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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방송의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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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재일 1992년 11월 129호
들어가면서
우리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미디어라는 거대한 환경 안에서 살고 있다. 그저 무의식중에 신문을 읽고 방송을 듣고 본다. 그뿐만 아니다. 집을 나오는 순간부터는 또 광고의 홍수 속으로 빠져든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이렇듯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디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방송 미디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 매체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꼼짝없이 가둬 놓고 있다. 차를 타고 가도 방송이요, 어딜 가도 방송이다. 문을 꼭꼭 걸어 잠궈도 별 수 없다. 담장을 뛰어넘어 안방까지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 방송의 기능적 속성이다. 그러한 속성에 길들여져서 이젠 잠시라도 방송과 떨어져 있으면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소외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방송은 현대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단순한 정보와 오락만을 제공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런 기능을 통해서 일반 대중의 인식 방법과 사고 방식, 행동 양식, 사회적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은 이 지상의 어떤 것보다 막강한 힘을 가진 가치의 창출자이며 생산자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모든 것은 방송으로 통한다. 정치, 문화, 사회, 경제, 심지어 종교까지도 그 길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되었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 방송은 종교의 포교 수단으로서 최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종교 다원주의 국가인 우리 나라에서의 방송포교는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포교 방송의 선발 주자인 기독교 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홉 개의 방송국을 열었으며, 포교 방송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불교와 카톨릭도 `90년에 자체 방송사를 갖게 되어 알게 모르게 방송 전쟁을 하고 있다. 현재 기독교가 스물두 개의 라디오 방송 허가를 기다리고 있고, 불교도 열한 개의 방송국 허가를 신청해 놓고 있다. 관심사는 라디오에만 그치지 않고 각 종교 단체가 텔레비전 방송국 설립을 추천하고 있고, 이에 대한 허가 문제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불교계에서는 지방 MBC의 불공정한 선교 방송에 대한 규탄 열기가 고조되어 종교의 전파 전쟁이 시작된 느낌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개국 30개월을 맞는 불교방송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의 우리 불교방송이 걸어가야 할 길을 모색해 보는 것으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불교방송의 종교적 의미
1989년 3월 당시 문공부로부터 방송국 설립 허가를 얻어 1990년 3월 첫 시험 방송을 거쳐서 `90년 5월 1일 불교 방송은 FM 101.9MHz로 첫 전파의 길을 열었다.
불교방송의 개국은 이천육백 년 불교사에 처음 있는 일로 부처님 당시의 영산회상을 오늘에 재현한 대불사이며, 또 일천육백 년 우리 민족 불교사에 새로운 포교의 장을 연 혁명이었다. 이는 일천만 불자의 뜨거운 원력의 결실이요, 시대적인 요청이었다. 또 방송의 측에서 보면 방송 채널의 다원화와 전문화를 앞당겨서 시청자들에게 채널 선택권을 넓혀 주었고, 기존의 기독교방송과 같은 시기에 전파를 쏘아올린 카톨릭의 평화방송과 더불어 새로운 종교방송 시대를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방송을 통한 선의의 종교 전쟁 시대를 의미한다.
불교방송이 종교 방송으로서 갖는 의의는 ‘깨침의 소리, 나눔의 기쁨’이라는 짧은 슬로건 한 마디에 함축되어 있다. ‘깨침의 소리’는 곧 상구보리上求菩提요, ‘나눔의 기쁨’은 곧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불교방송이 수행의 매개체 역할을 자임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슬로건을 더욱 구체화한 것이 불교방송의 ‘방송 지표’로서, 불교방송이 대외적으로 표방한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방송 지표’를 보면, ‘참된 말씀 바로 펴는 방송, 온 겨레를 하나로 묶는 방송, 치우침 없는 생각을 이끌어 가는 방송, 우리 것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방송, 나누는 기쁨을 함께 하는 방송’으로 되어 있다. 이는 불교방송의 대명제이기도 하다.
불교방송의 포교적 기능은 짧은 시간 내의 대중 포교, 사부대중 사이의 수평적 교량 역할, 일반 방송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신행 생활에 필요한 정보 제공, 교계의 숨은 인재 발굴과 양성, 소외된 계층에 대한 대변, 방송을 통한 종교 교육 등을 비롯하여 교계의 여론 집약과 창출, 불교의 대외창구 역할, 문화 사업을 통한 교세 확장 등 실로 다양하다. 이것은 또한 일천만 불자들이 기대한 바였고, 불교방송이 끊임없이 추진해 나가야 할 불사였다.
이제 불교방송이 개국 30개월을 맞고 있다. 이즈음해서 그 동안의 방송사를 돌아보고, 점검해 보는 것도 앞으로를 위해서 좋을 것이다.

이유 있는 찬사들
방송인들 사이에서는 흔히들 1990년을 ‘라디오 방송의 춘추전국 시대’라고 한다. 이는 그 해에 평화방송과 불교방송, 교통방송 등 세 개 FM라디오 방송이 함께 개국되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거의 동시에 태어난 이들 세 개 방송은 오랜 전통과 막강한 힘을 가진 기존 방송의 틈바구니에서 나름대로 자리 매김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개국 이 년을 넘긴 이들 세 개 신생 방송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는 그렇게 후하지가 않다.
그런 와중에서도 세 개 방송만을 단순 비교할 때 불교 방송이 우선 청취율에서 상대적으로 앞서고 또 내용에서도 비교적 빨리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필자의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그동안 방송과 관련된 쪽의 여러 조사가 뒷받침 해주는 근거 있는 이야기이다.
