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암眞實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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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사재동
1998년 04월 194호
제대로 공부할 때에, 그런 일에 끼어 들어,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논문도 좋게 쓰지 못하면서, 복잡, 분주하게 띈 결과가 이것뿐이란 말인가 스스로 부화가 치밀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섬신이 피로해지고 획기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어디론가 나 혼자만의 그 곳으로 도망가, 푹 쉬면서 심신을 조섭하여 무엇인가 못한 것을, 미진한 것을 골똘히 소신껏 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무도 몰래 죽어도 좋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출가자의 결심이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연구년제로 자유로워진 것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적어도 일 년 동안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간곡하게 찾는 그곳은 물론 산사였다. 결국 심산의 사찰을 찾아 출가를 하자는 것이다. 출가의 시작이었다. 버스터미널로 가면서 줄곧 가본 절, 가 볼 만한 절을 떠올렸다. 가까이로부터 동학사, 비례사, 갑사, 마곡사, 수덕사, 무량사, 관촉사, 법주사, 불국사.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들이 주욱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산사들에 대한 추억이 다 그럴 듯 하지만. 유독 관촉사 대해서만은 치기 어린 기억이 있어 미소를 지었다. 고등학교 2학년 말기 봄방학 때, 친구하고 관촉사에 갔다. 둘이 출가하여 머리 깎고 중이 되자는 것이었다. 용기를 내어 주지인 듯한 스님을 만나 정중히 인사를 하고, 출가의 뜻을 밝혔다. 그 스님이 미소지으며 묻는다. “학생들 출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슨 절박한 사유가 있는가?” “아니요. 그저 출가하여 중이 되면, 이런 데서 조용히 살고, 얼마나 좋을까 해서요.” 그 스님은 벌써 알아차리고, “그런 정도라면 어서들 돌아가”라고 단호히 말씀하였다. 우리는 그제서야 당황하여 여러 가지 핑계를 끌어대며 간곡히 청하는 양, 말재주를 부렸다. 그러자 스님은 수긍한다는 듯이, 그 출가 절차를 일러 주었다. 먼저 갖추어 가져 올 서류를 열거하였다. 출가신청서, 출가승락서(부모), 이력서, 호적등본, 신원증명서, 신원보증서. 신원진술서, 건강진단서 등등 생각나는 대로 불러대는데, 그것을 다 어렵게 받아 적었다. 서류가 너무 많았다. 출가는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구나. 우리는 스님에게 인사를 하고, 논산읍으로 나와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그 값을 합동으로 치르고 나니, 겨우 교통비만 남았다. 서로 마주 보교 약속이나 한 듯이 씨익 웃었다. “구비서류가 너무 복잡하지.” “그래 복잡해서 안 되겠다?” 그런 뒤로도, 계절 따라 가끔, 심히 불편할 때, 문득문득 ‘출가충동’ 을느끼고 산사를 찾아 모의 출가를 해 보았다.
이제는 형편이 다르다. 더욱 심각하고 본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른바 대찰은 내가 머물기는 벅찬 곳이었다. 그만큼 한적한 곳이 아닌데다, 스님들의 꽉짜인 수도생활 속에 나 같은 속인 한사람이 끼일 수가 없다. 그러자니 그 대찰의 암자 가운데, 아주 조용하고 아늑한 곳을 찾아가는 게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동학사 쪽으로 갔다. 그 큰절을 밑으로 주욱 들어선 암자들이 찬연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오래 전에 묵어 보았던 한 암자는 주지가 바뀌고, 신축을 하여 외모와 분위기가 아주 달라졌다. 그 아래 아는 스님한테 가서, 인사하고 법당에 절한 다음, 어렵게 그 청을 했더니, 형편이 많이 달라졌다고 점잖이 거절을 하였다. 스님들 인심도 세월 따라 변하는가 싶어 섭섭한 생각이 들였다. 그렇지만 동학사와 그 암자에는 모두 비구니 스님들이 주석하지 않는가. 거기다가 내가 함께 살겠다 요청하였으니, 법도에 어긋나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는 산길을 따라 계영정사에 닿았다. 그 암자에서는 여러 번 묵은 적이 있는데, 아는 스님이 떠나고 낯선 스님이라 말도 못 붙였다. 낯익은 신흥암을 거쳐 갑사에 도착하여, 참배하고 감로수를 마신 뒤에, 대자암으로 향하였다. 길가 노점에서 요기하고 거기에 어렵게 도착하니, 스님들의 전문 선방이라 속인이 머물 방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큰절 가까이 내려와, 길을 달리하여 한 암자를 찾아가니, 거기는 속인을 받는다는 것이다. 방이 여러 개 있는데, 입시생, 고시생들로 꽉 차고, 방하나가 남았다는 것이다. 스님은 만나지도 못하고, 공양주인 듯한 보살을 보았는데, 시내 복잡한 하숙집 아주머니 같았다. 어쨌든 흥정을 하여 보니까. 너무 비싸다 방이 좁고 시끄럽고 복잡하다. 산중의 암자 치고는 불결하고 불안정하다. 참으로 마음이 안 내키었다.
