서 그 밑에 ‘김지하’란 이름을 썼기 때문이다.
바로 이 놈의 이름 ‘지하’에 얽힌 인연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이놈의 ‘지하’ 라는 이름이 과연 나를 일으킨 인연이 될 수 있을까? 도리어 나를 자빠트리고 감옥과 지하실과 뒷골목 술집 근처 시궁창에 쑤셔넣은 인연이 아닐까?
많은 선배들이 이음 고치라는 소리를 해 왔고, 언젠가는 작명가인 김봉수라는 사람이 이 이름을 들고 찾아간 어머니 앞에서 냅다 소리를 지르며 말하기를 ‘이게 이름이야! 감옥깨나 가겠군!”했다는, 바로 그 악명 높은 악명이기 때문이다. 하긴 이 이름 쓴 뒤로 좋은 꼴 못 봤다. 늘 하는 얘기지만 감옥, 지하실, 뒷골목의 술집이나 낯선 여관방이 고작이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나를 찾아온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가 대뜸 나를 “헬로, 미스터 언더그라운드 킴!”이라고 불렀다.
그래, 그뒤로 나는 국제적으로 ‘언더그라운드 킴’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지하’란 이름을 쓰게 되었느냐고 자주 묻곤 한다.
내력은 이렇다.
스물한살 때던가 대학 다닐 때다. 그 무렵 대학 앞 학림 다방이란 곳에서 내 시화전을 열기로 했는데 마침 마땅한 필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문단에 이미 나의 본명인 ‘영일’이란 이름이 숱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가운데, 어느 여름날 점심 때 동아일보에 있던 한 선배가 술을 사주어서 잔뜩 먹고 취한 뒤 대학가로 돌아가려고 주머니를 뒤져 보니 돈이 한푼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광화문에서부터 동숭동까지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는데 마침 그 무렵 유행하기 시작한 길가의 작은 입간판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괴상한 것은 입간판에 쓰여진 직종들이 이발관, 다방, 식당 따위로 모두 다 다른데도 ‘유난히’ 똑같은 것이 있었다. 그 직종들 위에 까맣고 작은 글자로 적힌 ‘지하’라는 낱말이었다.
‘바로 이거다!’
나는 무릎을 쳤다. 인연이라면 인연이고 장난이라면 장난이다. 예부터 문학인들은 괴팍한 지들이 많았거니와 ‘지하’란 이름과의 인연은 이렇게 괴팍한 심사로 시작되었다. 나중에 유명해지니까 신문 기자들이 ‘지하’란 이름에 ‘지하芝河’ 라는 근사한 한자까지 붙여 줬고, 그렇게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뒷날 내 스스로 생각해도 고약하고 또 고약해서 한번은 ‘물 맑을 형瀅’자로 이름을 고치고 이를 언론에 발표하기까지 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지하!’ ‘지하!’라고 부르며 ‘지하로’ ‘지하로’ 가라고 몰아 세우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껏 지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름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 것은 정말 나이가 들고 조금씩 철이 든 뒤의 일이다. 그래서, 주변에서들 애 이름을 ‘나리’니 ‘달래’니 하고 함부로 가볍게 붙이는걸 늘 못마땅해 한다.
내가 단군에 귀의하면서 새로운 서원을 세우던 지난해 음력 개천절에 다시 한번 이름혁명을 시도했다. ‘혁명’이라기보다 ‘복명復名’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본명인 ‘김영일金英一’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 이처럼 거룩한, 나라 할아버지 앞에서까지 다짐한 ‘복명復名의 의지를 여전히 사람들은 알아 주지 않는다. 도리어 더욱 열심히 ‘지하!’ ‘지하!’해 쌌는다.
허허!
별 해괴한 일도 다 있지…
그러나 그 까닭을 그나마 헤아리게 된 것은 사실 요 며칠 사이의 일이다. 지금 나는 일제 식민사관의 추종자들에 의해 왜곡된 상고사를 바로 잡고 신화설과 곰의 자식설 따위로 격하되고 묻혀 버린 단군의 복권을 주장하는 민족문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 일을 내 삶의 마지막 라운드요 최고의 사명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신채호 선생이 뭐라고 하셨던가? ‘역사의 광복이 없으면 민족의 광복도 없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역사 광복이 되지 않는 한, 내 삶은 여전히 캄캄한 지옥이고 내 이름은 여전히 더러운 지하 일 것이다.
이것이 어찌 내 이름일 뿐일까 보냐! 지금우리 민족의 모든 이름이 바로 ‘지하’다. ‘언더그라운드 킴’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이 이름을 인연으로 해서 다시 일어설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언더그라운드’란 또 혁명을 뜻하기도 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