우선 오고 가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방송의 개국이 불교계의 위상을 높여 주었다, 세 개 방송 가운데 비교적 대중화에 성공하고 있다, 종교 방송이면서도 조금도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다, 편성과 제작에서 교계 여론의 반영도가 높다, 작위적인 연출이 많이 절제되어 있다, 내부의 인화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대외 이미지가 좋다, 방송의 질에서도 향상 노력이 엿보인다,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방송의 질이나 내용에서 보면, ‘차 한잔의 선율’ 등 개국 때부터 계속되고 있는 몇 개 프로그램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그 인지도가 꽤 높다. 신생 FM인데도 방송 잔치에서 경쟁사를 누르고 수상한 경력들이 그것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 지난해 방송대상 후보에 올랐던 ‘난지도 어린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종교 방송이 사회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무명을 밝히고’와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자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번 가을 개편 때 선보인 ‘살며 생각하며’도 포맷 다양화를 시도한 와이드 포교 프로그램으로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종교 방송의 일차적인 목적이 포교에 있듯이 종교 방송은 포교 프로그램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이번 `92년 가을 개편에서 포교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전문화에 관심을 보인 것도 종교 방송으로서의 채널 차별화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로 풀이된다.

이런 것들은 무리다
`90년대 들어서 방송 환경은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그러한 변화는 텔레비전 쪽보다 라디오 쪽에 먼저 불어닥쳤다. `90년도의 세 개 FM방송의 출범을 시작으로 서울방송과 교육방송의 독립이 잇따라서 현재 서울만도 열다섯 개 라디오 방송이 청취율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방송법 개정으로 공민영 방송 시대로 접어들면서 라디오 방송 전쟁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청취율 경쟁 구조에서는 프로그램이 저급성, 편이성, 감각적 오락성등 상업적 속성을 더해 갈 수밖에 없다. 종교 방송도 예외일 수는 없다. 오히려 종교 방송의 특수성을 살리면서 어떻게 하면 일반 방송처럼 재미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가 하는 이중 부담까지 안고 어려운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방송이 대중화에 비교적 성공하고 있다는 말은 다른 쪽에서 보면 또 그만큼 종교 방송으로서의 차별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흔히들 지적하듯이, 청취율이라는 족쇄에 묶여 기존 일반 방송의 프로그램을 모방한다든지, 상업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대응 편성을 하거나 방송 내용의 저속성 등으로 종교 방송으로서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한 보기로, 지난 5월 청소년 프로그램인 ‘밤의 창가에서’가 방송위원회로부터 ‘시청자에 대한 사과, 진행자 출연 정지, 제작자 징계“를 내용으로 하는 법적 제재를 받았다. 사안에 비추어 제재 정도가 과중하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문제된 내용이 종교 방송, 더욱이 청소년 프로그램이라는 상식의 틀을 크게 훼손한 것은 사실이다.
그밖에도 ‘백팔까요’, ‘저녁길 FM’ 등 몇 개의 오락 프로그램은 불교방송의 윤리성을 늘 위태롭게 해 왔다. 그런 경우에 ‘청취율 확보’라는 명분으로 양해될 수 있는 종교 방송으로서의 하한선은 어디까지인가라는 물음을 늘 던져 주고 있다.
그와는 다른 각도에서, 불교방송이 가진 문제점으로 오락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란 교양 정보성, 전반적으로 짧은 프로그램들의 평균 수명,상대적으로 높은 공급 뉴스 의존도, 가을 개편으로 다소 보완되었지만 뉴스 프로그램의 집중화, 토론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빈약, 교계 문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함구 등이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문제들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한 때 라디오 매체에 대한 주가가 주춤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제 라디오 시대는 끝났다’라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라디오 매체가 살아나고 있음을 본다. 텔레비전이 갖지 못하는 여러 가지 장점들-텔레비전에 비해서 친근감을 주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으며, 텔레비전보다 개인적인 매체라는 점 등-로 해서 다시 라디오 매체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라디오 매체가 오랜 와중에서 일어나고는 있지만, 방송 내용이나 편성, 경영면에서는 전보다 나아진 게 별로 없다는 지적들이 많다. 다시 말하면 채널 수가 늘어난 만큼 다양화, 차별화, 전문화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내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지적은, 새로운 정보 전달에는 텔레비전보다 라디오가 훨씬 제격임에도 불구하고 정보 교양 매체인라디오가 오락 매체인 텔레비전 흉내만 내고 있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불교방송도 예외는 아니다.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지만 오락성=청취율, FM=음악방송이라는 오해를 빨리 불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초창기 우리나라 방송의 관행에 불과하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AM과 FM의 구별이 따로 없다. 그 동안의 개편으로 다소 변화가 있긴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좀더 AM의FM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텔레비전과는 달리 FM 청취자들은 오락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개성과 가치를 그들은 찾고 있다.
방송 지표에도 있듯이 ‘우리 것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노력도 좀더 필요하다. ‘탈종교’를 포함한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에 충실한 프로그램을 듣고 싶다. 불교가 우리 민족의 저변 의식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민속 등 우리 고유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겠다. 그리고, 영상매체에 대한 도전이다. 현재 영상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작품들을 내놓긴 했지만, 거의가 남의 손을 빌린 초보 단계에 불과하다. 가능성 타진은 이미 끝났다고 본다. 이제 자체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영상 사업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