해질 무렵에 주차장으로 내려와 대전행 버스에 피로한 몸을 실었다. 산골길에 흔들리면서 어둠이 깔린 차창 밖을 내다보며, 내일은 마곡사 쪽으로 가 보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쪽의 잘 아는 암자에 전화하여, 어려운 거절을 당하지 않았던가 어디로 갈까. 바깥은 이미 캄캄하였다. 내 마음도 답답하였다.
드디어 그 유명한 대치고개를 넘어 높은 언덕을 달리는 차창으로 멀리 별처럼 불 켜진 시내가 오히려 아늑하고 정답게 보였다. 눈을 지긋이 감은 것이 그대로 잠에 들었다가 우리 동네 근처에서 겨우 내렸다. 좀 먼 거리였지만, 걸어서 들어갔다. 가로등이 유난히 밝은 동네 길은 많이 다녔던 기억으로 새삼스러웠고, 드디어 전생에 살았던 듯이 정겨운 집 한 채가 다가선다. 계족산의 발톱에 해당되는 영당에 눌러 앉은 2층 기와집. 상나무, 목련나무, 사철나무, 은행나무, 감나무들에 둘러 쌓여, 산간의 암자와 같다. 대문을 지나 돌층계로 올라 현관을 들어서니, 넓고 밝은 대청마루로 한 보살님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잠깐이나마 둘러보니, 불가 명구가 조각된 현판이 걸린 서재와 거실이 주방에 잇대어, 오래 살았던 기억처럼 아늑하다.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에 오르니, 불상과 부모상을 모신 큰 방, 사방서가에 불경, 불서, 불교문학 등의 전공서적이 즐비하다. 여기에 연한 세 방에는 또한 사면 서가에 전문불서, 도교서적, 역사서적, 철학서적, 문학학술지 등이 정연히 빼곡하다. 새삼스럽게 놀랐다. 나 같은 전공자에게는 수행하여 공부하기가 안성맞춤이었다. 정말 이런 데가 있을까. 내가 소망대로 꾸민다 해도 이렇게 알맞게 차려 놓을 수는 없었다. 전생에 꿈꾸던 바로 그 자리다. 그렇다. 내가 그다지 찾던 그 조용한 곳이 여기다.
서둘러 아랫층에 내려오니, 그 보살님이 또 웃으며, 주방으로 안내한다. 불빛 아래 더 돋보이는 그 얼굴은 평생을 같이 해 온 아내의 모습이다. 나는 당황하듯이 물였다. “보살님의 법호는 무엇인가요?” “진실행眞實行인데요.” “이 암자의 이름은 요?” “진실암 眞實庵인데요” “나 여기서 공부하며 살면 안 될까요?” “좋지요. 얼마든지. 산중에 있는 암자보다 나을 테니까요.” 우리 부부는 연극 같은 대화를 나누고 한바탕 웃었다. 나는비로소 내가 길이 살 진실암眞實庵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 실로 생각이 그러하고, 수행이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생활이 그러하고 인생이 또한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생각할 나름이고, 마음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 그러기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ꡑ 라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